북핵 `재개와 상황관리’에 초점 맞춰지나

북핵 6자회담과 관련해 정부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예전과는 달리 거중 조정자로서 중국의 역할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고 미국 내에서 북한 위폐와 인권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북핵은 점점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실제 작년 11월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5차 1단계 6자회담 후 미 행정부의 북한 관련 코멘트는 위폐와 인권에 집중되고 있으며 북핵 언급을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미 행정부는 근래들어 위폐문제에 대한 대응책으로 대북 금융제재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한일 양국의 탈북자와 납북자 가족을 면담하는 가 하면 탈북자 6명의 망명을 수용하는 등 대북 압박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이에 북한은 아직 구체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고 있으나 과거에 마약과 위폐, 인권 등의 문제에 대한 미국의 공세에 강한 반발을 보여왔던 점을 감안할 때 조만간 ‘역공’을 취할 가능성이 커 보이며 이로 인해 북핵 6자회담의 전도(前途)는 더욱 어두워질 전망이다.

9일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는 언급과 함께 남북정상회담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몽골 발언도 이런 현실 인식의 바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문정인(文正仁.연세대 교수)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는 12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미국이 계속 북한을 압박하면 (국제사회가) 북한이 압박에 못이겨 6자회담에 나온다고 인식할 것을 우려해 회담에 나오지 못할 것”이라며 “노 대통령의 몽골 발언은 6자회담을 살리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정부 대북정책 변화있을까 = 최근 몇개월새 정부 내에서는 북핵 6자회담 교착 국면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 지에 대해 강도높은 논의가 진행중이다.

이런 논의의 배경에는 근래 미국내에서 대북 강경파의 주도권 장악과 그에 따른 대북 압박공세의 강화, 중국의 위상 약화, 북중관계의 이상 밀착 등의 외부 변수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작년에 어렵게 만든 ‘9.19 공동성명’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인식이 깔려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공동성명 채택 후 8개월 동안에 많은 여건 변화가 있었던 만큼 그에 맞춰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게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방향은 기존에 북핵 해결과 남북관계의 진전이라는 병행 기조에는 변함이 없지만 북핵문제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북핵문제 해결에 진전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전언이다.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남북관계를 통해 지체 국면을 타개하자는 공감대는 있다”며 “6자회담이 지체되는 등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도 여러 가지를 해봤지만 역할에 일정 한계가 보이니까 우리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언급했다.

단순한 6자회담의 재개는 의미가 없으며 ‘재개와 진전’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정부의 종전 입장도 신축성을 보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 내에서 위폐와 인권 등의 현안에 대한 북미 갈등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3년 남은 부시 행정부 잔여임기 내에도 북핵문제에 ‘진전’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북핵 6자회담을 우선 재개하고 상황 관리 모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적극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남북관계를 통해 북핵문제의 상황관리 또는 악화를 방지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고 말했다.

◇ 한미관계에 어떤 영향줄까 = 최근의 미 행정부의 대북접근 방식이 위폐와 인권 등의 압박책이라면 우리 정부의 접근법은 ‘많은 양보’를 통해 북한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데 맞춰져 있어 일정 정도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북한과 중국을 겨냥한 부시 행정부의 인권 정책은 앞으로 그 강도를 더하면서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한미 갈등의 핵심요인이 될 공산이 크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 문제연구소 연구 교수는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 중국의 인권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자기의 절대적 지지기반인 기독교 우파를 중심으로 한 보수층의 결집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중간선거가 열리는 11월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성공단을 둘러싸고 이미 한미 간에 갈등이 표출됐다는 시각도 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개성공단은 우리에게는 북한 변화를 위한 옥동자격인데, 미국 내 일각에서는 개성공단으로 인해 미국의 대북 압박에 물이 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미 갈등은 표면화되고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정부는 그러나 우리식 북한 변화론으로 인해 한미관계에 이상이 생길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종석 장관은 대북정책과 관련해 정부가 미국과 선긋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일각의 관측에 대해 “미국 일부에서 딴소리하는 사람도 있지만 6자회담을 재개하고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것은 미국의 대(對) 한반도 정책의 목표”라며 “미국이 한계가 있기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보는 것인 만큼 선긋기로 보기어렵다”고 말했다.

‘딴 소리’를 의식한 때문인 지 정부는 최근 미 행정부와 미국내의 대북 강경파를 분리, 대응하는 양상이다.

정부가 대북지원 등을 문제삼은 제이 레프코위츠 미 대북인권특사의 주장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면서 강력 대응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관세 통일부 정책홍보 실장은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를 통해 “레프코위츠 특사의 지난 달 28일 WSJ 기고문은 한국이 대북 화해정책을 펴면서 인권은 등한시한다는 인상을 주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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