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현안…3월 넘긴 신고시한 美대응 주목

당초 지난해 12월 말까지로 예정됐던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는 올 들어 다시 석 달이 지나도록 이뤄지지 못했다.

북한과 미국은 지난 13일 제네바에서 회담을 열어 북핵신고 문제 해결을 위한 대타결을 시도하는 등 끈질긴 노력을 기울였으나 북한은 결국 6자회담 당사국들이 바라는 신고서를 내지 않은 채 3월을 보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북한은 28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핵 6자회담 교착 상태의 원인이 되고 있는 핵 프로그램 신고의 핵심 관건인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시리아와의 핵 협력 의혹을 전면 부인, 6자회담의 전도에 짙은 암운을 드리웠다.

임기가 채 300일도 남지 않은 조지 부시 행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6자회담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앞으로 수 개 월 내에 핵신고와 핵폐기라는 양대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 물 건너간 3월 핵신고 =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13일 제네바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만나 북핵 신고문제 해결을 위한 대타협을 시도했다.

힐 차관보는 최근 기자회견과 강연 등에서 “핵신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제네바에 갔다”거나 “문제해결에 아주 가까이 갔었다”고 말해 제네바회담에서 핵신고 타결 직전까지 갔음을 내비쳤다.

2월에 베이징에서 김계관 부상을 만나 중국측이 제시한 중재안을 토대로 북핵신고 절충안을 협의했던 힐 차관보는 북한측이 구체적인 답변을 내지 않는 한 추가 회담은 불필요하다는 완강한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은 제네바회담을 제의해왔고, 힐과 김 부상은 “아주 훌륭한 협의”를 했다고 밝힌 점에 비춰볼 때 북미 양측은 제네바에서 핵신고 문제 타결을 위한 잠정 합의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김 부상이 이 잠정 합의 내용을 본국에 보고한 이후 분위기는 나빠졌으며, 힐과 김계관은 합의문을 발표하지 못한 채 제네바를 떠나야 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한다.

미국으로 돌아온 힐 차관보는 “북한측에 며칠 간의 말미를 주겠다”, “앞으로 수 주가 북핵협상에서 아주 중요한다” “3월 중에라도 신고를 기대한다”며 북한의 핵신고를 압박했으나 북한은 28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측 절충안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문제 등과 관련, 담화를 통해 “미국이 계속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보려고 우기면서 핵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킨다면, 지금까지 겨우 추진되어 온 핵시설 무력화에도 심각한 영향이 미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명백히 하건대 우리는 우라늄농축이나 그 어떤 다른 나라에 대한 핵협조를 한 적이 없으며, 그런 꿈도 꿔본 적이 없다. 그러한 것들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핵신고의 핵심 쟁점인 UEP와 시리아에 대한 핵확산 활동을 전면 부인함으로써 이들 문제에 대한 해명을 담아야 한다는 미국측 요구를 거부한 것은 물론, 압박을 계속할 경우 불능화마저 중단하겠다며 공을 미국쪽으로 넘긴 셈이다.

◇ 속타는 미국, 다음 행보는 = 북핵 협상과 관련한 미국의 고민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가 목표로 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이룩하려면 핵불능화와 핵신고 단계를 거쳐 빨리 3단계인 핵폐기 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핵폐기 협상은 신고보다 더욱 어렵다는 점을 힐 차관보는 늘 강조해왔다.

그러나 핵신고가 계속 늦어지면서 과연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핵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회담한 뒤 “시간과 인내심이 다해가고 있다”고 밝힌 것도 미국의 속내를 적절하게 대변해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임기와 미국 대선 일정 등을 감안할 때 늦어도 8월까지는 북핵협상에서 의미있는 진전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지적도 공론화됐다. 4월 이후 몇 달 내에 핵신고는 물론 핵폐기로 나아가기 위한 획기적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부시 행정부의 북핵 외교는 동력을 상실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또다른 고민은 북한을 압박할 별다른 카드가 없다는 것.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신고 요구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6자회담을 통한 외교적 노력 방침만 되풀이 밝히고 있다.

라이스 장관은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발표가 있는 뒤 발간된 워싱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북핵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에 진전을 이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은 “북핵 6자회담 과정이 어려웠고, 때로는 지체되기도 했지만 북한이 핵원자로를 가동 중단하고 불능화하기에 이르렀고 지금은 핵프로그램 신고문제를 다루고 있다”면서 “한반도 비핵화에서 진전을 이루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숀 매코맥 대변인 국무부 대변인도 “우리는 이런(6자회담) 외교활동에 생명력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6자회담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며 북핵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북한과 계속 협상할 것임을 강조했다.

매코맥 대변인은 또 일각에서 오는 8월이 차기 미 행정부에서도 6자회담이 지속될 지 여부를 결정한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는 데 대해 “라이스 장관은 6자회담의 시한에 대해 특정날짜를 검토하고 있는 게 없다”면서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외교를 펼쳐 나갈 것이며 북한은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미국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북한이 핵신고 거부 방침을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교노력 이외에 별다른 대응 카드가 없음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계속 핵신고 압박을 가한다면 마무리단계에 접어든 영변핵시설 불능화에 심각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북한은 경고했다.

최악의 경우 북한이 미국의 압박에 미사일 발사나 추가 핵실험으로 맞선다면 부시 행정부 들어 숱한 시행착오 끝에 어렵사리 이룩한 6자회담 성과들마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북한의 핵신고 거부 천명으로 북핵 협상에 암운이 드리워졌지만, 극적인 돌파구 마련 가능성은 여전히 없지 않은 것으로 지적된다. 북한이 2006년 10월 핵실험을 강행한 직후 북미 양측은 베를린회담을 통해 2.13합의를 이끌어냈고, 방코델타아시아(BDA) 교착을 딛고 10.3 합의를 도출해냈던 전례들에 비춰볼 때도 벼랑 끝 대치가 극적 반전의 계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당장 주목되는 것은 이번 주 힐 차관보의 방한이다. 그는 이번 한국 방문 길에 김계관 부상을 만날 계획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중대 갈림길에 놓인 북핵협상을 되살리기 위해 그가 어떤 반전을 시도할지 관심거리다.

또 이달 중순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에서 북핵협상에 대해 어떤 해법이 제시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한미 양국정상이 북한의 핵신고 거부에 대해 어떤 조율된 대응책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얼마 남지 않은 부시 행정부 임기 중 핵문제 진전과 북미관계 개선 여부의 윤곽은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전망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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