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해법 없다는 걸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 세워야

북한의 5차 핵실험, 관련 공무원들과 언론은 뜻밖이라는 듯 예의 부산한 호들갑을 떨지만 북핵 전공자이거나 연구자들에겐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었다. 단지 그 시기가 구구절(9·9 – 공화국 창건일)일지 쌍십절(10·10 – 노동당 창당일) 부근일지만 점쳐졌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 주기가 점점 더 빨라졌음을, 가속화된 미사일과 핵실험의 질적 향상이 북한의 정치적 효과와 시너지를 내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치 눈덩이가 불어나는 것처럼 말이다(snow-ball effect).

4차 핵실험 후 사상 최고치라는 대북 제재 또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억지할 수 없기에 실질적 효과 자체는 미미할 줄 알면서도 (강력한) 정치적 의지를 보일 수 밖에 없던 슬픈 현실. 문제는 5차, 6차로 이어질 북한 핵 실험에 대응할 카드 또한 별반 없을 걸 알면서도 써야 했으니 말이다. 급기야 오늘 우리 군의 대응 발표는 그 ‘절박성’과 실행의 ‘구체성’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무기력과 허무함이 배어있다.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의 “북한이 핵무기로 ‘위해(危害)’를 가할 경우 북한의 전쟁지도본부를 포함한 지휘부를 직접 응징·보복”하겠다는 발언을 모든 언론은 “핵 사용시, 북 지휘부 직접 겨냥해 응징할 것”이라고 풀이했다. 언론의 해석도 맞을뿐더러 군이 밝힌 맥락 또한 지당하다. 모호한 것은 핵 ‘사용시’에 대한 바른 정의다. 군이 밝힌 ‘위해’ 또한 공허하긴 마찬가지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북한 군부의 협박은 ‘위해’인가 아닌가? 광화문 한복판에 핵탄두가 떨어져야 ‘사용시’라고 판단할까? 그런 상황이라면 이미 전쟁개시 아닌가?

북한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 문제는 이미 3년 전에 예측됐다. 이번에 추가된 개념은 ‘표준화’다. 대량생산이라는 방향성의 제시다. 미국은 발 빠르게 핵 보유국 지위는 절대 없다고 밝히고 나왔다. 북한의 전략적 협상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나 이 또한 새롭지 않다.

앞으로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까? 부시 행정부에서 제기했던, 북한의 ‘정권교체’를 위한 공작이 총동원될까? 아니면 고립과 압박만을 강화시킬까? 누가 뭐라던 북한은 자기만의 길을 계속 갈 것이다. 자신들이 만족할만한 수준의 핵 보유를 갖출 때까지 10차 핵실험까지라도 감행할 거다. 동시에 미사일 실험은 안정된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의 장착까지 이어질 것임은 자명하다. 그 때까지 북한은 남한과의 ‘신냉전’을 유지할 것이다.

북한의 유화전략, 대화접근은 그 후에야 가능해진다. 이것은 공산주의 협상의 본질적 측면이기도하다. 미국과 핵 군축 및 핵 감축을 위한 협상제의와 대남 유화책의 동시병행. 그 때까지 남한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정책적 옵션은 대북 봉쇄의 지속 외 물리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 20년 전이면 혹시 가능했을 핵 무기 병참기지에 대한 선제타격을 실행할 베짱이 있을까?

할 수 있는 게 사실상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 어쩌면 진짜 지혜의 시작은 이걸 인정하는 데서 출발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북한은 완전한 핵무장을 갖췄다 해도 남한과의 전쟁을 불사하기란 요원하다. 완전한 대미-대남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북한의 전략적 이익은 확보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한반도엔 ‘냉전적 평화’가 지속될 거다.

북한이 핵 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상식이 됐듯, 북한의 핵 무기는 ‘갑 속의 칼’이라는 것 또한 상식이다. 꺼내지 않아야 위협적인 칼의 존재란 곧 그 칼의 현실사용을 무력화하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칼은 당사자끼리는 절대 쓸 수 없다. 누군가에게 팔거나 팔려야 제 값을 받을 수 있다. 현재 동북아에서 그것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당사자는 중국이다. 흥정은 미국이 맡는다. 이래나 저래나 진짜 당사자인 한국으로선 운신의 폭이 좁다. 좁은들 어떠랴?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탁월한 전술을 창안해 낸 중국에게 그것을 고스란히 돌려줄 수만 있다면 ‘운신의 폭’이란 게 대수겠는가.

결국 북한의 핵 실험이 잦아질 수록 실질적 해결의 열쇠는 중국과 미국이 쥐었다는 진실만 강화될 것이다. ‘꿩 잡는 게 매’라고 중요한 건 역할이 아니라 결과이니 할 수만 있으면 하라고 던지고 우리는 한발 떨어져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 그런데 정작 관계자들은 그렇질 못한다. 뭔가 하는 척을 해야 자기 존재감이 확연해진다고 믿는 모양이다. 안 그래도 되는데 말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실존적 고민을 해야 하는데 여전히 시선은 바깥으로만 향한 인상이다. 중국이 어떻든, 일본과 미국이 어떻든 좀 냉정히 바라봐야 한다. 오바마와 통화하는 게 뭔 대단한 의미가 있겠는가? 앞으로 대한민국은 핵 무장된 북한과 1대1로 마주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 고독한 결단을 해야 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할지, 적당히 타협할지, 어느 노선을 생존전략으로 삼을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야 한다는 거다.

근대 전쟁의 역사에서 하나의 교훈을 보자면 일본 패망과정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일본을 항복하게 만든 건 원폭 투하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은 자신이 패배했다는 것을 진작에 간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항복 시기를 계속 늦추고 있었던 것은 태평양 전선에 개입하지 않은 소련이 미국과의 평화협상에 중재자가 되어 무조건 항복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조건부 항복으로)해 줄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은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8월 6일)되고 불과 이틀 뒤인 8월 8일 때늦은 참전결정을 하여 일본의 이 같은 바람을 꺾어버렸다.

비슷한 일이 북한에도 일어나지 않는 한 백두혈통 김정은 왕가의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의 외교력에 쉽사리 타협해줄 리 없다. 동북아에서 미국과 패권경쟁을 벌이는 중국에게 미우나 고우나 북한은 전략적 자산가치가 전략적 부채 가능성을 상회한다.

잘 풀리지도 않을 한국의 외교력을 들먹이느니 우리는 생존에 관한 실존적 결단을 고민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거다. 그런데 미사일 방어 포대 하나 갖고 민주주의가 죽었으니 안으로 싸우는 판이니 제대로 대응이나 될까? 그냥 물 흐르듯이 운명에 맡겨야 한다는 체념론이 만연해질 수 밖에 없는 풍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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