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타결 각국 성적표

초기단계 이행조치와 상응조치를 골자로 한 북핵 6자회담의 타결로 남.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참가국은 저마다 회담 성과를 결산하는데 분주한 모습이다.

미국은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후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으로 고조되던 2차 북핵위기를 해소할 로드맵을 얻게 됐고 북한도 숙원과제였던 에너지난과 금융제재 문제를 해소할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공동성명을 통해 참가국들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서 모두 이익을 얻은 윈-윈게임을 벌였지만 일부 국가는 북한에 제공키로 한 상응조치와 관련, 국내 정치권의 공세에 직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국 = 한국은 이번 회담 과정에서 북한과 미국 사이를 오가며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중재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 공동성명이라는 `옥동자’를 낳게 한 결정적인 산파였다.

한국은 특히 이번 회담에서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서로의 의사를 조율하면서 핵시설 폐쇄에서 한발 나아가 `불능화’에 이르는 초기단계 조치를 이끌어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회담 막판 걸림돌이 됐던 에너지 제공 문제에서도 한국이 마련한 기초안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우리는 일단 목표치 이상을 달성했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 조치를 이끌어내고 ▲비핵화 과정에 `성과급 제도’를 도입하고 ▲균등분담 원칙을 관철해낸 것을 구체적인 성과로 들었다.

이번 회담 타결을 통해 한국은 북핵사태의 불확실성을 한층 줄이며 한반도 비핵화에 이르는 길을 닦은 것 외에도 앞으로 남북관계를 공고하게 이끌고 나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게 됐다.

다만 우리가 북측에 중유 5만t 상당의 선제 지원을 하기로 한 것에 대해 정치권의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게다가 한국이 경제.에너지 협력 워킹그룹의 책임을 맡기로 함에 따라 대북지원의 덤터기를 쓸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북한 = 예상보다 수월하게 큰 폭의 핵폐기 조치에 합의한 북한은 이번 회담의 최대 수혜자로 평가될 만 하다.

북한이 수용한 초기단계 이행조치에 따라 비핵화 조치를 서두를 경우 최대 중유 100만t으로 환산되는 에너지와 인도적 지원을 제공받을 수 있게 돼 경제적 궁핍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

게다가 베를린 북.미 회동을 통해 이미 30일 내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 동결해제 약속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져 힘겨웠던 1년5개월간의 금융제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확보했다. 오는 16일 65번째 생일을 맞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될 전망이다.

여기에 향후 워킹그룹에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적성국 교역법 면제 등을 논의하게 되면서 북한은 일거에 고립구조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는 실마리를 마련했다.

향후 상황이 급진전되면 북미 접촉을 통해 상호 신뢰의 기반을 마련, 북.미관계 정상화가 이뤄지면 체제 안보에 대한 불안도 해소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고 핵사찰을 받아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됐지만 국제사회 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게 북한이 얻어낸 최고의 성과라 할 수 있다.

◇미국 = 이번 회담에 적극적인 태도를 견지해온 미국도 이번 협상타결로 한반도 비핵화의 기초를 다시 마련, 세계 안보전략이나 국내 정치적으로도 적잖은 성과를 얻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계기로 북핵문제 해결에 전에 없는 의지를 보여온 미국은 지난해 12월 5차 2단계 회담에 이어 베를린 북미회동, 2차 BDA 실무회의를 통해 북한과 간극을 좁히며 이번 회담에서 드디어 북한의 핵시설 폐쇄를 이끌어냈다.

공동문건 도출에 실패한 채 가시적 성과없이 끝날 경우 미국 조야에서 6자회담 무용론이 제기되면서 강경기조로 다시 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이라크 전쟁 논쟁 과정에서 군사적 외교에 대한 안팎의 비난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은 한편 이란과의 핵 갈등을 비롯한 중동 문제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적, 입지적 여유를 챙겼다.

이와 함께 이번 6자회담으로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 수 있는 모멘텀을 마련, 북한의 핵동결 의지에 대해 회의적인 딕 체니 부통령 등 강경파의 입지를 줄이면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 대북 협상파의 입지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 의장국이자 북한의 동맹으로 회담 전 과정을 주도하며 북한과 미국이 접점을 찾도록 지원함으로써 국제무대에서 외교적 위상을 더욱 다지고 책임있는 이해관계자로서 면모를 과시하게 됐다.

특히 회담 초반부터 합의문 초안을 제시하고 물고 물리는 양자, 삼자 협의를 주도하면서 협상을 급진전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더군다나 중국도 북핵 문제에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자였던 만큼 북한 핵시설의 폐쇄를 비롯한 초기단계 조치는 중국의 동북아 안정구도에 중대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전망이다.

북핵위기에 따른 동북아지역의 불안정 문제에 대한 우려를 덜어냄에 따라 중국은 국가적 목표인 `지속가능한 안정적 경제성장’에 한층 매진할 수 있게 됐다. 최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비롯한 최고 지도부가 동북지역을 잇따라 방문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국은 또 `한반도 비핵화 워킹그룹’의 의장국을 맡아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실무논의를 주도함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게 될 전망이다.

◇일본 = 납치문제를 6자회담의 중요 의제로 주장해오던 일본은 이번 6자회담을 통해 결국 어느정도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며 북.일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갖게 됐다.

일본은 납치자 문제에 대한 진전이 없으면 대북 지원에 나설 수 없다는 강경입장을 고수, 미국과 중국 등의 지원으로 북한을 압박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협상타결 전날인 12일 북.일 양자접촉이 10개월만에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별도로 북.일관계 정상화 워킹그룹을 구성키로 한 것도 일본으로선 큰 성과다. 지지율 하락으로 고심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올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북핵타결의 외교적 성과를 기조로 입지를 강화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일본이 국내 사정을 이유로 핵폐기에 따른 상응조치인 대북 식량 및 에너지 지원에 동참을 유보한 것에 대해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혜택만 누리고 부담은 지지 않으려 한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 러시아 = 그간 회담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변두리에 머물렀던 러시아는 이번 6자회담에선 몸값을 크게 높였다.

대북 채권 80억 달러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대북 에너지 지원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면서도 전력 지원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며 자국의 위상을 부각시켰다.

특히 회담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적절한 압박전술과 함께 설득 작업도 전개하면서 자유로운 입장을 십분 활용했다. 참가국들의 러시아와의 양자, 삼자 회동이 크게 늘어난 것도 러시아의 달라진 위상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동북아 평화안정 워킹그룹의 책임국을 맡음으로써 동북아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도모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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