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에 가위눌린 라이스·힐 ‘위기’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차관보가 북핵 관문을 넘지 못해 헉헉거리고 있다.

북한과 이란, 시리아 등 이른바 불량국가들과의 ‘양자대화 불용’이라는 조지 부시 1기 행정부의 대원칙을 깨가면서까지 북한에 많은 양보를 했지만 북한이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자금 송금 문제를 이유로 2.13 핵폐기 약속을 이행하지 않자 두사람에 대한 비난이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 외교정책을 지지해온 공화당의 조지 보이노비치(오하이오) 상원의원도 9일 “솔직히 말해 지금 미 정부의 정책은 (양자를 넘어) 다자주의에 가깝다”면서 “이런 정책은 집권 1기부터 시작했어야 했다”고 무원칙성을 꼬집었다.

조지 테닛 전 CIA(중앙정보국) 국장도 최근 저서에서 라이스가 과거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부시 대통령에게 조언한 것은 실패였다고 규정, 사태가 심상치않게 전개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8일 사설에서 미국이 북한 요구에 따라 BDA에 동결된 북한자금 전액을 출처 불문하고 해제했지만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고, 북한은 재무부가 국제금융시장에 세운 금기마저 무너뜨리려 하고 있는데도 부시 행정부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북한이 2.13 합의 이행 시한을 어겼지만 북한이 핵 원자로만 폐쇄하면 그 만한 가치가 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는 9일 북한이 참을성 있는 사람을 화나게 만들 정도로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으며 2.13 합의에 명시된 핵 불능화와 폐기, 비핵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인 내용도 없다고 백악관을 비판했다.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도 이날 최신호에서 라이스가 ‘악의 축’으로 명명된 북한과 이란 문제 로 휘청거리고 있으며 우파와 네오콘(신보수주의)들로부터도 심한 비난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미 관리의 말을 인용, “라이스와 힐은 부시 대통령을 설득, 북한과의 직접대화 금지라는 장벽을 허물고 북한의 핵포기를 위해 금융제재 해제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키로 했지만 북한이 약속을 어기면서 ‘국무부가 부시 행정부 1기에 세운 원칙들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 네오콘, 라이스-힐 정조준 = 라이스 장관에 대한 네오콘들의 불만은 대북 정책을 원칙없이 선회함으로써 북한에 주도권을 내주고 질질 끌려가고 있다는데 있다.

대표적인 강경파 존 볼턴 전 유엔대사는 북한의 핵폐기 약속이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 “북한의 지연전술은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술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볼턴은 나아가 “(라이스가 이끄는) 국무부는 오로지 지난 2.13 합의가 깨지지 않고 잘 보존하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를 언급하고 ‘인내에 한계가 있다’고 경고했지만 내심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미국 관계자는 “북한은 사실 ‘2.13 합의’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면서 부시 대통령이 퇴임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면서 “이 모든 것이 라이스 등 부시 외교라인의 원칙없는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힐 차관보는 워낙 북한쪽에 경도돼 있어 일본과 국무부내 일부로부터 ‘김정힐’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 힐 “나 이 자리에 없을지 몰라” = 북한과 이란 문제로 라이스 장관과 힐 차관보의 입지가 크게 약화됐다는데 별 이론이 없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라이스-힐 등 이른바 비둘기파의 위상 약화는 자연스롭게 딕 체니 부통령을 수장으로 한 매파들의 목소리를 높여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닌게 아니라 이런 분석들은 일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때 공화당 차기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라이스 장관은 대선의 꿈은 사실상 접었다는 관측이 많다. 일부에선 그가 몸담았던 스탠퍼드 대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특히 힐 차관보의 경우 한때 네오콘들 사이에서 “2.13 합의가 이행되지 않으면 곧 사임할 가능성이 있다”며 후임자까지 공공연히 거론되기도 했다.

힐 차관보가 지난 4일 존스홉킨스대학원 주최 한미관계 연설을 통해 “2.13 합의가 연내까지 이행되지 않으면 내가 이 자리에 없을 지도 모른다”고 말해, 적잖은 압박을 받고 있음을 시사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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