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동결, 핵폐기 목표달성 디딤돌 되나?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개막일인 8일 핵폐기 초기단계 조치와 상응조치 내용이 담긴 합의문 형식의 초안을 참가국에 회람시켰다. 이에 따라 9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는 중국이 제시한 합의문 초안을 놓고 집중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 초안에는 △영변 5㎿ 원자로 등 5개 핵관련 시설의 가동중단과 폐쇄 및 봉인 조치를 3개월 또는 2개월 등 특정시한 내에 이행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 수용 △다른 5개국은 이에 상응하는 대체에너지 등을 같은 기간 내에 제공하기 시작하는 ‘동시이행’ 원칙을 골자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6자회담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미∙북 베를린 회동 등 사전에 각국 간 양자협의가 다각적으로 이뤄졌고 공감대가 확인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합의문 초안이 일찍 작성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천 대표는 또 회담에서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계좌 문제가 거론 됐는지에 대해선 “전혀 없었고, 그 문제가 이슈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각국이 기조 발언을 통해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단계 조치 합의가 이번 회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이 끝난 후,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기자들에게 “우리는 핵시설 ‘동결’(freeze)에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하며 “우리의 관심은 플루토늄 생산 시스템을 다루는 것이며, 핵 폐기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회담에서 단순 동결 아닌 ‘폐쇄’(shutdown) 조치를 못박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른 동결조치 당시엔 북한 기술자들이 정기적으로 봉인을 열고 핵시설을 점검했다. 부시 행정부는 취임 초부터 “언제든지 다시 원자로를 가동시키는 동결 조치에서 끝난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줄곧 지적했었다.

지난 5일 북한을 방문해 김계관 부상을 만났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 과학국제안보연구소 소장은 “북한은 약 한 달 정도면 다시 재가동할 수 있는 수준의 핵 동결을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영변 5MW 원자로를 비롯한 핵시설 동결 가능성을 시사한 북한의 숨은 의도가 언제고 재가동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제네바 합의의 한계를 줄곧 비판해왔던 부시 행정부로서는 북측이 주장할 것으로 보이는 핵시설 ‘동결’에 대해 현재로서는 순순히 받아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동결에는 관심이 없다”는 힐 대표의 발언은 일시적인 가동 중지에 머물렀던 제네바합의와 분명히 선을 긋고, 이번엔 폐기를 전제로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제네바+α’를 충족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북한도 제네바합의 당시와 마찬가지로 ‘동결’이 아닌 ‘폐쇄’라는 표현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미국은 언제고 다시 쫓겨날 수 있는 IAEA 사찰단의 활동에 만족하지 않고, 핵시설 폐기 전까지 북한 기술자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의도다.

한편 힐 대표는 6자회담 개막식에 앞서 회담 전망에 대해 “전적으로 김계관 대표와 그의 보스(김 위원장) 사이에서 결정되는 문제”라며 “김 대표가 합의를 하라는 (김정일의) 훈령을 받아 왔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힐 대표의 지적대로 김정일의 판단이 주요한 관건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진짜 핵폐기를 전제로 한 훈령을 내리지 않는다면 초기단계에 대한 어떠한 합의도 임시방편이 될 공산이 크다. 미국이 공언한 대로 동결 이후 2개월 내에 폐기단계로 이행할 것을 계획한다면 지금의 분위기는 2개월 후에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다.

앞으로 회담은 동결의 전제가 되는 핵폐기에 대한 참가국간의 해석차이가 주요한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합의문에 핵폐기 목표와 초기단계 조치 이후 핵폐기 이행 과정이 성명하게 들어 간다면 이후 주도권은 미국이 가져갈 수 있다. 그러나 합의문 작성에 급급해 애매하게 비핵화로 에둘러 표현한다면 향후 북한의 잔꾀가 발휘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심각한 에너지난 타개 의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북한이 시급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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