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카트리나 효과’

카트리나를 비롯해 허리케인 재난이 미국의 국내외 정치와 정책 전반에 장단기 영향을 미치고 있거나 그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북한 핵문제도 그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외 위신 추락, 조지 부시 대통령의 국내 지지기반 약화 등 무형적 요인이 초래할 미묘한 대외전략 변화는 차치하고라도, 이라크전 반대론자들이 “험비(장갑차) 대신 레비(제방)을 만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당장 돈 부족 문제가 국내외 정책에 주름살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핵 문제에도 직접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최근 타결된 북핵 공동성명 에서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은 북한에 “에너지 지원을 제공할 용의를 표명하였다”고 돼 있는 만큼 북핵 문제의 완전해결까지 긴 여정가운데 초반에 돈 문제가 대두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미 의회의 한 아시아담당 보좌관은 “고유가 시대에다, 카트리나 피해 복구.재건비가 막대하게 드는 상황에서 의회가 미국의 납세자에게 북한에 줄 중유 비용을 대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통일부는 한국이 대북 송전을 시작하기전, 북한의 핵폐기가 진행되는 과도기간에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각각 연간 50만t(5천만달러)의 중유를 균등 분담, 북한에 지원하는 예시안을 국회에 내놓았다.

이 미 의회 관계자는 짐 리치 하원 아태소위원장과 톰 랜토스 의원이 최근 방북후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의회의 전폭적인 지원.지지 입장을 밝히지 않았느냐는 반문에 “그것은 카트리나 이전 일”이라며 “카트리나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미국의 대북 에너지 지원 직접 참여 자체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미국이 상징적인 수준의 에너지를 제공할 경우에 대한 의회의 반응에 관한 질문엔 즉답을 피한 채 “그럴 경우 일본도 납치문제 해결전엔 중유 제공이 어려울 것이므로 한국과 중국이 대부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전망에 대해 한 외교소식통은 “공동성명 타결에도 불구하고 북핵 해결의 전도에 지뢰밭이 많다는 뜻”이라고 가능성에 공감했다.

미 국무부 한 관계자는 “미 의회가 공동성명을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엔 “좋은 합의니까 그럴 것”이라고 말했으나, “카트리나 등 허리케인 피해를 감안할 때 공동성명중 대북 에너지 지원 항목도 지지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엔 “의회에 물어보는 게 좋겠다”고만 말했다.

그러나 미 의회조사국(CRS)의 외교안보분야 전문가 딕 낸토 연구원은 “지금 부시 행정부가 굉장한 재정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아직은 공화당이 의회를 지배하고 있는 만큼, 부시 대통령이 원하면 의회가 결국 대북 지원을 승인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반도 전문가인 고든 플레이크 태평양문제연구소장 역시 같은 질문에 공화당 인사들과 접촉해본 결과 “부시 행정부가 공화당 정권이니 요구하면 (승인)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앞으로 2,3년간은 행정부가 의회에 요구할 일이 없는 것 아니냐”며 “미국이 그런 대북지원을 하려면 앞으로 많은 일들이 이뤄져야 하는 만큼 지금은 그 문제를 고민할 것도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공동성명이 타결되기는 했지만, 북핵 문제 해결의 궤도에 안착한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의 대북 중유지원 문제가 현실적인 현안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다. 그는 27일 오후 (현지시간) 아메리칸대 한 강연에서도 “북한이 핵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렸을까 극히 회의적”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부시 미 행정부에서 2001-2003년 국무부 정책실장을 지낸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은 카트리나 재난이 미국민의 이목을 독점했던 지난 9일 유명 온라인 매체 슬레이트 닷 컴에 올린 글에서 “미 외교정책에 대한 카트리나 효과를 차단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카트리나 여파로 인해, 이라크에 대한 개입을 줄이고 자원을 국내에 집중시키라는 정치적 압박이 부시 행정부에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카트리나는 고통스럽지만 중요한 경고를 해준 셈”이라며 “카트리나는 9.11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힘이 아무리 크더라도 취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며, 무제한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카트리나 재난 직후 베이징 북핵 6자회담 속개를 앞둔 상황에서 미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카트리나 효과’로 회담을 전망하면서 “부시 행정부가 좀더 유연하게 나올 가능성이 있지만, 북한이 이를 악용해 강하게 밀어붙이면 회담이 깨질 것이므로 북한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었다.

베이징 공동성명은 미국과 북한이 모호한 표현에 이견을 숨긴 타협책이라는 일반적인 해석과 상통하는 대목이다./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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