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에는 네 가지 커다란 국제정치의 주제가 독립변수이자 종속변수로 자리하고 있다. 독립변수이자 종속변수인 이들이 상호적으로 작용하기에 4차 방정식이라 할만하다. 이 묘수풀이 중심에 북한이 있는 가운데 한, 중, 일, 미, 러시아가 마주하는 다항함수다. 6자 회담은 이 함수를 풀고자 했던 최초의 증명과정이었다.
그럼 네 가지 변수란 무엇일까. 첫째는 비확산(nonproliferation) 변수이다. 20세기 현대사를 통해 태어난 기존의 핵 외에 더 이상의 핵무기가 지구 상에 퍼지는 일만큼은 막자는 것이 비확산의 이념이자 목표다. 이를 위해 원자력 발전 같은 평화적 핵 이용조차 국제사회의 엄격한 통제와 감독을 받고 있다. 관리 받지 않은 독자적인 모든 핵개발은 불법이자 현재적 위협이 된다. 비확산 문제야말로 이 함수식이 풀어내야 하는 최종 답이 된다. 따라서 목표상수라고 부를 만하다. 기술적으로 ‘동결’이니 ‘폐기’니 하는 논의는 이미 만들어진 핵을 어떻게 할 것인지 입장 차를 반영한 개념이지만, 기본적으로 핵이 더 이상 ‘퍼지는’ 일은 예방하자는 비확산의 근본 취지는 타협될 수 없다.
둘째는 원조(aid) 변수이다. 이제껏 북핵 해결을 위한 서구의 접근은 핵 대체재 제공방식의 보상이었다. 북한이 내세운 핵개발의 이유는 전력수급이었다. 1994년 제네바합의에 의한 경수로 딜(deal)은 바로 이 점을 노렸다. 더욱이 북한처럼 산업이 거의 붕괴된 체제에서 전력은 에너지의 출발이다. 핵이 아니더라도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아오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외부수혈은 필수다. 그러면 무엇부터 어떻게 도울 것인가. 거의 모든 북한관련 국제기구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출범했다. 통일 이후까지 가장 오랫동안 논의될 주제는 원조변수이다.
셋째는 다자안보협력(Mult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변수이다. 동북아시아의 화약고는 단연 핵을 가진 북한이다. 안보협력 담론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데다 이론적으로도 명확히 정립된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지역의 안정을 해치는 위협 요소에 대처하기 위해 관련국의 협조를 유도하고, 지속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를 구성하며 운용하기 위한 메커니즘에 관한 것이 다자안보협력의 문제이다. 북한의 핵문제가 아니더라도 동북아 지역은 슈퍼파워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지정학적 특수성이 가장 두드러진 권역 아니던가.
넷째는 정치협상(Political negotiation) 변수이다. 앞선 세 가지 변수들을 논의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모든 과정이 곧 정치협상이다. 일종의 흥정(bargaining)에 가깝다. 상호 충돌할 수 있는 국가이익을 어떻게 조화시키며 납득할만한 양보를 이끌어가는 과정이야말로 국제정치의 백미다. 국내정치가 이익집단 간 권위의 분배과정(D. Easton)이라면 국제정치에 있어 안보문제만큼 이익의 공통분모가 큰 영역도 드물다. 북한과 관련국 간 ‘일 대 다수’ 게임협상인 것이다.
결국, 북핵 문제의 현상은 비확산(1) 목표에 따라 북한 내 존재하는 핵을 소멸(그것이 동결이든 폐기든)시키기 위해 관련국이 협상(4)을 통해 원조(2)를 제공하는 다자안보협력(3)의 틀이라는 구조 속에서 파악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변수 중 한국이 가장 취약한 주제와 많은 부담을 져야 하는 분야는 무엇일까. 어떤 주제를 전략적 핵심으로 삼아야 할까.
유일한 과거 사례는 6자 회담이다. 이 실패사례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네 가지 변수가 북한이라는 하나의 상수, 정확히 표현하자면 (6자 회담이)핵을 포기할 의사가 조금도 없는 북한 지도부라는 독립변수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에 상수로 굳어진 것은 아닐까. 햇볕정책 등 과거 대북정책이 북한이란 상수가 변수로 되는데 얼마큼의 매개 효과가 있었던 걸까.
어떤 첨단 이론이 나와도 예측불가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할 듯싶다. 북한은 핵개발을 지속할 것이고, 제재의 칼을 뽑아든 국제사회는 대북 압박을 강화할 것이나 동시에 미국을 중심으로 북한과 타협할 카드(그것이 화력발전소 제공이든 중유 제공이든 뭐든)를 물밑에서 흥정할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핵개발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은 얼마나 시간을 더 지체시킬 수 있느냐가 현실적 전략이 돼버린 것 같다. 결국 누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는 시간 게임이 된 꼴이다. 북한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의 카드를 뻔히 읽는 블랙잭은 아닌가? 그렇다면 승부처는 게임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각자의 내부 사정이야말로 ‘판’ 전체를 흔들 변수 아닐까. 이 상황에서 한국은 얼마나 유능한 ‘딜러’가 될 수 있을까?
북한 핵문제의 이면에는 이 같은 여러 경로의 다항식이 상존한다. 이제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최대한 현실적이어야 할 때다. 대통령 취임사에 언급된 ‘확실한 억지력’을 바탕으로 한 ‘남북 간 신뢰 쌓기’를 위해서 먼저 필요한 첫 번째 작업은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진단 같다. 그것이 아무리 쓰디쓴 진실이라 하여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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