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개발 ‘주역’ 누구일까

‘북한 핵개발의 아버지’로 부를 만한 인물은 누구일까.

수십년에 걸친 북한의 핵 계획을 추진해온 과학자들은 엄격히 통제된 북한의 다른 분야가 그렇듯 비밀의 장막에 싸여있다.

전문가들은 북한 원자력 개발의 ‘아버지’로 단정할 만한 과학자 1명을 꼽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위대한 지도자, 지도자 동무’라는 제목의 김정일에 관한 책을 쓴 베르틸 린트너는 핵개발을 주도한 파키스탄 과학자를 언급하면서 “북한에는 A.Q 칸이 없다”고 말했다. 칸 박사는 핵개발을 주도해 파키스탄을 핵클럽에 진입시킨 인물이다. 그는 핵기술을 북한과 이란, 리비아에 확산시켰다고 시인했다.

핵개발은 집단적인 노력으로 이뤄지기 마련이지만 카리스마를 갖춘 개인의 두뇌와 결단력에 의지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런 인물은 국가적인 원자력 개발사업 주도자로 칭송되곤한다.

분쟁해결 두뇌집단 국제위기감시기구(ICG)의 북한 전문가인 피터 벡은 “파키스탄과 다른 국가에는 ‘미스터 폭탄’이 있다”면서 “언젠가는 북한의 ‘미스터 폭탄’도 신원이 밝혀질 수 있겠지만 북한이 세계에 알리고 싶을 때라야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에서는 다른 모든 노력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스타들도 엄격한 감독하의 집단적 노력에 묻힌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중요한 진전은 김정일이나 김일성의 공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북한 핵계획에 관한 책 편집자인 김명수 명지대 교수는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그들의 자료에 접근이 안된다”고 말했다.

제인 정보그룹 선임 애널리스트로 북한 국방 및 정보전문가인 조지프 베르무데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경험과 노력이 없었다면 북한의 핵계획이 오늘의 수준까지 오지 못했을 중추적 역할을 한 소수”의 북한 과학자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일 지하핵실험 발표로 절정을 이룬 북한 핵개발의 기원은 2차대전 종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일본의 한반도 식민통치 시절 일본 대학에서 공부한 도상록과 이성기 같은 인물은 1945년 이후 핵계획의 토대를 놓은 과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작고했다.

다른 영향력있는 인물인 서상국은 1950년대에 다른 많은 북한 과학자들과 함께 북한의 핵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옛 소련에서 공부했다. 서상국은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노동당 핵심 간부 출신으로 망명 탈북자중 최고위 인물인 황장엽은 AP통신 인터뷰에서 “그는 이른바 천재”라고 말했다.

가장 수수께끼의 인물로 일컬어지는 북한 핵과학자는 여러 보도에서 경원하 박사로 알려진 인물일지 모른다.

호주 신문 ‘더 오스트랄리안’은 2003년 4월 경원하를 “북한 핵계획의 아버지”로 묘사하면서 서방으로 망명한 북한 핵과학자중에 그가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애초 경원하가 미국으로 갔다고 보도했으나 후속기사에서 스페인으로 갔다고 전했다.

당시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경원하 박사가 미국에 있느냐는 질문에 망명 가능성을 절대로 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경원하를 북한 핵개발의 주요 인물로 꼽지만 황장엽을 포함한 다른 전문가들은 그에 대해 알지 못하며 언론보도를 통해 그의 이름을 들었다고 말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작년에 경원하 박사의 초기 삶을 추적한 9회 시리즈를 게재했다. 아사히에 따르면 경원하는 한국에서 공부했으며 브라질에서도 거주했다. 나중에 캐나다로 건너가 대학원을 다녔으며 1972년 북한으로 들어갔다.

김태우 한국 국방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경원하가 북한의 핵개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아직 북한에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로스 알모스 핵연구소장 출신으로 2004년 1월 비밀에 싸인 영변핵과학연구센터를 방문한 지그프리드 헤커는 네이처지에 자신이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매우 유능했으며 그들이 유능하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헤커는 현재 교수로 일하고 있는 스탠퍼드대학 대변인을 통해 북한 과학자 개인에 관한 논평을 거부했다.

북한 핵계획의 복잡한 조직적 성격도 진상을 알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제인그룹의 베르무데스는 “핵 계획이 한개라고 말할 수 없다”면서 “당, 군, 내각 등 북한 전체를 망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주민들에게는 핵개발의 ‘아버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답이 있다.

미 국무부 북한문제 전문가 케네스 퀴노네스는 영변에서 핵 이미지로 둘러싸인 밝게 채색한 거대한 김정일의 벽화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플류토늄을 이용한 핵개발계획 폐기에 동의한 후 1990년대 중반 통산 5개월을 영변에서 보냈다. /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