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폭탄주 문화가 널리 퍼지고 있다.
요즘에는 평범한 사업상 술자리에서도 폭탄주가 흔히 오가고 있는데 ‘사업상 술자리’라는 것은 99%이상이 상급자나 권력 있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청탁하는 일이다.
북한에서는 보통 폭탄주를 ‘혼합주’라고 부르는데,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보던 간부들 사이에서 유행이 시작됐다. 여기에 “장군님을 따라 배우자”는 정치구호에 대한 풍자가 곁들여 지면서 ‘담력주’라는 말도 생겨났다.
김정일은 자신이 주도하는 술자리에서 “간부의 징표 중 하나는 주량”이라면서 술문화를 부추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입소문이 중간 간부들에게까지 퍼지면서 그를 음주의 대가(大家)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술 한 잔을 마셔도 장군님처럼 ‘담력’있게 마셔야 한다”며 폭탄주를 즐긴다. 그래서 ‘담력주’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지금도 북한 주민에게는 가정이나 식당에서 조촐하게 술 한 잔 기울이는 것이 기본 문화다. 지방 서민들 중에는 ‘농태기술’이라 불리는 옥수수 술과 맥주를 섞어 먹는 북한식 ‘소폭'(소주-맥주 폭탄주)을 먹는 사람들도 있으나 북한 폭탄주의 기본은 뭐니뭐니해도 양주라고 할 수 있다.
양주는 최소 중앙당 간부급 이상이 되어야 돈 걱정 안하고 마실 수 있다. 평양 고려호텔 뒤편 음식점거리 식당 지하에는 한국의 레스토랑을 흉내 낸 고급 술집들이 즐비하다. 고려호텔이나 청춘호텔 등에도 이런 고급 술집이 들어서 있다. 어둠이 깃들면 간부들은 이런 곳을 찾아 수백 달러에 달하는 양주를 폭탄주로 즐긴다. 이런 술집들에서는 주로 북한 돈 3~7만 원짜리 저가 외국 브랜디 양주를 비롯해 ‘헤네시XO'(500~1천 달러)까지 여러 종류의 술이 판매된다.
이런 술집에서는 자기가 직접 양주를 들고 가서 맥주만 시켜 폭탄주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잘 보여야 하는 사람과 가진 술자리에는 고급 양주를 직접 들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중앙당 간부나 군부 고위층들은 1병에 1500달러가 넘는 고급 양주도 우습게 여긴다. 이들은 외화벌이 기관이나 주류 상인들에게 정기적으로 양주를 ‘상납’ 받기 때문이다.
2007년 당시 노동당 재정경리부에 근무했던 한 간부는 딸 결혼식에서 술값만 2만 달러를 썼다는 소문이 전해지면서 평양주민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는 평소에도 병당 3000달러가 넘는 프랑스산 ‘꼬냑’을 상급 간부들에게 바치며 친분을 유지했다고 전해진다.
북한 고위층들이 먹는 폭탄주는 보통 40도가 넘는 위스키, 보드카, 꼬냑 등에 일본 아사히맥주, 프랑스의 와인, 중국 오성맥주 등을 섞은 것들이다.
보통 빈 맥주잔에 양주를 1/3정도 채운 뒤 양주잔을 넣고, 여기에 서서히 맥주를 부어 양주잔을 가라앉도록 해 술을 섞는 방식이 가장 보편적이다. 한국과 다른 점은 ‘원샷’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신다는 점이다. 물론 벌주형식으로 한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술을 권하는 모습은 북한에서도 흔한 풍경이다.
음료수를 섞는 칵테일 식 폭탄주도 있다. 맥주잔에 얼음을 3분의1정도 채우고 콜라(혹은 음료수)→맥주→양주 순으로 술을 채운다. 서서히 취기가 오르기 때문에 주로 여름철에 많이 마시는데 일부 주당(酒黨)들은 “숙취가 빨리 없어진다”며 ‘해장술’로 마시기도 한다. 이 폭탄주는 중견 간부들의 생일이나 승진 축하 연회에서 많이 등장한다.
이런 식의 폭탄주 문화는 반드시 성(性) 문화를 동반한다. 북한 간부들은 술자리에서 “술과 여자는 떨어질 수 없는 유기체”라고 공공연히 떠벌이며 여성들을 술자리의 흥을 돋우는데 이용한다.
이때도 간부들이 주고받는 말이 정말 가관이다. 그들은 “생각도 행동도 장님을 따라해야 한다”고 키득거리며 술집 접대원 여성들을 농락한다.
폭탄주 문화가 확산된 데는 2006년 이후 본격 보급된 노래방의 역할도 컸다. 노래방에서도 폭탄주는 흔한 메뉴다.
북한의 폭탄주 문화 속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외국 주류를 수입하는 외화벌이 기관 중간 간부들이다.
이들은 해외에서 1병에 100~150달러짜리 양주를 수입해서 3~5배 정도 붙여서 북한 내부에 팔고 있다. 술집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뇌물용 양주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판매된다.
평양 대외봉사총국에서 전문 주류수입 담당 일꾼의 경우 중앙당 부장급 간부들조차 부러워하는 ‘노른자’ 직책이다. 그들은 자기 돈도 아닌 국가 돈을 가지고 양주를 수입하면서도 개인거래를 통해 한해 수만 달러의 이익을 챙긴다.
그들은 “자리가 높은 사람들 일수록 가격을 따지지 않고 양주를 구매하면서도, ‘사업상 어려움이 있으면 바로 말하라’고 할 정도로 우리를 사업의 방조자로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윗사람에 바칠 뇌물 뿐 아니라 아랫사람들에게 명절 선물로 줘야 하는 양주까지 마련해줘서 고마워 한다는 뜻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중앙당 간부 및 시, 군당 책임비서들은 국가 명절 때마다 ‘김정일 선물’ 명으로 양주 한 병씩 받아 챙길 수 있게 된다.
폭탄주 문화는 양주 뿐 아니라 북한산 독주에 대한 수요도 증가 시켰다. 90년대 식량난 시절 집에서 옥수수 몇 kg씩 술로 담가 팔던 사람들이 생겨났는데, 이제는 공장형으로 술을 만드는 사람들까지 생기고 있다.
실제 2007년 함경북도 청진에서는 외화장사를 하던 한 여성이 옥수수 40t을 사들이고 10명의 양조 기술자들을 고용, 자신의 집 지하에 밀주제조 시설을 만들어 운영하다 북한 당국에 적발된 일이 있었다. 그녀는 양곡비축죄로 15년 교화형을 선고 받았다.
북한 폭탄주가 ‘장군님의 담력주’로 정식화 되면서 이제는 10대들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철없는 중학생들 중에는 맥주에 일명 ‘얼음’이라고 불리는 북한산 마약까지 섞어 마시는 극단적인 행태를 보여 기성세대들의 근심은 갈수록 커져만 간다.
2006년 함경북도 무산에서는 성 모 학생을 우두머리로 하는 10대 건달조직이 결성돼 북한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일이 있었다. 이들이 폭탄주를 돌려 마시며 외쳤던 구호가 ‘성사옹위’였다고 해서 ‘성사옹위패 사건’으로 불린다.
‘결사옹위’라는 북한 정치구호에 우두머리 학생의 성(姓)을 넣어서 ‘성사옹위’라고 붙인 것이었다. 북한당국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했다. ‘음주’보다 ‘조직결성’에 책임을 물어 가담 학생 모두 ‘소년교양소’에 보내졌으며, 부모들은 모두 농촌으로 추방됐다.
철없는 10대들이 폭탄주에 취해 한순간에 ‘정치범’으로 내몰리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