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억류중인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의 석방을 위해 25일 평양으로 향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방북 성사를 위해 그동안 독자적 라인을 통해 북한 측과 물밑 접촉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도 카터 전 대통령은 특사 자격이 아니며 대북 메시지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특사 자격도 아닌 개인 자격의 방북에 북한이 곰즈 씨의 석방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왜 북한이 카터 전 대통령을 선택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미북관계와 남북관계의 상황은 1994년 1차 북핵위기 상황과 흡사하다. 당시 한국엔 보수정권이 미국엔 민주당 정권이 집권해 있었다. 또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전격 탈퇴하자 유엔은 국제적인 대북제제에 착수했고,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한반도에는 군사적 충돌 우려가 높아졌다.
이는 2010년 현재 북한의 핵실험과 6자회담 이탈에 따른 국제적 대북제제와 천안함 사건으로 한·미의 연합훈련과 제재조치, 이로 인한 남북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 것과 매우 흡사하다.
때문에 북한이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5년 전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물꼬를 터준 카터 전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은 이번이 두 번째다. 1994년 6월 당시 방북해 김일성과 회담을 갖았고, 이에 따라 미북은 핵개발 동결과 핵사찰 원상복귀에 전격 합의, 전쟁 일보 직전의 한반도 상황은 일단락된 바 있다.
따라서 전례에 비춰볼 때 북한은 천안함 사건 이후 강화된 대북제재로 인한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카터 전 대통령의 이번 방북을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 기자 석방을 위해 방북했을 당시와 마찬가지로 김정일과의 면담 성사 가능성도 높다.
카터 전 대통령이 그간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에 대해 “북한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징벌조치가 정권보다는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며 대북제재에 대한 회의론을 펴왔기 때문에 북한의 입장에서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조치를 푸는 열쇠로 카터 대통령이 ‘제격’인 것이다.
평소 카터 전 대통령은 다시 북한을 방북해 경색된 미북관계를 해소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내보인 만큼 이번 방북이 단순한 곰즈 씨의 석방보다는 미북관계, 북핵문제를 포함한 남북문제 등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이 카터의 방북을 활용하려 할지라도 미국의 대북정책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북한이 앞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평화공세’에 적극 활용했음에도 ‘인도적 사안과 대북정책은 분리’라는 미국의 입장엔 변화가 없었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데일리NK와 통화에서 “미국이 정책적 차원에서 북한으로 하여금 방향전환을 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라도 현재 미국이 가지고 있는 정책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도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 등에 이용하려했지만 실제 그렇게 되지 못했다”며 “미국 정부가 말한 것처럼 곰즈 씨의 석방에 중점을 둔 방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는 곰즈의 석방을 통해 인도적 차원에서 돌려보낸다는 평화적 제스츄어를 보이고 노벨평화상을 받고 평화의 메신저라는 의미가 있는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현재 미북관계나 남북관계에서 적극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강 외교안보연구원 미주연구부장도 “클린턴 방북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대북정책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북한이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돌파구로 활용하려 할지라도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 관계개선의 여지를 두지 않았던 미국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