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축구 안영학 “김정일 친서까지 받았다”

“예선을 시작할 때는 선수들이 모두 ‘하늘의 별따기’라고 생각했는데 기어코 별을 따냈다”

지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44년 만에 본선 진출의 신화를 작성한 북한 축구 대표팀의 미드필더 안영학(31.수원 삼성)이 “어릴 적 꿈이었던 월드컵 진출을 이뤄서 기쁘다. 남과 북이 함께 월드컵 무대에 나서는 역사적인 일을 해내서 기쁘다”라고 강조했다.

안영학은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원정 경기를 앞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친서까지 보내며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라고 독려했다고 공개했다.

안영학은 23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월드컵 본선 진출의 소감과 더불어 북한 대표팀이 겪었던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본선 무대에서는 될 수 있으면 브라질,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 강팀과 맞붙어서 골을 넣고 싶다”라며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젊었을 때 월드컵 무대에서 골을 넣었다고 얘기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하늘의 별을 따다

북한 축구대표팀은 지난 18일 새벽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치러진 사우디아라비아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차전에서 득점 없이 비기면서 B조 2위를 확정,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의 기적을 일궈냈다.

그렇다면 현지 분위기는 어땠을까.

안영학은 이에 대해 “한국이 이란과 경기를 하던 시간은 우리 대표팀의 낮잠 시간이었다. 한국의 결과가 너무 궁금해서 호텔 숙소에서 룸메이트인 정대세(가와사키)와 한국-이란 경기를 TV로 지켜봤다”라며 “한국이 먼저 골을 내줬을 때 조마조마했다. 끝까지 한 골을 넣어 달라고 기원했는데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골을 넣었을 때 너무 좋았다”라며 웃었다.

그는 “경기장으로 나서기 전에 선수들끼리 ‘한국이 이란과 비겨줬다. 이제 우리도 비기기만 하면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으니 끝까지 잘하자’라고 결의했다”라며 “한국이 비겨 우리의 기세를 높여줬다”라고 덧붙였다.

안영학은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와 비기고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하고 나서 그라운드에서 좋아하다 힘을 빼는 통에 선수들이 다들 지쳐서 숙소로 와서는 피곤해서 그냥 잤다. 파티도 못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북한이 ‘하늘의 별을 딸 수 있다’라고 생각이 변한 순간에 대해 안영학은 “솔직히 3차 예선 1차전이었던 요르단 원정(1-0승)을 끝내고 나서도 팀 내에선 ‘본선에 가자’라는 의지가 적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과 같이 식사하면서 ‘영학아 너의 꿈은 뭐냐’라고 물어서 ‘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얘기’라고 말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안영학은 이어 “최종예선 6차전에서 한국에 0-1로 지고 나서도 본선 진출은 ‘하늘의 별 따기’였지만 평양에서 이란과 비기고 나서 선수들이 ‘하늘의 별을 따자’라고 변하기 시작했다”라고 덧붙였다.

◇북한 축구 ‘이것이 궁금하다’

대한축구협회는 대표팀이 7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하고 나자 포상금 계획을 발표했다. 무려 44년 만에 본선에 나선 북한 선수들은 어떤 대우를 받을까.

이에 대해 안영학은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모르겠지만 포상이 있다고 들었다”라며 “보통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 아파트나 자동차를 주고 ‘영웅 칭호’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정도 수준은 아니겠지만 포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안영학은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원정을 떠나기 전에 선수들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낸 친서가 전달됐다”라며 “편지에는 본선에 꼭 진출해달라는 당부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라고 공개했다.

북한축구협회는 사우디아라비아 원정에 평양에서 쌀과 김치를 비롯한 밑반찬을 공수하고 요리사를 대동해서 선수들에게 한식을 먹게 했을 정도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그라운드에서 무뚝뚝한 표정인 김정훈 북한 감독에 대해서는 “향상 얌전하고 선수에게 격하게 말씀하셨던 때를 못 봤다. 선수들이 짐이라도 들고 있으면 ‘괜찮으냐’라고 꼭 물어봐 주신다. 선수들 모두 감독님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월드컵 본선에선 ‘공격적 플레이’

안영학은 북한의 전술을 ‘선 수비- 후 공격’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5명의 수비라인 앞에 안영학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위치해 6명이 수비라인을 구성하고 공격할 때는 정대세와 문인국 등 빠른 선수들이 골을 넣는다는 것.

안영학은 이에 대해 “전술은 감독의 몫이지만 개인적으로 본선 무대에서는 수비적으로 경기하면 골을 넣을 수 없다고 본다”라며 “압박도 강하게 하고 공격적으로 나서야만 세계적인 수준의 팀과 맞설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안영학에 따르면 북한 대표팀은 평양 대동강 인근 송신구역에 있는 대표팀 훈련장에서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게 된다.

대표팀 훈련장에는 천연잔디 구장이 4면이 마련돼 있고, 최근에 인조잔디 구장 1면과 천연잔디 구장 1면을 추가로 짓고 있다. 남자 대표팀과 여자 대표팀 숙소가 따로 있고, 청소년 대표팀 숙소를 짓고 있다는 게 안영학의 설명이다.

안영학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듣지 못했지만 A매치 때 유럽과 남미의 강호들과 친선전을 치른다는 얘기를 들었다”라고 북한의 월드컵 본선 대책을 귀띔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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