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축구선수단의 승리를 기원한다

2002년 월드컵의 감흥은 아직도 많은 국민들에게 잔영처럼 남아 있다.

그때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나 너나없이 아~대한민국을 외쳐대며 열광 속으로 빠져 들었던 시간이었다. 이번 설은 2002년의 감동을 우리 모두에게 다시 선사할 수 있을는지…

오늘,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 저녁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한국과 쿠웨이트의 2006년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첫 경기가 열린다. 많은 이들이 고향집의 아랫목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일가친척들과 설 음식상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한국의 승리를 응원할 것이다. 또 일부 젊은 극성축구팬들은 2002년의 감동을 되살리기 위해 월드컵 경기장 주변을 비롯한 곳곳에서 거리응원전을 펼칠지도 모르겠다.

한국과 쿠웨이트의 경기에 조금 앞서 일본 도쿄 근방 사이타마 경기장에서는 북한과 일본의 축구 경기가 열린다.

북한의 윤정수 감독은 경기에 앞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수단의 컨디션은 좋다. 좋은 성적을 자신한다.”며 여유를 보였다. 나는 윤감독의 말대로 되기를 기원해본다. 그것은 윤감독과 북한의 축구선수단뿐만 아니라 북한인민에게도 기쁜 소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선수단의 승리는 북한인민의 기쁨

한국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갖는 생각은 때때로 크게 모순되어 있다. 북한은 화해협력의 대상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 북한은 모조리 타도해야할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각각 양쪽의 극단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북한선수단에 응원의 소리를 보내자면, 북한이 화해협력의 대상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같은 민족이니 응당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겠지만, 북한을 타도대상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무슨 김정일이 좋아할 소리를 하느냐고 어리둥절해 할지도 모르겠다.

북한은 두 개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즉 때로는 김정일로, 때로는 북한의 실질적 주인이지만 현재는 완전 무권리의 노예상태에 있는 북한인민으로. 이 양측면을 올바로 볼 수 있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북한이라는 안개 속의 실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그 모든 논란은 깨끗이 정리될 것이다.

북한과 같은 독재체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감정표현이 제한되어 있다. 특히 기쁨을 표현하는 일에서 그러하다.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들키는 것이 곧 자멸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반면에 작은 것에서 느끼는 기쁨이 민주주의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그것과는 비할 바 없이 크다. 그런 면에서 체제가 허용하는 기쁨의 범위 안에서 그 기쁨의 크기를 최대화 하는 것이 삶의 지혜가 된다. 북한에서는 스포츠가 그러한 거의 유일무이한 영역이다.

이렇게 본다면 북한의 선수단이 일본에 승리를 거두었다고 했을 때, 그 승리로 인해 가장 기쁨을 느낄 사람은 누구일까. 북한선수단이 승리를 거둔다면 김정일은 선수단에게 갖은 치하를 할 것이며, 승리가 자신의 영도로 비롯됐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할 것이다. 그래서 이날만큼은 김정일이 그 특유의 호방한 척하는 웃음을 터뜨린다 해도 좋다.

그러나 북한선수단의 승리는 김정일의 작은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기쁨을 북한인민들에게 줄 것이다. 과거 일제시대도 지금의 북한과 비교해 월등히 사람이 살만했었지만, 그럼에도 당시 나라를 뺏긴 조선인민들에게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이 가져다준 기쁨은 그 얼마나 컸던가. 이처럼 북한선수단의 승리는 마른하늘의 단비와도 같은 해갈을 북한인민들에게 선사할 것이다.

북한선수단에 대한 승리 기원은 인간 최소한의 예의

어차피 스포츠의 세계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법이다. 정정당당히 승부한다면 그 나름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따라서 한국이나 일본은 이기면 좋지만 져도 그렇게 크게 가슴아파할 일은 아니다. 축구광을 빼놓는다면. 만일 한국이 경기에서 진다면 언론의 질책이 따르고 소주가 좀 더 팔릴지는 몰라도 그것으로 그만이다. 일본이야 더더욱 좀 진다해도 큰 문제가 있으랴.

그러나 북한의 선수단은 아마 상당히 큰 질책을 받게 될 것이 틀림없고, 고통 속에서 잠시나마 위안이 될 뻔 했던 승리에 대한 기대감이 패배로 돌아온다면, 악랄한 독재체제 아래 하루하루를 버티는 북한인민들이 겪을 낙담은 그 얼마나 클 것인가. 하여 나는 북한 선수단의 승리를 기원한다. 그래서 북녘 땅 방방곡곡에서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지길 고대한다. 북한인민들의 가난한 설 음식상에 술이나 과일, 고기 대신 차려질 기쁨으로 말이다.

우리 국민들도 한국선수단의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 못지않게 북한선수단의 승리를 빌어주자.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가는 북한인민에 대한 한국국민의 최소한의 애정이다. 이것이 6000명 넘게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탈북동포를 포함해 지금도 이국땅을 떠돌고 있을 셀 수 없이 많은 탈북자들에 대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이다.

김윤태 논설위원(북한민주화운동본부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