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6일 우리 정부가 제의한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거부한 것은 실무접촉 수준을 넘는 고위급 접촉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의제를 논의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란 분석이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요구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통 큰 용단’을 내려 수용했으니 자신들이 간절히 바라는 금강산관광 재개와 5·24조치 해제 등을 우리 정부에 요구할 것이란 지적이다.
북한은 이날 오전 조선적십자중앙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통지문을 통해 “지금은 이산가족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가질 환경과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못하다”고 통보했다.
통지문 이어 “현 남북관계로 봐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같은 중대한 인도적 문제들은 남북 적십자간 협의로 해결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며 “인도적 문제는 인도적 방법으로 풀자”고 주장했다.
북한이 우리 측 제의를 거부하면서 통지문을 통해 밝힌 “환경과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못하다”는 이날 끝나는 ‘키 리졸브’와 다음 달 18일까지 진행되는 한미 연합군의 실기동훈련(FTX)인 ‘독수리 연습’을 언급한 것이다. 때문에 당분간 남북관계는 냉각기를 걸을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우리 측 제의를 거부한 것은 시간을 벌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이산가족 문제를 대남협상의 카드로 활용해 남북대화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
또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마무리된 지 열흘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또 이산가족 문제를 논의하는 ‘적십자 실무접촉’을 곧바로 수용하는 것도 북측으로서는 모양새가 빠지고 체면을 구긴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산상봉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경제적 지원과 같은 반대급부 없이 원칙만 내세우는 우리 정부의 제안을 바로 수용하게 되면 향후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불어 후속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데일리NK에 “후속 이산가족 상봉에는 관심 없고 금강산관광 재개나 경협 등과 같은 문제를 논의하는 회담을 하자는 것”이라며 “바로 응한다면 우리 정부에 끌려다닌다는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벌면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동렬 자유민주연구원 원장은 “남북관계를 주도하기 위해 대남유화와 강경 양면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라며 “장성택 처형 이후 비합리적 지시나 결정에 대해 제지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김정은의 손가락 지시로 움직이는 북한이 어떤 태도로 나올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