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악 성추문 주인공은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수석 비서관회의에서 윤창중 파문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사실상 첫 대국민 사과로 청와대가 이 사건을 매우 엄중한 사건으로 보고 있음을 말해준다. 청와대 차원에서는 벌써 세 번째다.


북한에서는 이러한 성적인 스캔들을 부화 사건으로 부르는데, 대부분 남성이 여성들을 첩으로 데리고 살거나 다른 여성들과 간통 사건을 일으킬 때 사용한다. 북한에서 성추문은 대부분 묻히는 경우가 많은데, 사법 당국이 당사자를 숙청하기 위해 부화사건을 덧붙이는 경우는 있다.


북한에서도 고위 공직자의 성추행 사건은 비일비재하다. 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도는 이야기는 매우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현재 북한군 서열 1위로 군림하고 있는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관한 성추문이다.     


최룡해는 김일성의 항일무장 투쟁 대원이었던 최현(1907∼1982)의 아들이다. 최현은 김일성 측근 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김정일 후계자 추대를 주장해 김일성 부자의 신임을 두텁게 받았다. 최룡해는 1989년 조선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現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전신) 위원장으로 평양축전 준비위원장을 지냈다. 평양축전으로 김정일의 신임을 더욱 받은 최룡해의 위세에 대해 당시 북한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라는 말까지 나왔다. 


1990년대 초반 최룡해는 사로청 중앙선전대를 조직해 미모의 여성을 선출했는데, 대외적으로는 청년동맹의 여성 선전대였지만 실상은 자신의 기쁨조를 조직한 것이었다. 


북한 당중앙위원회 간부 사상투쟁에서 공개된 내용에 의하면, 최룡해는 전국에서 선발된 사로청 선전대 여성들을 자신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도구로 활용했다. 최룡해의 성적 향응이 도를 넘어설 무렵 그는 자신의 변태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선전대 소속 한 여성에게 이를 전부 뽑으라고 요구했다.


최룡해는 이 하나를 뽑는 대가로 거액을 제시하고, 이를 모두 뽑으면 틀니까지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이 여성은 이를 전부 뽑고 최룡해의 구강행위 요구에 응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최룡해의 행각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하나같이 분노를 참지 못했다. 주민들은 “최룡해라면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사람인데 선전대에서 그의 말을 거역할 여성이 어디 있겠냐”면서 “중앙선전대에 선발된다는 것이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 거역했다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8년 최룡해가 뇌물수수 및 불법 외화 소지 혐의로 사로청 위원장에서 해임되고, 이 사건에 연루된 무역 단위의 간부들이 줄줄이 숙청됐다. 이 외에 청년동맹 간부들과 사로청 예술선전대 여성 수십 명이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졌다. 하지만 사건 당사자인 최룡해는 평양시 상하수도관리소 당 비서로 좌천되는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이후 검덕광산 등 노동현장에서 ‘혁명화’를 마치고 간부양성기지인 고급당학교에 들어갔다. 


최룡해는 2003년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승진한 이후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 당중앙위원회 비서에 올랐다. 2010년 조선인민군 대장, 2012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돼 김정은 시대 군부를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했다. 


남한에서 이러한 변태적 성행위를 저질러 사회적 지탄을 받은 사람이 고위 공직에 임용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가장 극단적인 성추문을 일으킨 당사자가 권력 실세로 등장하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 권력층의 도덕적 수준이 그만큼 한심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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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진 기자
경제학 전공 mjkang@uni-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