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접경 지역인 경기도 파주와 연천 등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이 잇따라 발병하면서 북한 내 발병 현황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재 북한에서는 병든 돼지를 제대로 살처분하지 않고 도축해 시장에 유통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평양 소식통은 24일 데일리NK에 “병에 걸리면 돼지를 죽여서 파묻어야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며 “돼지가 죽으면 돈을 벌지 못하다 보니 병 걸린 것을 확인하자마자 죽여(도축해)서 재깍(재빨리) 팔아버린다”고 전했다.
이어 소식통은 “조금 더 돼지를 살찌워서 팔면 조금이나마 고기 가격을 올려 팔수 있지만, 더 길러봐야 병들어 제대로 성장도 못 하니 손해를 보더라도 빨리 팔아 버리려 한다”고 설명했다.
북한에서는 농촌 지역의 개인 농가가 대체로 돼지 1마리, 닭이나 오리 5마리 이상을 사육하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육류의 80~90%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 개인이 키우던 가축을 도축해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는 점에서 ASF에 감염된 돼지고기가 북한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한 상황이다.
지난 2017년 3월에 발간된 KDI 북한경제비평에 담긴 ‘북한 수의 방역 현황’에 따르면 북한은 질병 감염이 확인된 가축에 대해 격리, 이동통제, 살처분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 이 같은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본지는 지난 7월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당국이 ASF에 걸린 돼지를 살처분하지 않고 있으며, 출입 인원 차단 등의 대응도 형식적으로만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관련기사 :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또…北, 대응 나서지만 실상은 ‘허점투성이’)
다만 이 소식통은 “평양에 돼지열병이 돌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해, 그가 언급한 ‘병에 걸린 돼지’가 정확히 ASF에 감염된 돼지를 뜻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현재 북한 당국이 내부적으로 ASF 발병을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ASF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려워 보인다.
북한 당국은 지난 5월 국제기구에 자강도 우시군에서의 발병 사례를 보고하면서도 내부 주민들에게는 이 같은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도 다른 나라의 ASF 피해 상황과 그 심각성에 대해서만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본지가 접촉한 평안도 수의방역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 내에서는 올해 초부터 ASF가 퍼지기 시작해 5월 말쯤에는 전국의 모든 행정구역에서 ASF 감염이 확인됐다. 이에 허술한 방역체계와 당국의 정보 통제 등으로 북한 내 ASF가 더욱 확산하는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관련기사 : 접경지역서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 잇따라…북한 내 상황은?)
한편, 현재 정부는 국내 ASF 발병과 관련해 정확한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한 역학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접경지역인 파주와 연천 등을 중심으로 ASF 확진 사례가 잇따르면서 하천이나 각종 동물 매개체를 통해 북측으로부터 바이러스가 전염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 18일 경기 파주 일대에서 ASF가 발병한 사실을 북측에 통지하고 방역 협력의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여전히 북측은 이에 답변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