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국민 모두가 연말 분위기에 들떠 있다. 북한 주민들도 연말 분위기를 즐기고 있을까. 평양 시민들이나 일부 간부들을 제외하곤 연말 분위기를 즐길만큼 여유가 많지 않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북한 주민들은 12월이 되면 양력설과 신년 준비를 위해 ‘모임돈’과 ‘모임쌀’을 마련한다. 생계를 위해 동분서주 했던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는 ‘행운의 신’이 찾아올 것이란 기대를 갖고 신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12월이 시작되면 각 가정들은 ‘돈통’을 꼭 준비한다. 하루에 3000원(쌀 500g 정도)이나 혹은 수입이 좋을 때는 1만 원씩 넣다보면 마지막 날엔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 일명 ‘모임돈’인 이 돈은 양력설을 맞아 남편과 자녀들에게 줄 선물을 산다. 한해 시작을 기분좋게 시작하기 위해서다.
가부장적인 남편도 ‘모임돈’으로 사준 내복을 입을 때만큼은 “아내를 잘 얻었다”며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한다. 자녀들은 새로 사준 신발과 스케이트 등을 받고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이날만큼은 모든 가정이 근심을 잠시 잊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12월의 ‘모임돈’이 가정을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부모들은 설날 가족에게 먹일 떡을 준비하기 위해 ‘모임쌀’을 한다. ‘모임돈’처럼 주부들은 부엌에 단지 하나를 마련한다. 하루 한두 줌씩 단지에 넣어 설날 떡을 하는데 쓰기 위해 모은 것이다. ‘모임쌀’은 자녀들에게 생활력이나 책임감을 키워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임돈’, ‘모임쌀’은 시장이 발달하면서 여럿이 하는 ‘계모임’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시장 상인들이나, 지인들끼리 이 같은 모임을 해 연말연시, 양력설을 넉넉하게 보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간부들에게도 12월은 상부에 상납할 뇌물 준비를 위해 바쁜 달이다. 공장, 기업소 지배인들은 시(市) 당(黨) 간부들을 찾아가 뇌물을 바친다. 시 당 간부들은 또 도(道) 당 간부들을 찾아가 뇌물을 준다. 이런식의 ‘뇌물 사슬’이 엮여 있다보니 하층 간부들만 죽어난다.
보통 목장 지배인들 같은 경우에는 돼지를 뇌물로 준비하고 공장, 기업소 지배인들은 달러로 준비한다. 최소 1000달러정도 뇌물을 줘야 새해에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12월 31일 마지막 날이 되면 도, 시 당 책임비서의 집에는 뇌물을 주려온 간부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책임비서 아내에게 달러가 든 봉투를 전하고 이름을 수첩에 남긴다. 뇌물을 바치지 못한 간부는 새해 당조직부로부터 사업검열이 들어간다. 한마디로 뇌물이 권력 소통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1월 1일 첫 하루가 일년 흥망을 좌우한다는 속설이 있다. 3대세습 후 불안한 정세 탓에 권력층들도 이런 속설을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