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며칠 남지 않았다. 저마다 한해를 뒤돌아보고 새로운 마음 가짐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12월을 순우리말로 ‘매듭달'(마음을 가다듬는 한해의 끄트머리 달)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에게 12월은 어떤 의미일까. 탈북자들에 따르면 12월이 되면 조직과 집단에서 주어진 과업을 평가받기 때문에, 12월은 가장 부담스러운 달이다.
수령유일 지배체제 속에서 생활해오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나’와 ‘가족’에 대한 것보다 ‘조직과 집단’ 그리고 ‘무조건적인 집행’, ‘절대적인 충성’을 우선해야 한다. 다른 것을 생각한다는 것을 사치로 여겨진다. 남한 주민들처럼 새해 계획을 세우기 보다는, 그저 아무런 탈 없이 12월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북한에서는 12월에 ‘당세포 연간 결산총회’가 진행되고 조직책임자 선거가 있다. 모든 단위, 조직은 참가 인원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이 시기가 되면 친척방문차 중국에 나가 있는 사사여행자들도 돌아가야 한다. 지난달 초 도강증을 발급받아 중국에 나온 한 북한 주민은 결산총회 때문에 급히 귀국하기도 했다.
만약 이 결산총회에 빠질 경우 ‘조직 관념이 없다’는 비판은 물론 사상단련을 받는 경우도 있다. 한해 자신의 과제를 수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문을 써야 하고, 집중적인 비판 대상이 된다. 호상비판도 진행돼 주민들은 이날만 없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특히 새롭게 개정된 ‘당의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 한 조항 한 조항을 따져가며 자기 생활과 결부해 총화한 뒤, 다른 사람의 결함까지 들춰내 비판해야 한다. 회의 이전에 미리 토론문과 비판서를 준비해 조직책임자에게 검열을 받아야 한다.
여맹원들도 연간 총화에서 처벌을 면하려면 밀린 과제(고철수집, 퇴비생산, 애국미 헌납 등 각종 세외부담과제) 수행정형을 꼼꼼히 총화 받아야 한다. 미진한 과제는 대신 돈으로 내는 경우도 많다. 사사여행자들은 중국에서 어느 정도 마련한 돈을 여권 발급비용과 미진한 분담 과제를 대신 내는 데 사용한다.
군(軍)도 마찬가지다. 12월 시작되면 ‘새 년도 전투정치훈련’에 돌입한다. 12월 말경이 되면 민간 조직과 마찬가지로 ‘당 및 청년동맹 결산총회’를 진행한다. 자신의 과업 총화는 물론 다른 부대 동료들의 잘못까지 꺼내 비판해야 한다.
또 12월에는 각종 국가적 행사가 즐비하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이후에는 ‘김정일 추모’ 기간이 새롭게 생겼다. 이 기간에는 각종 추모행사에 동원된다. 만약 추모행사에 불참하는 경우 사상적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다.
김정은 조모인 김정숙 생일(12월 24일), 김정은 최고사령관 추대(12월 30일)일도 이 달에 들어 있어, 주민들은 여느 달에 비해 12월에 더 조심한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괜한 오해를 사 비판을 받을 경우 내년 한해를 새롭게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년 1월 1일, 김정은 신년사를 시청해야 하고 충성 차원에서 신년사 관철사업을 활발히 진행한다. 새해 첫날은 전국협동농장을 상대로 벌리는 퇴비 운반사업이다. 12월 중에는 전국의 기관 기업소와 인민반은 물론 세대별 1t 이상의 퇴비생산 과제가 할당된다. 퇴비 생산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인분 수집을 벌이는 데 미처 확보하지 못한 세대는 돈을 바치는 경우도 있다.
북한 주민들은 이 같은 총회가 해마다 진행되다 보니 자신의 과제를 수행하지 못했으면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반론을 제기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분위기도 전혀 안 된다. 만약 그럴 경우 ‘사상투쟁무대’에 올라 하루종일, 일주일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할 때까지 비판을 받기 때문에 차라리 비판을 받고 빨리 끝나는 것이 낫다.
이렇듯 북한 주민들에게 12월은 총회로 시작해 총회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정작 각 가정의 월동 준비는 물론 한해를 뒤돌아보고, 새해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 이야기’이다. 12월은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힘겨운 달, 없었으면 하는 달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동토(凍土)’로 불리는 북한이 그래서 주민들에게는 더더욱 추운 12월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