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책 결정 상명하달 단선구조 아니다”

북한은 6자회담이나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각종 회담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대응 방향을 결정할까.

김정일 위원장이 모든 것을 생각해 지시하는 단선적인 상명하달 식일 것이라는 우리의 통념과 많이 다르다는 게 북한 외무성에 서 근무했던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의 설명이다.

그는 최근 발간한 저서 ’북한의 국가전략과 파워엘리트’에서 북한의 정책결정 메커니즘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북한에서 정책결정의 출발점은 각 부처의 하부에서 논의를 통해 만들어지는 정책초안의 작성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정책결정 과정의 보편적인 흐름은 당.군.정 각 분야에서 정책초안을 작성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서 집행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현성일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에서는 상층부에서의 집체적 정책협의 제도가 유명무실한 반면 하부의 초안작성 단계에서는 정책토론이 활성화돼 있다”며 “일명 ’참모회의’라고 하는 정책협의회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밝혔다.

특히 외무성에서는 ’국 참모회의’ 혹은 ’성 참모회의’에 담당 간부와 관계자들이 모두 참석해 각종 아이디어와 대책을 내놓고 찬반토론을 벌임으로써 정책 작성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토론을 거쳐 실무자가 정책초안을 만들면 과장, 부국장, 국장 등 부서 책임자의 결재를 받은 후에, 보고서의 내용과 성격에 따라 관련 부서나 기관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우리의 ’관계부처 조정회의’ 격이다.

현성일 책임연구위원은 “6자회담의 경우엔, 외무성 내의 6자회담 참가 국가들을 담당한 부서와 함께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관계를 담당한 국제기구국, 핵확산금지조약(NPT) 관련 문제를 담당한 조약법규국, 대표단 통역 및 문서번역을 담당한 번역국 등 여러 부서가 개입하게 된다”며 “외무성 뿐 아니라 인민무력부 같은 타 기관도 정책적 연관성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른 유관 기관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고할 수 없도록 돼 있어, 보고문의 끝 부분에는 반드시 ’○○○(기관이름)과 합의했습니다’라는 문구를 명기토록 돼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엄격한 합의질서를 만든 것은 부처간 혼선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1980년대 김용순 노동당 비서가 수장으로 있던 당 국제부와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이끌던 외무성이 대미외교를 놓고 서로 다른 방향의 보고서를 올려 파워게임을 벌이기도 했다는 것이 현 책임연구위원의 증언이다.

핵문제만은 이러한 합의제에서 예외다. 핵무기를 개발하는 당 군수공업부와 원자력공업총국, 핵무기의 보관과 배치를 담당한 인민무력부와 노동당 작전부, 핵외교를 담당하는 외무성은 서로 어떠한 정책협의나 협력관계도 갖지 않고 있다고 현 위원은 말했다.

핵문제에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각 부서에서 개별적으로 올라오는 정책보고를 취합해, 자신이 직접 단독으로, 혹은 극소수의 측근들과 협의를 통해 정책을 최종 결심한다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중대하고 장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련 부서에서 담당자와 전문가를 차출해 우리의 태스크포스격인 ’상무조’를 구성해 정책의 수립과 집행의 전 과정을 담당토록 하고 있다.

1990년대 초 북일 수교협상 과정에서 외무성에 구성됐던 ’조일회담 상무조’와 1990년대 초 1차 북핵위기를 계기로 구성됐던 ’핵상무조’가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핵상무조’는 평양시 교외에 있는 외교부 고방산초대소에서 가족과의 접촉마저 금지된 가운데 1994년 제네바 합의가 채택될 때까지 수년간 핵외교 전략의 수립과 집행을 전담했다.

현재도 6자회담은 ’6자회담 상무조’에서, 남북정상회담은 ’정상회담 상무조’에서 대응전략을 논의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 현 책임연구위원의 지적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올라간 보고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읽고 결재를 하면 최종 정책이 결정된다. 보고서에 김 위원장이 자신의 의견까지 친필로 써서 내려보내는 것을 ’친필지시’라고 한다고 현 책임연구위원은 소개했다.

아울러 김정일 시대의 대표적 측근정치 방식으로 꼽히는 측근들과의 비공식 연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는 실질적인 정책결정기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선군정치 하에서 측근의 핵심인 군부는 다른 간부들에 비해 김 위원장의 군부대 시찰은 물론 경제와 민간부문 시찰을 함께 하는 시.공간적 계기를 통해 김 위원장의 정책대안 선택과 정책 목표 등에 막중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며 그 때문에 “김정일의 정세판단 능력은 이들의 보수적이고 경직된 사고에 경도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의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개인간, 기관간, 분야간 갈등과 마찰은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정책목표를 관철하기 위한 방법상에서의 갈등이거나 마찰일 뿐”이라며 “노선상의 갈등이나 정책대립은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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