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닷새간 이어진 역대 최장기간 전원회의의 전략과 조치는 농촌의 생활환경 개선, 농업 분야 생산량 확대 등 농업·농촌 분야에 집중됐다. ‘맏아들, 맏며느리’ 산업으로 일컬어지던 금속·화학 공업보다 농업 관련 조치에 무게 중심이 실린 건 식량 부족 문제가 심각한 데다, 그나마 자력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라는 점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일 노동신문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4차 전원회의 결과 보도에 따르면, 농업과 농촌, 농사라는 단어를 156회 언급했다. 올해 정책의 초점이 ‘농업’ 분야에 집중돼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농업 분야와 관련된 의제는 분야별 사업 과제 중 하나로 언급되곤 했었지만 2일차 회의 전체를 농촌 분야에만 집중하고 김 위원장이 농업 분야 과업을 제시한 별도의 보고를 진행한 건 이례적 조치로 분석된다.
특히 지난해 1월 초 진행된 제8차 당대회에서 ‘자립경제의 쌍기둥’으로 비유된 금속·화학 공업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농업보다 우선순위가 밀려난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군량미가 부족할 정도로 식량 부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움직임이자 코로나 사태로 인한 무역 제한 속에서 내적 자원만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라는 점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권태진 GS&J 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3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자력갱생이라는 기치하에서 그나마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농업”이라며 “재원의 한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데, 이번 전원회의 결과를 살펴보면 북한은 농업 관련 조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언급했다.
농업 분야는 다른 산업과 견주어 볼 때 비교적 적은 양의 수입 자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력으로 생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분야라는 설명이다.
물론 김 위원장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극난한 환경에서 경제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방법, 자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하나하나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실행하는 것이 경제발전에서의 긍정”이라며 여전히 자력갱생의 기조를 강조하고 나섰다.
북한 당국이 알곡생산 구조를 변화시키라며 밀 농사의 확대를 지시한 것도 식량의 자력 조달을 강화해 나가려는 조치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보고를 통해 “인민의 식생활문화를 흰쌀밥과 밀가루 음식 위주로 바꾸는 데로 나라의 농업생산을 지향시키기 위한 방도적 문제들을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벼와 밀 소요량을 충족시킬 수 있게 필요한 재배면적을 확보하고, 영농 작업에 기계수단들을 적극 받아들이며, 건조시설을 꾸리는 것과 함께 밀가공 능력을 대폭 늘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 이모작을 통해 밀을 생산하는 것보다 중국에서 밀가루를 수입하는 것이 비용면에서 경제적이다.
더욱이 이모작으로 밀이나 보리를 재배할 경우 지력 약화로 벼농사의 생산량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볼 때 밀과 보리의 생산량을 확대하는 것이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합리적인 조치는 아닌 셈이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전체 식량 생산량을 늘리는 전략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관호 한국농어촌공사 연구위원은 “김정은 정권 들어서 북한의 식음료 공장이나 식품 가공 산업이 이전에 비해 크게 발전했다”며 “식품 가공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곡물이 밀이기 때문에 생산량을 지속 확대하면 식량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김 연구위원은 “밀 재배를 하면서도 벼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료나 농자재가 더 많이 필요하다”면서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원장도 “일제 시대에 북한에 40만 헥타르에 이르는 밀 재배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며 “기후나 토양적인 조건에서 밀 재배를 확대하는 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지력 약화를 보완하기 위해 품종 개량이나 더 많은 양의 농자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북한 당국도 “관개 체계를 정비하고 농촌에 여러 가지 비료들과 효능 높은 농약들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처럼 문제점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이러한 지원은 무역 및 수입 조치와 연계돼 있어 자력갱생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라는 지적이다.
결국 식량 문제를 자력갱생으로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관련 조치를 쏟아냈지만 자력으로 풀 수 없는 한계와 모순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