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우리 측 판문점에서 7년 만에 이뤄진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북한은 노골적으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한미 군사훈련과 연계시켰다. 그동안 북한이 이산상봉과 한미군사훈련을 연계시켜 중단을 요구할 것이라는 국내외 언론의 관측을 확인해준 셈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번 접촉에서 우리 측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 성사의 중요성’을 집중 강조한 반면 북한은 20~25일 열릴 예정인 상봉 행사가 끝난 이후 한미군사훈련을 시작하라고 우리 측에 요구했다.
이에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 한미훈련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설명하고 향후 합의된 이산가족 행사의 차질 없는 개최를 강조했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남북관계 개선의 첫 단추임을 강조하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기본 취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하지만 북측은 상호 비방 중지를 골자로 하는 ‘중대 제안’을 수용할 것과 남한 언론의 체제 비난 및 한미연합훈련 연기를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또한 남북은 북한 핵문제를 논의했지만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우리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있는 행동을 촉구했다”면서 “(이에) 북한은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비핵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핵문제는 남북 간 기본적으로 논의할 사안이 아니고, 국제사회와 논의할 사안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번 접촉에서 남북은 입장차만 확인했지만 향후 지속적으로 접촉을 이어갈 예정이다. 정부는 경색된 남북관계가 지속되다가 7년 만에 고위급 접촉을 진행한 만큼 향후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산상봉과 한미훈련 연기 요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원칙적 대응에 북한이 반발할 경우, 상봉 행사가 무산되거나 파행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인도적 사안인 이산가족 상봉과 한미훈련을 별개의 사안이라는 우리의 정부 원칙적 대응에 북한이 몽니를 부릴 수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이번 남북 접촉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 보다는 받을 수 없는 카드로 제시해 남한 정부를 흔들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향후 북한이 남한정부 흔들기와 남남갈등을 유발시키는 ‘물타기 전략’을 지속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일각에선 북한에 유리한 대외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대남관계 개선에 나선 만큼 향후에도 이러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대화 제스처를 보일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3일 데일리NK에 “미국의 위협을 무마시키고 중국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지금 당장 무엇을 얻겠다는 것보다는 대내외에 자신의 태도가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강변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이런 점에서 김정은 정권의 불안감도 엿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최 연구위원은 “북한은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화해 제스처를 보이고 있는데 남한은 아무런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는 선전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 것”이라면서 “북한은 상봉 전까지 이산가족을 매개로 한미연합훈련도 연기하거나 중지를 요구하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 흔들기로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전술을 지속적으로 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대북 전문가는 “장성택 처형 이후 유일영도 체제 구축과 우상화에 주력화고 있는 김정은이 정권 공고화를 위해 외화를 확보하고 국제적인 고립에서 탈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한과의 대화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전반적으로 대화협력에 대해 굉장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이산가족상봉이 김정은 정권 체제의 위협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은 크기 않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지난해처럼 상봉을 갑자기 무산시킬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지금까지 김정은 정권이 정상적인 국가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도권을 잡기 위해 ‘몽니’를 부릴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힘들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