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성들은 ‘인민반’이 싫다

한국에 입국한 지도 벌써 6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그 동안 적지 않은 탈북자들을 만났는데 특히 많은 여성들로부터 “남한은 뭐니 뭐니 해도 인민반 생활을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 좋다”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북한의 인민반제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억압의 산물이었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곤 한다.

남한에 온 남성 탈북자들 가운데 ‘인민반이 싫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설사 그런 말을 한다 해도 여성들의 심정만큼 절절하게 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인민반 회의 불참 누적되면 ‘추방’

남한에서 통과 반이 있어 반상회를 하듯이 북한에서는 ‘인민반’이라는 가족생활영역의 구체적 단위가 있고 ‘인민반 회의’가 있다.

남한과는 달리 북한에서의 인민반 제도는 주민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데 이 과정에서 여성들만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그 이유는 북한 남자들은 인민반 회의에 거의 참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녀자들이 모인 곳에 남자들이 참가하면 위신이 떨어진다’고 남편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여자들 또한 자기 남편의 위대한 ‘위신’까지 ‘훼손’시키면서 자기를 대신해 남편을 인민반 회의에 보낼 뱃심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인민반회의는 보통 일 주일에 한번 꼴로 있는 데 국가적인 행사가 있거나 중앙에서 새로운 방침이 떨어지거나 하면 거의 매일 회의가 있게 된다. 그런 날은 인민반장이 각 집에 다니며 여자들에게 “인민반 회의에 무조건 참가하라”고 큰소리로 재촉하게 된다.

방금 힘들게 직장에서 퇴근해 저녁을 짓거나 저녁식사 중이던 주부들은 만사를 전폐하고 인민반 회의가 열리는 인민반장의 집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인민반장이 자기 집에 앉아 인민반원 명단을 펼쳐들고 인민반원들의 회의 참가정형을 하나하나 체크하기 때문이다. 타당한 이유 없이 몇 번만 회의에 참가하지 않아도 그 세대는 ‘인민반과 사회에 대한 반항심을 가진 집’으로 해석되어 보위부와 안전부에 통보되어 곤욕을 치르기가 일쑤였다.

이런 보고가 누적된 세대는 보위부의 은밀한 감시가 붙고, 급기야는 어느 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추방영장을 가지고 들이닥친 차에 실린 채 아파트에서 사라져야 한다.

자기집에 묵는 손님까지 인민반에 보고해야

인민반 회의에서는 주로 여자들의 품을 요하는 아파트 및 주변청소, 수매, 저금, 부산물 모으기, 뜨물을 모아 동사무소에 가져가기, 인민군대 및 건설장 지원품, 농촌지원용 거름생산, 전시용품 준비 등의 과제들이 주어진다.

여자들은 이 모든 일들을 직장 일을 나가기 전과 일을 마치고 온 틈을 이용해서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새벽에는 남자들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고 저녁에는 남자들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어쩌다 휴식하는 일요일에 남자들은 집에서 잠을 잘 수 있어도 여자들은 일감이 많은 데다 인민반 과제가 한시도 떠나질 않아 잠시도 쉴 틈이 없고 그럴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여성들이 인민반에서 시달리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자기 집에 와서 숙박하는 친척이나 모든 손님들에 대해 인민반장에게 사실대로 보고해야 한다.

지방에 있는 친척들이 평양으로 오게 되면, 보통 평양시 통행증을 받기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은 주변 지역의 여행증을 끊어가고 와서는 평양에 몰래 들어와 친척 집에서 묵게 된다.

그러면 대부분 여자인 인민반장들이, 남자인 세대주들 앞에서는 잔소리를 함부로 못하기 때문에, 만만한 그 집 아내가 시달림을 받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평생을 살아온 북한 여성들 중에는 자기 집에 인민반장이 모르는 숟가락이라도 하나 생기면 자신을 죄인시하는 심리적 불안 증세마저 생기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에는 자기의 내면세계 속에 인민반장을 들여놓고 일거수일투족을 스스로 감시하는 자가당착의 병적 증상에 빠진 경우도 자주 생기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 치유하려야 치유할 수 없는 고질병을 앓던 여성들이 그런 병을 앓을 이유가 없는 사회에 와서, 상처가 적은 남자들에 비해 그 고마움과 소중함이 큰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최진이 / 前 조선작가동맹 시인 (저서 : 국경을 세번 건넌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