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성들도 명절 증후군 있을까?

한국의 주부들이 추석 같은 명절 전후에 ‘명절 증후군’을 겪듯이 북한 여성들도 명절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북한에서는 전업주부를 ‘가두여성’이라 부르며 ‘인민반’ 조직생활 외에도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의 조직생활을 강요 받는다. 말이 전업주부지 조식생활과 가정생활에서 북한 여성들이 느끼는 정신적, 육제적 부담은 실로 크다. 여맹 학습이나 정치강연회가 매주 열리고, 시기별로 전달되는 ‘당 방침’ 학습, 계절마다 부과되는 농촌지원활동, 주(週)생활총화 등에 하루도 자유로울 날이 없다.


결국 북한 여성들을 압박하는 것은 ‘시댁’ 뿐이 아니다. 여맹 조직의 시집살이도 만만치가 않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1~2일전에 상급 여맹조직으로부터 내려온 강연제강을 학습한다. ‘추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이 전달되는 셈이다.


여맹 강연회에서는 “추석은 전통민속명절이며 민속 옷차림에 민속놀이와 전통음식을 즐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송편을 만드는 레시피까지 교양하는데, “쌀로 떡을 빚어 사이사이 깻잎을 끼어 찐 것”으로 정의된다. 찰떡, 부침, 나물 등 각종 명절 음식의 유래와 성분, 만드는 방법이 일일이 설명된다.


북한에서 추석은 가을 수확과 겹치기 때문에 여성들의 몸과 마음이 늘 바쁘다. 오죽하면 “가을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계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강연 내용이 제대로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추석 맞이 여맹 강연회는 통상 2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대부분 여성들이 잠을 잔다. 정말 지루한 시간이다. 어떤 여성들은 “명절 마다 여성들이 고생하는 것을 배려해 당에서 미리 낮잠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한다.


여맹 강연회를 시작으로 북한 여성들의 명절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서 명절 음식을 만들어 봐야 얼마나 만들겠나?’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맞는 말이다. 돈이 없으니 한국처럼 많은 음식을 준비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처럼 좋은 주방시설, 조리도구, 가스나 상수도 시설이 없다보니 적은 음식을 만들면서도 시간과 노력은 몇 갑절 더 들어 간다.


북한에서 명절 음식이라 하면 일단 차례상에 올려 놓을 음식, 성묘길에 가져가야 할 음식, 가족과 친척들이 먹을 음식들을 통칭하는 것이다. 이렇게 먹을 음식을 장만하려면 몇 일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국수 한그릇 마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감자 20-30kg 정도를 강판에 일일이 갈아낸다. 그 다음 맑은 물을 섞고 감자 가루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붉으스레해진 물을 빼고 다시 맑은 물을 넣는다. 이렇게 4-5회 반복한 후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 다음 감자가루를 말린다. 하루 이틀정도 말리면 녹말 가루가 되는데 이를 반죽해 국수로 만든다. 강판에 갈았던 감자의 일부를 물기를 꼭 차내고 한번 찐 다음 반죽을 해서 콩이나 나물을 넣고 다시 쪄내면 ‘감자떡’이 된다. 추석 아침 찾아온 친척들에게 고작 감자 국수, 감자떡을 내놓는데도 이렇게 손이 많이 간다.


9월 20일 북한 시장 물가를 기준으로 북한 일반 가정의 차례상 비용을 추산해 보자. 쌀 1kg(1천원),  돼지고기1kg(2천5백원), 이면수 등 물고기 한 마리(2천원), 사과 1개(7백원), 밀가루1kg(1천5백원), 콩기름1kg(4천원), 마늘 1톨(5백원), 고춧가루 한컵(5백원),  두부 1모(4백원), 인조고기 1kg(1천5백원), 옥수수 술1병(5백원) 등을 마련하데 총비용은 5만1천1백원이다. 5만원이면 쌀 50kg, 옥수수 100kg 이상을 살 수 있는 돈이다. 가난한 집에서는 2~3달 식량가격과 맞먹는다. 지난해 11.30 화폐개혁 이후 북한 도시 노동자들의 월급이 통상 1천5백원~2천원 사이로 책정된 것과 비교해보면 북한 여성들이 추석에 대해 느끼는 압박감은 상상하기 조차 힘들 정도다.


더구나 2000년대 이후 북한의 시장들이 중국산 제품으로 채워지기 시작하면서 서민층 여성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커졌다. 간부집 여성들은 파인애플, 바나나, 귤과 같은 중국산 과일까지 제상에 올린다. 이들은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웃 여성들을 불러 품삯을 주고 ‘가사도우미’로 활용할 만큼 엄청난 양의 고급 음식들을 준비한다.


그러나 서민층 여성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자신의 노동력으로 차례상을 준비해야 한다. 북한 여성들이 추석 비용을 마련하는 방법은 개인소토지 햇 옥수수를 시장에 내다팔거나, 장사를 하거나, 부자집 ‘가사도우미’로 나서는 것 등이 있다. 


추석 당일 음식을 싸들고 성묘에 다녀오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차례나 성묘는 모두 남자가 주도하지만 그것이 가능토록 음식을 준비하고, 나르고, 아이들을 건사하는 것은 모두 여성들의 몫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남자들의 술상을 위해하루종일 음식을 데우고, 상을 차리고, 설걷이를 해야한다. 술에 취해 쓰러진 남편의 코골이 소리를 뒤로 하고 늦은 밤까지 집안 정리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야 기나긴 추석명절을 끝낼 수 있다. 


추석 다음 날부터 여성들은 다시 생활전선으로 내몰린다. ‘가을수확’ 전투가 시작되면 눈코 뜰새 없이 바빠진다. 협동농장 소속 여성들은 이때부터 12월초 까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들판에서 보내야 한다. 농장에서 주어지는 작업량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짬짬이 개인 소토지 옥수수도 수확하고, 겨울나기용 땔감도 준비한다. 시장에 나가 남편과 아이들의 겨울 옷도 미리미리 사둔다.


장사하는 여성들의 발걸음도 바빠진다. 날씨가 추워지면 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장사거리도 변변치 않기 때문에 겨울이 오기전에 최대한 돈을 벌어 겨울용 식량과 땔감을 마련해야 한다.


추석 하루만 놓고 봐도 한국의 여성과 북한 여성은 비슷한듯 하면서도 완전히 다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북한 여성들은 ‘명절 증후군’을 느낄 겨를이 없다. 추석 명절은 혹독한 겨울나기의 ‘예고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