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제와 오늘] ‘조선인민공화국 영웅’ 제정·수정 ‘해프닝’

북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국호를 안다.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이 국호는 다른 나라보다 길지만, 공식 문헌에서도 자주 나와 주민들은 이를 어렸을 때부터 잘 외운다. 그러나 이번 칼럼에서 6·25 전쟁 당시 북한 매체들이 이 이름을 계속 잘 못 표기한 경우가 있었다는 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1972년 김일성훈장이 제정되기 전 북한에서 최고 훈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의 금메달이었다. 영웅 칭호는 1950년 6월 30일, 즉, 6·25 전쟁 발발과 6·28 서울 함락 직후 제정되었다. 그러나 아래 볼 수 있듯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서 오타가 나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 아니라 ‘조선인민공화국 영웅’이었다. 국호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빠진 셈이다.

/출처=노동신문, 1950년 7월 1일 1면

물론 이 오타를 무시하거나 고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북한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동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매체는 ‘조선인민공화국 영웅’ 칭호 수여에 대한 정령을 발표했다. 이 오타는 1954년 6월 15일 드디어 고치게 되었다. 이날 아마도 북한 역사상 제일 웃긴 정령이 나왔다. 아래에 전문을 볼 수 있다(당시 북한 매체는 숫자를 한자로 표기했다).

/출처=노동신문, 1954년 6월 19일 1면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최고 인민회의 상임 위원회 정령
一九五〇년 六월 三〇일 정령 『최고의 영예인 조선 인민 공화국 영웅 칭호를 재정함에 관하여』에 보충을 가함에 관하여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최고 인민회의 상임 위원회는 一九五〇년 六월 三〇일 정령으로 채택한 최고의 영예인 조선 인민 공화국 영웅 칭호 명칭에 네 글자 『민주주의』를 가하여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
『조선 인민 공화국 영웅 칭호』를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영웅 칭호』로 한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최고 인민회의 상임 위원회 위원장 김두봉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최고 인민회의 상임 위원회 서기장 강량국
一九五四년 六월 一五일
평양시

‘조선인민공화국 칭호’가 나온 1950년 6월 30일부터 이를 수정한 1954년 6월 15일까지 3년 11개월 17일이 지나갔다. 이 기간 최고인민회의는 국호를 잘못 표기한 채 ‘최고의 영예 칭호’를 수여하였고 노동신문을 비롯한 공식 매체도 이를 보도했다. 그리고 이 기간 최고인민회의에서 ‘우리나라 이름을 잘 못 쓴 것 같습니다’라고 신고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를 통해 최고인민회의의 본질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겠다. 1950년대 초기 북한에서 아직 유일사상체계는 선포되지 않았고 당 지도부에서도 김일성과 의견이 매우 다른 간부들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최고인민회의는 이런 오타를 수정할 권한조차 없었을 것이다. 즉, 1950년대 초반 이 조직은 수령의 볼펜만큼 목소리가 없었다.

한국 도서에 가끔 1940년대 후반에 진행됐던 북한 지역 한 인민회의 선거를 ‘민주주의 개혁’이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위의 스토리를 보면 그 때에도 인민회의는 민주주의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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