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연구의 난제는 바로 정보의 부족이다. 때문에 연구자들은 북한 내부 자료를 얻기 힘들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조선대백과사전 등 공식 기록들을 분석하게 된다.
물론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북한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북한 주장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연구자의 중요한 덕목으로 사실과 거짓을 구별해야 한다는 점이 요구된다.
필자는 북한과 소련 및 다른 나라의 공식 자료를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북한 자료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신뢰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일단 가장 기본적으로 북한 정치인들의 탄생지를 북한의 주장대로 신뢰해야 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일단 판문점 정전 협정을 서명한 남일 대장은 러시아 제국 극동지구 우수리스크주 이바노브스키면 카자케비체보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야코브 남이고 1940년대 북한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1976년 그가 사망한 후 부고에서 탄생지를 ‘함경북도 경원군’으로 표시하였다.
북한은 또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태어난 북한 작가 조기천의 공식 탄생지를 함북 회령군으로 바꾸었다. 작은 중국 마을 출신자인 김영남에 대해 북한은 ‘평양 출신’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왜곡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독자들도 잘 알고 있듯 북한에서는 주민들을 여러 군종으로 나누는 성분-계층 제도가 있다. 이 성분과 계층은 그 사람의 권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또한 여기서 조상의 출생지는 성분과 계층을 나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즉 북한 권력자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김씨 일가도 예외가 아니다. 김정일은 물론 백두산 출신이 아니다. 김일성도 만경대가 아니라 옆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증언도 있다.
문제는 이런 틀린 주장이 한국이나 외국의 논문, 단행본, 백과사전에도 심심찮게 나온다는 점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남일은 ‘함경북도 경원 출신’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통일부의 ‘북한정보포털’엔 김영남을 ‘평양시’ 출신이라고 적어놨다.
그리고 ‘조선 출신(?)’의 조기천의 인생을 연구한 학자들 중 ‘그는 일제 때문에 조선에서 떠나게 되었고 소련 땅에 빼앗긴 조국을 기억했다’고 서술한 사람들도 있다.
북한 당국의 사실 왜곡은 탄생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컨대, 북한 노동당의 창건일은 10월 10일이 아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9월 9일에 건국되지 않았다. 이는 나중에 조작된 날짜에 불과하다.
이 문제는 세계 인문학에도 상당히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보통 현실을 언급할 때 2차 사료를 언급해도 좋다고 통용되고 하는데, 이는 북한학에 해를 주기도 하다. 바로 허위 주장이 ‘상식’이 되는 경우다.
이런 가상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자. 북한 단행본이 먼저 ‘남일은 함북 출신이다’고 주장한다. 이후 A 연구원은 이 주장을 논문에 언급한다. B 심사위원과 C 편집자는 ‘출처가 있다. 좋다’면서 ‘게재 가’ 결정을 내린다. D 교수는 이 논문을 인용해, 단행본에 ‘남일은 함북 출신이다’고 쓴다. 또한 백과사전을 작성하는 E 박사는 D 교수의 단행본을 기반으로 이 주장을 사전에 붙인다. 이렇게 북한 당국은 만든 왜곡은 상식이 돼 버린다.
필자는 비슷한 문제를 대면해 본 적이 있다. 박사 논문을 작성하던 당시 ‘북한에서 징병제는 1958년에 내각 경전 제148호로 도입되었다’는 틀린 주장을 자주 접했다. 실제로는 북한에서 징병제는 1958년이 아니라, 1956년에 도입되었다. 아마 수십 년 전 누군가 실수로 틀린 숫자를 쓴 것 같았다. 필자는 1958년의 내각 경전 제148호까지 찾았다. ‘공업 생산 및 기본 건설 사업에서 우수한 성과를 달성하는 민청 단체들을 표창할 데 대하여’라는 문서였고, 군대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도 이 틀린 ‘1958년론’을 언급한 논문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모든 연구자는 실수할 수 있다. 필자도 ‘북한이 1948년 9월 9일에 건국되었다’고 써 본 적이 있다. 이는 북한을 연구할 때 항상 ‘이는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스스로 자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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