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제와 오늘] 김정은, 통치 방식 변화?…北 본질은 ‘불변’

북한 금수산태양궁전
북한 평양 대성구역에 위치한 금수산태양궁전 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동상이 설치돼 있는 모습. /사진=노동신문 캡처

최근 국가정보원은 북한이 내부적으로 ‘김정은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였다. 아직 노동신문 또는 우리민족끼리와 같은 대내외 매체에서 찾을 수 없지만, 당국이 당 회의실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을 제거했다면서 독자적 사상체계 정립을 시작했다는 징후로 판단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중대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선전을 집중적으로 분석해 보면 김정은의 전임자들에 대한 태도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일단 북한 사상은 현 집권자가 선대에 무조건 충성심을 보여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러나 김정은은 그런 충성을 드러내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선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김정일은 3년 애도 기간 새로운 직위로 올라가지 않았고 1997년 비로소 당 총비서가 되었다. 하지만 김정은은 2주도 기다리지 않았다. 김정일이 2011년 12월 17일에 사망했는데 같은 달 30일 김정은은 자신을 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하였던 것이다.

재미있게도 김정은은 부친뿐만 아니라 모친 고용희에 대해서도 유사한 모습을 보여줬다.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고용희에 대한 숭배는 거의 중단했던 것이다. ‘조선의 어머니’의 이름도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북한 지도자는 참으로 효를 모르는 사람인 것 같다.

이제 김정은주의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원래 ‘김일성주의’나 ‘김정일주의’의 역사를 보면 사상적 직위 강화 시도와 맞물려 등장했다는 점이 확인된다.

김일성주의는 1970년대 자주 쓰게 되었다. 당시 특히 소련과 친소(親蘇)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 말에 불만이 매우 많았다. 스탈린이 사망한 후 살아 있는 지도자의 이름으로 사상을 호칭하는 건 불가능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김일성은 이런 규칙은 가볍게 무시하였다. 중국 쪽으로 돌아설 것을 염려한 소련 정권은 별다른 제지도 못하였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1980년대엔 ‘김일성·김정일주의’라는 개념도 생겼다. 북한 방송은 1982년 3월 3일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세계인민들의 지도이념이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다.

‘김일성’ 없는 ‘김정일주의’는 김일성 사망 직후 노동신문에 나왔다. 김일성은 1994년 7월 8일 사망하였는데 7월 22일 신문은 ‘김정일주의’를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주민은 물론 전세계에 그가 북한의 새로운 권력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 ‘김정은주의’ 시대 개막의 의미는 무엇일까?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주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통치 방식을 바꾸려고 할까? 필자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한다.

북한 역사에 지도자가 사상적 선인(先人)을 열외로 취급하는 일은 있었다. 1940년대 김일성은 ‘위대한’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그리고 스탈린의 ‘제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이 ‘제자’는 ‘만민이 한결같이 우러러 모시는 위대한 수령님’이 되었고 ‘스승’들의 저작은 금지품으로 전락하였다.

김정은의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이 마르크스와 레닌의 운명을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되더라도 북한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의 정책을 보면 그는 바로 김정일주의자라고 판단된다. 부친처럼 그는 몇 년 경제 개혁을 하다가 이를 되돌렸다. 부친처럼 핵무장에도 매우 큰 관심을 보여준다. 그리고 부친처럼 아버지와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김정은주의’의 겉모습은 ‘김일성·김정일주의’와 다를 수 있겠지만 본질은 매우 비슷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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