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국가 아니다”

남북 간 신뢰외교(trustpolitik)가 보이지 않는다. 신뢰외교는 집권 2년차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대표적 대북정책이다. 남북관계에서의 신뢰가 사실상 형해화(形骸化)된 상황이다. 신뢰외교의 실질적 부재(不在) 상황은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신뢰의 진정성 문제라기보다는 상호 간 누적된 구조적 불신의 팽만과, 이를 가능케 한 양립할 수 없는 각각의 국가목표에 기인하는 것이다.

북한은 핵능력을 계속 증강하고 있다. 지난 2008년 6자회담이 중단된 이후 북한은 사용 후 연료봉을 추가로 재처리해 무기화하고 최신식 우라늄 농축시설을 건설했다. 혹자는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가리켜 ‘비전략적 무행동’이라고 일갈했다.

데일리NK는 지난 1일 한국을 방문한 영국의 한반도전문가인 크리스토프 블러스(Christoph Bluth. 사진) 브래드포드대 교수를 만났다. 블러스 교수는 냉전 시기 미소 간 군축협상 및 독일통일 과정을 전후로 한 유럽안보를 연구했으며, 포스트 냉전 시기를 중심으로 파키스탄 및 북한 핵문제에 천착해 왔다. 안보·전략연구 전문가로서 그는 동아시아 지역에 “한반도 통일을 상정하는 보다 포괄적인 장기적 담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블러스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신뢰외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신뢰의 상대방인 북한이 김정은 집권 이후 권력 투쟁을 겪고 있는 상황과 연결돼 있다며 일정 부분 “불운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외부 행위자로서 북한이 우리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들의 내부 동학(動學)에 보다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는 서울 코리아나 호텔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크리스토프 블러스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박근혜 정부의 신뢰외교가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대북 관여(포용)정책(engagement)으로 인한 결실이 짧은 시기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실제 관여정책으로 북한사회의 급속한 진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관여정책이 무엇을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예측을 하는 게 여전히 불확실한 것이다. 반면 이명박 정부로 대표되는 보수진영은 남북관계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보다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재관여의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는 박근혜 대통령으로 하여금 그것을 바로잡는 길을 찾게끔 하게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어려움은 기본적으로 일관성 없는 신뢰외교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남북관계에서 사실상 어떠한 새로운 방안도 내놓지 못했다. 신뢰외교는 단지 ‘우리는 관여하기를 원하며 우리는 대북 관여정책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정도를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상대방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다. 따라서 신뢰외교는 논리적 관점에서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정 부분 북한에 대한 관여정책을 활용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은이 북한 지도자로서 그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한 권력투쟁을 한창 벌이고 있는 시점에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것은 어찌 보면 ‘불운한(unlucky)’ 일이었다.”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전략적 인내 정책의 문제는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프로그램 역시 현상유지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공습능력(strike capability)을 갖추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북한으로 하여금 핵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협상을 활용함으로써 핵프로그램을 어느 정도 제한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북한이 실제로 미국을 공격한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문제는 군사적 현실이 아닌 정치적 현실(political realities)이다. 현재는 북한이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할 능력이 있는지 모호한 상황이다. 그들은 아직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기술도 획득하지 못했다. 그러나 해당 능력이 확증되면 한국과 일본 등에 제공되는 미국의 핵 억지능력(nuclear deterrent)에 대한 잠재적 비용 구도가 바뀌게 될 것이다.

북한의 기술 능력 입증은 미국으로 하여금 군사적으로 선제적인 대응을 초래해 북한 스스로를 위험에 빠지게 할 수도 있겠지만, 동아시아의 상황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구도로 변경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핵 억지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들 스스로의 억제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내부적·정치적 압력 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또다시 매우 심각한 결과들을 야기할 수 있다.

북한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들이 미국 혹은 한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보다 북한 내부의 파워 동학(動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즉 핵프로그램은 그들의 내부적 정치 전략 측면에서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외부 행위자들이 자신들의 행위로 북한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할까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들(북한) 자신이다.”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보인다. 

“결국 한국 정부는 매우 다양한 레벨에서 진행되는 전략 게임 하에 놓여 있는 셈이다.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지도자를 보유한, 권력 유지를 위한 방안을 끊임없이 고안해야 하는 실패한 국가의 내부 동학이 하나의 레벨이다. 남북관계는 또 다른 레벨이다. 그리고 남북관계는 결국 지정학(geopolitics)으로 연결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이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합의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중국이 여전히 북한을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김정은과 북한 정권의 행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장성택 처형을 비롯해 북한은 여러 번 중국을 실망시키는 행동을 했다. 그러나 중국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다른 차원의 지정학적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인식시키는 데 서툴렀다.

한반도 이슈는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돼야 한다. 현재 상황의 지속은 장기적 관점에서 동아시아 정세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한반도 통일 상황에서 중국은 실제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한국과 미국, 중국 간 협상을 통해 통일 과정에서 중국의 이익이 고려되는 상황을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실제로 한반도 상황의 전환기에 중국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들이 논의될 수 있다.

통일 한국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민주적 정부에 의해 운영돼야 한다는 점에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중국이 통일 한국에 대해 어느 정도 경제적·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는 예측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중국이 한반도 통일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북한을 개방시켜 중국과 같은 나라를 만들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 그런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난 20년간 북한 문제와 관련한 논의가 ‘안보’에만 초점이 맞춰진 점은 실수였다. 특히 미국은 핵문제에만 집착해 왔다. 한국과 미국은 통일 논의를 협상 테이블에 복귀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을 통해 미래에 대한 로드맵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를 통해 최소한 규범(norms)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한반도 비핵화와 같은 규범들은 북한을 제외한 관련국 간에 내재돼 있다. 하지만 논의가 통일에 보다 집중된다면, 그로 인해 창출된 규범이 내재화된다면,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미래에 대해 모든 국가가 같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단순히 ‘우리는 통일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이 통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가 군축(disarmament)을 달성하기 원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두가 규범과 원칙을 설정하는 데 참여하는 것이다. 통일 한국의 미래에 대한 규범 창출에 외부 세계가 함께하는 것은, 중국을 어느 정도까지는 동일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