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신년사, 희망 가질 객관적 근거 없다

I. 북한 신년사에 대해서


북한의 신년사는 ‘분량대비 내용충실도’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낙제점 한참 아래에 있다. 북한을 꾸준히 들여다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상투적인 내용과 어법이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북한의 신년사를 스스로 써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 전문가든 아니면 일반인이든 2013년과 2014년 북한 신년사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지 한 번 자문해 보기를 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신년사는 어느 정도 우리의 관심을 끌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신년사라는 것이 형식적으로는 ‘최고지도자’의 이름으로 올해 북한정권이 나아갈 방향을 천명하는 것인 만큼 뭔가 새로운 내용이 들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우를 보면 신년사에 밝힌 내용으로부터 북한 정권의 구체적 행태를 예상해 보는 것은 아무리 잘 봐주어도 단순 추측에 불과하다. 물론 그 중에는 북한정권의 불별의 기본 입장을 재탕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고, 이런 측면을 고려해서 북한의 행태를 추측한 것은 의미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신년사 없이도 가능하다.


다른 한편 작년 말 박근혜 정부가 북한에 남북대화를 제의하였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이 이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는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15년 북한의 신년사에는 남북대화에 대한 언급이 꽤 있고, 한국 언론들이 이 점을 비중 있게 다룰 것임은 명백하다. 


그러나 필자는 김정은 정권의 개과천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어떤 이유나 객관적 근거도 갖고 있지 않고,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해서도 구조적으로 그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이번 북한의 신년사에 언급된 남북대화에 대한 긍정적 반응 역시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조금 더 자세히 언급할 예정이다.


II. 북한의 신년사 읽는 법


북한의 신년사는 그 분량이 대략 원고지 60장 안팎이다. 학술 논문의 반 정도 되는 분량으로 짧은 글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수령님과 장군님을 사모하여 북한의 상투어법을 고향의 사투리처럼 내면화한 종북주의자가 아니라면, 이 글 같지 않은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해서 북한의 신년사의 구성을 살펴보고, 그 중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을 알아두는 것도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한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1. 각계각층에 대한 신년인사: 10%
2. 지난해의 업적에 대한 자화자찬: 10%
3. 새해는 ○○돌 되는 해로서 사회주의 강성대국 실현 다짐: 12%
4. 군사강국 건설: 7.5%
5. 인민경제: 20%
6. 교육: 3.5%
7. 혁명정신: 8.5%
8. 통일정책: 19%
9. 국제정세: 6%
10. 마무리: 3.5%


1, 2의 신년인사와 자화자찬은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날을 따라 강렬해지지 않는’ 외부인에게는 읽을 가치가 거의 없는,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게는 선전효과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다. 매년 ‘모든 분야에서 전례 없는 성과를 이룩하고, 기념비적 창조물을 일떠세웠기’ 때문에 신년사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북한은 이미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음이 틀림없다.


3은 과거 대부분의 신년사에 억지로라도 만들어 넣는 ‘신년의 기념화’ 부분으로서 ‘새해가 ~한지 00돌 되는 해’라는 내용과 함께, 이렇게 뜻 깊은 새해를 맞이하였으니 딴 생각하지 말고 혁명과업에 매진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혁명과업의 수행에 필요한 정신과 교양을 강조한다. 요즈음 유행은 ‘김정일애국주의’라는 것으로 이것은 김일성-김정일주의 세뇌 교양의 핵심으로서, ‘수령에 대한 충정의 일편단심’, ‘미래에 대한 숭고한 헌신’, ‘사회주의 제도에 대한 뜨거운 애착’으로 요약된다. 이 부분도 과거 한 번 정도 신년사를 읽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시 읽을 가치가 없다.


4의 군사강국 건설 부분도 중요한 내용은 거의 없지만, 몇몇 슬로건을 체크해 볼 필요는 있다. 우선 아직 그 내용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군력강화의 4대 전략적 노선과 3대과업’이 언급되었다. 이 슬로건은 김정은이 2014년 12월 1일 북한군 제963부대 시찰시 언급한 것으로 서 김정은의 각종 담화와 연설을 고려해 볼 때 ‘핵무력 강화, 정치사상 강화, 전투력 강화, 국방공업 강화, 군민일치 강화’가 그 주요 내용으로 추측된다.


다른 한편 신년사의 군사력 강화부분에서 ‘당의 병진노선을 관철’을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경제-핵개발 병진노선’을 의미한다. 2015년 신년사의 특징을 하나 찾아보자면, 핵개발에 대한 직접 강조가 없다는 사실이다. 신년사 전체를 걸쳐 ‘핵’이라는 단어는 4차례 언급되었는데, 두 번은 한국-미국의 ‘핵전쟁연습’이고 나머지 두 번은 ‘핵 억제력’이라는 표현에 사용되었다. ‘핵 억제력’이란 사실 애매한 표현이다.


인민경제 부분도 별로 영양가가 없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는데, 그래도 북한의 사정을 솔직하게 밝힌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후에 복구건설을 한 것처럼 전당, 전군, 전민이 떨쳐나 산림복구 전투를 힘 있게 벌여 조국의 산들을 푸른 숲이 우거진 황금산으로 전변시켜야 합니다”라는 말은 6.25전쟁으로 한반도의 산들이 민둥산이 되었던 상황을 연상시킨다. 물론 북한 주민을 다그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전혀 없을 것이다.


경제와 관련 나머지 내용은 지난 십 수 년간 되풀이되어 온 것으로 업적이든 계획이든 모두 북한에서 극히 모자라는 부분으로 이해하면 정확하다. 한 마디로 고장난 녹음기에서 나온 소리들이다. 다만 “모든 경제기관, 기업체들이 기업활동을 주동적으로, 창발적으로 해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라는 내용은 김정은 정권 하에서 경제개혁의 방향을 재확인하였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런 천명은 과거에도 여러 번 있어 왔다. 명령으로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착각일 뿐이다.


다음으로 교육과 혁명정신의 강조에서 읽을 만한 내용은 전혀 없다. 다만 ‘조선민족제일주의’라는 시대착오적인 국수주의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고, 이것은 신년사가 일차적으로 북한 주민의 세뇌에 있다는 점에서 제거불가능한 원리가 되었다.


한국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년사의 끝부분에 나오는 통일정책이다. 분량도 적지 않은 데, 북한 통일정책의 기본 원칙은 ‘외세(미국)를 배척하고 우리 민족끼리 통일하자는 것’으로서 이것이 바뀔 수는 없다. 북한 신년사의 통일정책 부분은 박근혜 정부의 남북대화 제의와 연관된 것이 분명하고, 나름대로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신년사 중에서 자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III. 북한의 남북대화 제의에 대하여


2013년과 2014년, 그리고 2015년의 신년사 중에서 통일정책에는 원칙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그것은 압축하면 ‘조국통일 3대원칙’의 실현이다. 그러나 2015년에는 구체적으로 남북대화가 언급되고 있고, 심지어 한국에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反헌법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다른 한편 북한은 정확하게 ‘최고위급 회담’이라고 칭하는, 한국의 대통령과 북한 정권의 1인자와의 회담이 언급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신년사에서 밝힌 남북회담의 내용은 무엇일까?


1) 북한은 2014년 남북관계 개선과 조국통일을 위한 중대제안을 내놓았다.
2) 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으로 중대제안이 실현되지 못하고 남북관계가 악화되었다.
3)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계속되는 한, 남북관계는 진전될 수 없다.
4) 남과 북은 자신의 사상과 제도를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5) 북한은 한국에게 사회주의를 강요한 적이 없다.
6) 한국은 제도통일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7) 7.4 공동성명, 6.15공동선언, 10.4선언이라는 통일헌장, 통일대강을 인정, 실현해야 한다.
8) 한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고위급 접촉이나 최고위급 회담도 가능하다.


1)과 2)는 아마도 황병서 등이 작년 인천아시안게임 중에 한국을 전격 방문하면서 남북대화의 뜻을 밝혔으나, 이것이 대북전단에 의해 중단되었다는 북한의 주장을 의미한다. 즉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직설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대북전단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점을 남북대화의 묵시적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다음으로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문제 삼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그 중단이 실제로 남북대화의 조건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남북관계 진전의 장애물이라는 점을 북한은 계속 주장할 것임도 분명하다.


4)에서 7)까지는 이번 남북대화 제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 핵심은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이명박 정부와는 달리 박근혜 정부가 한 번도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언급한 적이 없고, 얼마 전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한국은 ‘흡수통일’이 아니라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응으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흡수통일’과 ‘평화통일’은 서로 모순되거나 반대인 개념이 아니다. 평화적 흡수통일도 가능하며 독일통일이 바로 그 예이다. 흡수통일은 통일체제의 문제이며, 평화통일은 통일의 방법의 문제이다. 류 장관은 아마도 의도적으로 범주의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도 부정하지 않고 있는 7.4 공동성명,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인용하여 남북이 각자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통일을 시도해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제시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조국통일 3대원칙을 천명한 7.4 공동성명은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남북 간에 합의를 본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7.4 공동성명의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원칙은 통일의 과정에 대한 방법론일 뿐이며 통일의 목표나 통일체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특히 북한은 ‘조선노동당규약’에서 통일의 목표를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이때 조국통일 3대원칙이 어떻게 적용되는 지를 명시하고 있다:


“조선노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데 있다.”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한다’는 것은 이른바 인민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것으로서 이는 통상적으로 ‘남조선혁명’ 혹은 ‘적화통일’을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조선노동당규약은 남조선혁명의 방법까지도 구체적으로 명기하고 있다.


“조선노동당은 전조선의 애국적 민주역량과의 통일전선을 강화한다. 조선노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 침략무력을 몰아내고 온갖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며 일본 군국주의의 재침책동을 짓부시며 사회의 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 성원하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신년사에서 한국에 한 번도 사회주의를 강요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북한의 통일방법은 한국에 사회주의를 강요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북한식 사회주의를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실현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점은 이번에 해산된 통진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의 내용을 자세히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북한의 이번 신년사의 통일정책은 분명 통진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식 사회주의를 한반도 전체에 실현시키기 위한 과도체제로 규정한 것과 연관이 있다. 만일 박근혜 정부가 이번 북한의 신년사가 제안한 북한의 통일정책을 받아들일 경우, 한국이 북한과의 통일과정과 통일체제 문제에서 북한의 수령체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은 피할 수가 없다. 이때 ‘인정한다’는 표현의 뜻은 단순히 대화의 상대로 인정한다는 현실적 불가피성을 넘어설 수가 있다. 이럴 경우 한국 내에서 북한의 수령체제를 인정하고 나아가 북한의 통일방식과 목표를 인정하는 정당이 나오더라도 그 위헌성을 현실적으로 주장하기 힘들어진다.


IV. 박근혜 정부 중반기의 대북정책


필자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구조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을 역설해 왔다. 그 이유가 한국 정부의 장기적 대북정책이 5년 단임이라는 단기적 정권의 현실과 합치될 수 없음에 있다는 점도 누누이 밝혔다. 이제 2015년이 되어 집권 3년, 정확히 집권 중반기에 진입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대북정책에 스스로 잡혀 북한과의 접촉을 강하게 추진할 수밖에 없다. 현재 통일준비위원회가 쏟아내고 있는 장밋빛 통일대박정책 모두가 실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노래의 백댄서 역할을 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김정은 정권도 한국 정부의 이런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임기 중반 이후 한국 정부의 경제적 대북지원은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굳이 크게 떠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어오는 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10.4선언에서 수십조의 경제지원을 약속했고, 그것은 임기 말년에 쫓기듯 실현된 노무현-김정일 회담의 결과이다. 아마도 박근혜 정부 역시 이런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물론 북한이 노리는 것은 경제지원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집요하게 조국통일 3대원칙을 한국이 공식적으로 재확인할 것을 요구하면서, 한국이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한 북한체제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류길재 장관은 흡수통일과 평화통일 간의 범주적 오류를 범하면서 북한의 논리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북한이 박근혜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실제로 응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북한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통일정책의 올가미에 들어올 것을 요구하고, 대북전단 금지나 북한 체제 인정 문제에 부분적으로라도 성과를 올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볼 것이다. 나머지는 다음 정권에서 해결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임기 중반 이후에는 아마도 다른 선물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4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가 그것이다. 이번 북한의 신년사에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곳저곳에 박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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