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시골이 중동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유

북한 취재를 가더라도 평양과 개성, 금강산, 백두산 같이 북한이 허용한 곳 이외의 지역을 둘러보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도시 이외의 시골 지역을 살펴볼 기회를 갖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도시와 시골 지역의 생활 수준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에 북한이 여간해서는 시골 지역을 외부에 보여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운좋게도 2006년 북한의 시골 지역을 볼 기회를 가졌다. 국내 모 단체의 북한 지역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방북했는데, 이 단체의 행사가 북한의 시골 지역에서 이뤄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평양을 출발해 개성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중간 지점 어디선가 시골길을 따라 버스가 운행하기 시작했다. 포장도 안 된 흙길을 남루한 옷차림으로 걸어다니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동족으로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시골길을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웬지 중동에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 입사 이후 이라크와 요르단, 아랍에미리트, 터키, 이스라엘 등 중동 지역 취재를 많이 해 중동의 인상이 머리 속에 남아있었는데, 북한의 시골 지역이 중동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북한에서 중동을 연상하게 된 이유는?

왜 그럴까? 한반도의 북쪽을 보면서 중동을 연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필자도 신기해 그 이유를 따져봤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산에 나무가 없었다. 중동 지역은 사막 지역이니만큼 나무 없는 땅이 대부분인데, 북한의 산에도 나무가 거의 없었다. 둘째, 마을마다 걸려있는 대형 초상화이다. 당시만 해도 중동 지역은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이 안 돼 절대권력자의 초상화가 시골 마을마다 대형으로 걸려있었는데, 북한의 시골 마을에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형 초상화가 빼놓지 않고 걸려있었다.



▲산꼭대기까지 나무를 찾아볼 수 없다. 북한은 원래 이런 모습을 잘 공개하지 않는데,
나무 심는 모습을 소개하려다 보니 이런 화면이 공개됐다. 조선중앙TV 캡처.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형 초상화가 마을마다 걸려있는 것은 왕조적 전체주의 체제인 북한의 특성을 반영한다 하더라도, 산에 나무가 없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난방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 난방이 해결되지 않으니 북한 주민들은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땔감으로 쓸 수 밖에 없고, 이런 현상은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심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처음에는 가까운 산에서 나무를 해 왔는데, 점점 나무가 줄어들다 보니 산 꼭대기의 나무까지 베어오기 시작했고, 결국 북한 산의 상당 부분이 민둥산이 되고 만 것이다.



▲민둥산에서 나무심고 있는 북한 주민들. 조선중앙TV 캡처.

북, 대대적 산림복구 운동

이런 북한이 얼마 전부터 대대적인 산림 조성 작업에 들어갔다. 김정은 제1비서가 2월 27일 ‘전당, 전군, 전민이 산림복구전투를 힘있게 벌려 조국의 산들에 푸른 숲이 우거지게 하자’라는 담화를 발표하면서부터다. 김정은은 또, 식수절인 3월 2일에는 군부대를 방문해 직접 나무를 심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김정은이 3월 2일 군부대를 방문해 직접 나무를 심었다.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은은 담화에서 ‘고난의 행군’의 결과로 주민들이 산의 나무를 마구 베어내게 됐다면서, 땔감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의 원인은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땔나무림 조성과 주민용 석탄공급 증대, 메탄가스 활용 등 공자님 말씀 이상의 대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나무를 심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산에 나무가 울창하면 공기도 맑아지고 장마철 홍수로 인한 산사태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켜 나무를 베어야 하는 근본적인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 한, 아무리 최고지도자가 나무심기를 독려하더라도 사막같은 민둥산을 푸르게 만드는 과제는 요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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