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박수리소는 거의 대장간 수준”

▲ 89년 선박수리소 현장을 함께 방문한 일행. ⓒ데일리NK

1989년 7월12일.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끝나고 북한과 본격적인 사업 상담을 위해 함경북도 라진시에 있는 선박조선소을 방문했다. 선박조선소가 들어설 부두 사정을 알기 위해 현장 답사를 가던 차였다.

1989년 4월 방북(訪北)할 때 이미 대성총국이 동해안 어느 항구에 배수톤수 약 5천 톤 규모의 선박 수리공작소가 필요하다는 제안을 해왔었다.

매년 11월이 되면 함경북도 북쪽 러시아 해안은 심한 추위로 모든 선박들이 조업을 중단해야 한다. 이 기간을 이용해 선박 수리를 하면 상당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현지 기후가 심각한 혹한으로 선박 수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선박들이 마카오나 싱가포르까지 원정수리를 하러가는 형편이었다. 이 선박들을 대상으로 한겨울에도 수리가 가능한 선박 수리공작소를 라진-선봉이나 청진, 원산에 건설하면 사업이 가능하다는 의견이었다.

대성총국 제3총국(제 3 상사)사장 김호만과 지도원 리성동, 또 한사람의 안내원과 함께 아침10시 출발 라진행 특급열차 침대칸에 올랐다. 열차 안내원이 “미주동포 김찬구 선생님 안녕하십니까?”라며 필자를 반겼다. 여행자 신분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다. 이러한 촘촘한 감시 속에서 간첩도 나오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성총국 측에서 오늘 출장 가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여행증과 기차표를 미리 준비해놓은 상태였다. 우리 좌석은 침대칸이었다. 그런데 열차가 얼마나 흔들리는지 마치 배를 탄 것처럼 심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일제 때 철로 그대로 이용해 많이 흔들려

왜정 때의 철로 시설이라 보수를 자주 못해 많이 흔들린다고 안내가 전해줬다. 침대 칸 한방에 네 명이 정원이라 우리 일행이 딱 맞다. 밤새도록 가면서 이런 저런 사업 이야기와 미국 이야기를 하면서 술도 한잔씩 곁들이자 쉽게 친해졌다. 우선 말이 통하니 쉽게 가까워진 것 같다.

함흥 지나 홍원이란 역에 잠시 멈췄다. 독립운동을 했다는 김일성의 삼촌 김형권이 왜정 때 홍원에 있는 친구 집에 피신을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고발을 해 잡혀간 일이 있다고 했다. 그것도 이야기 꺼리라고 열을 올려 말한다. 맥주도 마시고, 소주도 마셔서 그런지 교대로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89년 7월 13일 06시경 라진 역에 도착하니 수산사업소에서 일제 닛산 중고차를 가지고 마중 나왔다. 운전석이 반대쪽에 있어서 낯설고 이상하다. 필자를 무척 반겨준다.

대성총국 라진 수산사업소의 초대소에 여장을 풀고 10시경 조선사업소를 방문했다. 항만시설과 조선소를 둘러보고 계절별 풍향과 기상 조건 등 기초 조사를 해 보니 수리공작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마침 2,000톤급 러시아 화물 운반선 한 척이 수리 중이었지만, 선체수리에 필요한 기계설비는 대장간 수준이었다. 기관 수리시설 장비와 공구가 많이 부족했다.

사업소 실무자와 사업계획을 세워보니 육상시설은 시간과 자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이동식 부력을 이용한 ‘플로팅 독(Floating Dock)’을 시설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 같아 여기에 대한 사업계획을 세워 다시 상담하기로 했다. 상담을 마치고 대성총국 동해사업소장의 점심초대로 바닷가 비탈진 아름다운 곳으로 갔다.

필자 온 핑계로 모두들 잘놀고 잘먹어

필자 한 사람을 위해 20여명의 직원들이 동원되어 큰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문어, 골뱅이 등의 생선들을 산 채로 요리를 하고 작은 통통배는 계속 음식을 실어 날랐다. 분위기를 보니 필자 핑계로 모두들 한 바탕 놀고먹으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술은 오가피에 맥주까지 동원됐다. 그곳에서 한 잔씩 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흥겹게 놀았다. 어떤 이는 술에 취해 그 자리에서 잠도 자고 다들 거나하게 잘 놀았다.

저녁에는 내가 낮에 수고하신 분들과 그 가족들을 초대했다. 안내에게 200 달러를 주면서 음식이 부족하지 않게 준비를 잘하라고 일러뒀다. 그리고 숙소에 와서 잠이 들었다.

안내가 깨운다. 저녁 식사시간이라고 했다. 수산사업소 사무실에 책상을 붙여놓고 갖가지 생선으로 잘 차려놓았다. 자세히 쳐다보니 낮에 먹던 것과 비슷하게 술과 함께 차려졌다. 담배와 사탕까지 준비가 되고 직원부인들도 동반을 했다.

부인네들은 무슨 행사에 나가듯 한복으로 곱게 차려 입었다. 식탁에는 생선종류들과 술, 담배뿐이다. 과일과 채소는 전연 없다. 술잔을 돌리고 떠들썩 해지고 분위기는 노래와 춤으로 연결되고, 시끌벅적해 지면서 동족의 애정을 서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에게 술잔이 계속 온다는 것이엇다. 필자는 술잔을 거절 못하고 주는대로 받아 마셨다. 그러다 보니 과음을 하게 돼 정신이 흐릿해진다.

안내에게 슬쩍 말했다. 나를 숙소로 데려 달라고 했다. 너무 취해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연이어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네”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하리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필자는 숙소로 돌아왔다.(계속)

김찬구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 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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