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은 ‘갑 속에 든 칼’이다. 왜냐하면 북핵은 주변 열강들의 견제와 보이지 않는 핵 억제력으로 북한 정권 내부의 엄격한 자기 검열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말로는 선전포고에 준하는 위협을 하고 있지만 핵 사용 자체는 신중하다 못해 거의 사용하지 못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북한의 핵 무기는 그들의 발악적인 최후의 수단일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의 폭발력은 대략 15kt(킬로톤)으로 추정되며 성공적이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1945년 히로시마를 초토화시켰던 원자폭탄에 맞먹는 규모이다. 문제는 북한의 핵이 ‘어디’를 겨눈 무기냐는 점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남한 사람 대부분은 북한이 설마 서울을 향해 핵을 쏘진 않을 것이란 막연한(?) 신뢰가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알 수 없는 평온함이 이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안온한 믿음은 근거가 있는가?
최근 북한이 발표한 경제건설과 핵 무력의 병진계획은 더 이상 재래식 무기 증강을 위한 비용은 줄이고 그 기회비용을 인민을 먹여 살리는 생활경제로 돌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조차 나왔다. 물론 군사안보 전문가들의 시각에 이는 전혀 타당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갑 속의 칼’을 이용하여 무엇을 할까? 북한이 무난히(?) ‘할 수 있는(feasible)’ 공격 수단이 있을까? 유일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수령제 공산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대한민국에게 가할 ‘위해’의 실체는 무엇일까?
궁극적으로 북한이 추구하는 것이 적화통일인데 ‘적화’란 사상적, 이념적 승리를 통해 자본주의 경제의 숨통을 끊어 공산주의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를 무력화시켜 대한민국이 뇌출혈을 일으킬만한 구체적 타격수단은 무엇일까?
눈 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최근 빈발하고 있는 ‘사이버 테러’이다. ‘테러’라고 함이 마땅한, 그 규모 또한 무자비하다. 더군다나 은밀하다. 경제기반의 정보통신 기술 의존도가 높을수록 그 파괴력이 크다. 북한으로선 아주 적합한 공격수단인 셈이다.
북한은 핵 위협으로 한반도 긴장을 고도화시키며 우리의 모든 신경을 핵으로 돌리고 ‘성동격서’의 병법으로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 공격을 가일층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고도의 훈련으로 최정예화된 해커부대원들을 1만 2000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2009년 7·7 디도스, 2011년 3·4 디도스와 농협, 지난해 중앙일보 해킹을 시도했다. 중앙일보 해킹 관련 피해내용은 기실 간단하다. 지난 25년간 누적돼 온 모든 콘텐트(뉴스 뿐 아니라 조직의 시스템과 경영효율의 지지기반이었던 모든 인사/재무/회계/총무 프로그램까지 포함됐다)의 내용과 구축 시스템이 완파됐다. 한마디로 과거로 회귀한 것이다.
최근 몇 개의 언론사와 굴지의 국내 금융기관을 마비시킨 이번 사이버 공격도 북한의 소행임이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방송은 작가들이 육필로 원고를 써서 진행했으며 아직도 완전히 복구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굴지의 금융기관들도 공과금수납 및 은행의 모든 거래가 일시적으로 정지되는 극도의 혼란으로 인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사태 후 방어차원에서 일정 규모의 회사나 금융기관들은 사내에서 일체의 포털 사이트 등 인터넷 이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사내 인트라넷만을 사용하고 있다. 굳이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스마트 폰을 활용해야 하는 실정이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이런 방어적 인터넷 사용이 야기하는 경제적인 문제이다.
오늘날 경제 실상을 보면 경제활동의 행태가 대부분 IT 인프라에 의존하고 있다. 이제 자본주의 경제의 토대는 B2B와 B2C로 압축되는 정보통신 기술에 바탕한다. 사이버 테러는 바로 현대 자본주의의 기술적 정서적 근간을 파멸시킨다.
사이버 테러를 방어하기 위해서 인터넷 사용이 금지되는 것은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책 구입, 영화 및 공연 예매, 생필품 구매, 인터넷 광고 등 실제로 인터넷상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경제 활동이 위축될 것이며 이에 따른 필연적인 매출과 이익 감소로 해당업체들은 어려운 환경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우리 경제는 치명적인 구렁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모든 것은 상호연관 속에서 맞물려 돌아가는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다. 건전한 시장은 건강한 선순환 구조로 돌아간다. 인체와 똑같이 순환의 한 부분이 예컨대 동맥경화나 뇌출혈로 고장이 나면 경제는 멈춰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문제는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전산화된 콘텐트의 파괴가 현실 공간에서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그 심각성이 피부로 썩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이버 테러는 바로 이 점을 파고 들고 있다. 사이버 테러로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기초를 파괴하는 것, 이것이 사이버 전쟁의 목적이다.
하여, 핵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의제로 다뤄야 할 사안이 사이버 테러이다. 정부는 마땅히 연평도가 맞은 것 같은 강력한 대응의지를 보여줘야 마땅했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이 문제에 대해 놀라운 혜안을 보여준다.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DNI)국장은 지난달 12일 열린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다음과 같이 실토했다. “미국이 직면한 최대의 안보 위협은 사이버 공격과 사이버 스파이 활동이다. 사이버 공격은 북한의 핵 위협이나 시리아의 내전보다 더 위험하다.” 심지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은 사이버 테러로 인명피해가 발생할 경우 무력을 사용하겠다고까지 선언하고 나섰다.
그런데도 대부분 국내 언론은 마치 작은 규모의 국지적인 충돌 정도의 뉘앙스로 사이버 테러를 다루는 듯한 인상이다. 국민들의 인식도 이런 방향으로 길들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나 인터내셔널 헤랄드트리뷴(IHT)같은 해외 유력지만이 문제의 심각성을 심도 깊게 보도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시장경제에서 우수한 인재들은 시장에 몰려 있으며 계획경제 아래 우수한 인재는 국가조직에 몰려있다. 국가주도로 구성된 북한의 해커부대는 지상군 이상으로 잘 조직된 우수한 인재들일 확률이 높다. 그들은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니다. 평양 과기대 학생들의 수준이 포스텍 학생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는 것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당대 동북 아시아를 주름잡던 강대국이었던 당나라의 총사령관 소정방은 지금의 미 국방부장관쯤 되는 최고의 장수였는데, 고구려의 일개 승려에게 맞아 죽었다. 북한은 우리와 이 역사를 공유하는 집단이다. 그들은 경제적 최빈국이지만 군사강대국인 것이다. 북한의 정보통신 인프라가 형편없다는 것과 북한의 사이버 운용능력은 서로 무관하다.
정보기술 인프라가 뛰어나고 경제의 IT기반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사이버 테러를 가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다시는 이런 세기말적이고 도발적인 행동이 되풀이 되지 않게 온라인 공간에서만큼은 전면전과 같은 강도로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 금방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는 벌써 치명적인 한방을 어이없이 맞은 것이다.
일어나서는 결코 안될 일이지만, 잔망스런 상상을 금하기 어렵다. 만약 북한의 다음 표적이 인적 물류의 중심인 인천국제공항, 한국경제 물류의 중심인 부산항이라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사이버 테러로 모든 시스템과 흐름이 마비되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 보자. 이것이야말로 실질적인 핵 폭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 이를 차단할 방안이 세워져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공격은 언제나 기습적이고 은밀한 게릴라였음을 잊지말자.
<<윗 글은 서연종 하나은행 삼성 지점장과 공동 집필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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