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래, 그 ‘아찔한 시나리오’ 4가지

역사가 잘 보여주듯 인간은 미래를 예측할 능력이 없다. 마르크스주의처럼 역사의 흐름을 과학적으로 예언 가능하다고 주장한 이론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과 세계적인 경향성을 깊이 고민하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는 믿을만한 시나리오를 제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시나리오를 제안할 때에 ‘가설적’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래도 이런 시나리오를 통해 미래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필자의 생각에 2008년 6월 현재를 기준으로 북한의 미래를 예상하면 4가지 시나리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것은 1) 중국식 시장 개혁 2)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 3) 친중정권 수립 4) 장기 혼란이다. 이 글은 이런 시나리오를 차례로 분석하고 각 시나리오별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관측해본다.

1. 중국식 시장 개혁

1990년대 말부터 남한 정부는 이 시나리오를 가장 바람직하게 생각해왔을 뿐만 아니라, 다른 시나리오를 전혀 검토하지 않아 왔던 편이다. 김대중-노무현 청와대는 북한이 조만간 자신의 힘으로 개혁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는지 모르지만, 마치 이러한 판단을 한듯이 행동했다. 이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김정일이나 그 후계자는 중국과 베트남의 경험을 모방해서 북한에서 점진적인 개혁 정책을 시작할 것이다. 이 개혁정권은 농업에서 땅을 개인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공업과 상업 분야에서는 먼저 중소기업, 나중에는 대기업까지 민영화시키고, 시대착오적인 계획경제에서 효율적인 시장경제로 전환시킬 것이다. 이러한 사회 개혁을 하는 동안 이 정부는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정치분야에서는 공산주의 간판을 계속 내걸고 권위주의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국내의 안정을 유지할 것이다.

중국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정책은 고속 경제성장을 초래할 잠재력이 있다. 이 정책이 실시되면 북한 주민들은 누구나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몇 년만 지나면 주민들은 옛날 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갈아 탈 것 같다. 물론 서민들은 국가보위부나 노동당에 대한 공포심이 없진 않지만 그들의 개인 자유는 많이 넓어질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현재의 북한 엘리트들은 ‘수령님의 충실한 간부’에서 ‘유능한 관리자’나 ‘사업가’로 변신해서 북한 서민들을 ‘수령님의 전사’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변화시키면서 자신의 특권을 유지, 연장할 것이다.

엄청난 통일비용과 북한의 사회혼란을 두려워하는 남한이 이 시나리오를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개혁을 시작할 북한은 남한으로부터 적지 않은 지원을 필요하지만 남한은 다른 시나리오보다 이런 지원이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또, 이 경우 남한은 남북간 무장충돌이나 대량난민에 직면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에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점이 하나 있다. 이 시나리오는 바람직하지만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여러번 주장해온 바와 같이 자유롭고 풍요로운 남한이 있다는 것은 북한 주민에게 막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만약 북한 주민들이 현재의 중국 수준을 능가하는 개인 자유나 정보접근 자유를 달성하게 된다면, 남한에 대한 매력은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쉽게 말해 중국 사람들이 미국이나 일본이 잘 산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들 국가와 소비수준을 맞추기 위해 ‘통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자신의 생활을 남한의 풍요와 비교해서 탈공산주의 정권을 ‘정통성 있는 정부’로 보지 못할 뿐 아니라 동독 사람들처럼 흡수통일을 통해 자신의 경제문제를 쉽게 해결하고 남한의 소비수준에 빨리 올라설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환상이지만 이러한 환상은 북한정권을 약화시킬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북한정권이 정말 중국처럼 개혁개방을 시작한다면 이 정책이 초래할 결과는 고속 경제성장보다 정치혼란과 정권 붕괴이다. 이러한 혼란은 흡수통일(시나리오 2)을 초래할 수도 있고, 친중국 위성정권(시나리오 3)이나 장기 혼란 (시나리오 4)의 전주곡이 될 것이다.

2. 흡수통일

요즘 남한 매체를 보면 “흡수통일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말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좀더 자세히 보면 “흡수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보다 “흡수통일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경제적 격차가 너무 심한 지금의 남북한보다 사정이 비교적 좋았던 동서독이 경험한 어려움을 인용하여 흡수통일이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파괴를 야기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들의 우려가 근거는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세상에는 우리가 원치 않는 것도 분명히 가능하다.

흡수통일을 초래할 수 있는 배경은 두 가지 정도로 관측된다.

하나는 북한 정권이 정말로 중국식 개혁을 시도해서 주민들에 대한 감시 및 탄압을 완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개혁파의 기대와는 달리 체제완화로 생겨난 새로운 기회들을 잘 활용하는 것보다, 좀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면서 나중에는 북한 체제를 반대하는 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바꿔 말하면 20여년 전 소련이나 동유럽에서 볼 수 있었던 사회주의 위기와 비슷한 현상이 개혁을 시도할 북한에서도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로 생길 새 민주정권이 민중의 압력을 반대하지 못하고 ‘즉시 통일’을 요구한다면 서울은 별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개혁을 하지 못할 경우에도 체제붕괴와 흡수통일은 가능하다. 1990년대부터 북한에서 정권의 통제력이 계속 약해지고 있다. 남한을 비롯한 외부세계의 정보가 북한 내부에 전국적으로 퍼져가고 정권에 대한 공포감은 차츰 적어졌다. 결국 규모가 작은 사건이 체제에 타격을 줄 잠재력이 생긴 것이다. 동유럽 민주화 운동 역사만 아니라 세계 역사를 보면 지방도시 장마당이나 축구 경기장에서 시작한 작은 소동이 기반이 약해진 체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체제붕괴가 곧 무조건 흡수통일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흡수통일로 갈 가능성이 아주 높다. 남한 사회와 정부는 흡수통일을 원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북한에서 ‘즉시 통일’을 요구하는 대중운동이 벌어지게 되면 서울은 이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 체제붕괴 이후에 이북에서 사회혼란이 생기기 시작할 경우, 서울 정부는 이북에 대한 통제를 관리할 조치를 취하게 될 경우 흡수통일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요즘 남한사회에서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가 심각하다. 유감스럽지만 이러한 공포는 근거가 없지 않다. 정치적인 통일이 이룩된다 해도 사회적 모순이 오랫 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북한주민 대부분은 열심히 일할 줄 알지만 지식과 경험이 모자라서 평생 동안 미숙련 노동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달으면 남한의 대한 적대감이나 배타적 감정이 생길 수 있다. 남한의 빈곤계층도 또 북한 출신과 경쟁해야 되니까 고생이 많을 것이다. 북한의 복구에 막대한 투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남한의 경제성장은 일시적으로 중단되고 생활수준이 하락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 흡수통일로 인해 생긴 문제가 너무 다양하고 너무 어려워서 쉽게 해결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흡수통일의 시나리오는 약점이 많은 만큼 장점도 많다. 이 시나리오로 될 경우, 북한 사람들의 물질적 생활과 교육수준 그리고 그들이 누리게 될 자유는 우리가 이 글에서 다루는 다른 시나리오보다 더 빠르게 개선될 것이다. 불가피해 보이는 남북 사이의 모순과 갈등에 불구하고, 이 시나리오는 분단의 부정적인 결과를 제일 완벽하고 빠르게 극복하는 방법이다. 또, 흡수통일의 경우 ‘통일 한국’은 주변 강대국의 간섭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친(親) 중국정권(시나리오 3), 장기 혼란 (시나리오 4)의 경우, 한반도가 강대국 경쟁의 무대로 변화될 수 있다.

3. 친중국 정권 수립

최근 몇해 동안 중국의 대북 진출이 활발해진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중국이 한반도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먼저 미국과의 첨예한 대립 때문에 중국은 북한을 ‘완충지대’로서 필요하다. 또, 중국은 북한 위기가 야기할 정치혼란, 대량살상무기 확산, 대규모 난민 등을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요소로 판단한다. 중국은 또 북한의 광산물과 교통, 물류 네트워크를 경제개발을 위해 이용하자고 한다.

이 때문에 북한의 혼란이나 흡수통일을 원하지 않는 중국은 북한에서 친중정권 탄생을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최근의 경향을 보면 중국이 이러한 준비를 하는 암시가 많다.

친중정권 탄생의 배경으로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북한에서 정치 혼란이 발생하면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현지 세력과 결탁해서 북한으로 진출하여 ‘한반도 평화유지 작전’을 구실로 북한지역에 정치 통제를 실시할 것이다. 또 하나는 중국이 이런 위기가 다가오기 전에 미리 비밀 작전으로 평양 지도부 내 친중국 종파를 도와주고 그들이 정권을 잡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 엘리트들은 사회 혼란을 원하지도 않고, 흡수통일이 되면 특권을 잃어버리고 벌을 받을지도 모르니까 압도적으로 중국의 간섭을 환영할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간섭은 1910년의 한일합방과 같은 ‘북한 국토의 점령’을 의미하진 않다. 1950~80년대 동유럽 국가를 통제했던 소련처럼 중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주권국가로 보장하고 뒤에서 보이지 않게 조종하려 할 것이다.

사실상 이런 시나리오의 결과는 개혁개방 시나리오(시나리오 1)와 비슷하다. 친중국 정권은 북한에서 중국식 개혁을 실시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어려운 과도기에 이같은 개혁을 돈과 경험으로 지지할 뿐만 아니라 친중정권에 도전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을 단속할 것이다. 결국 ‘위성국가 정치’에도 불구하고 북한 서민들의 생활은 많이 좋아질 것이다.

그래서 이 시나리오는 한국 민족주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수 없지만 장점이 없지 않다. 또 유감스럽지만 약점도 많다. 이 시나리오는 중국이 나중에 북한에서 철수할지 모르지만 분단의 영구화를 의미한다. 또, 중국의 간섭은 한반도 주변 국제환경을 많이 악화시키고 한반도를 구한말처럼 강대국의 노리개로 전락시킬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 아래에 북한경제의 개선이 가능하지만 정치 민주화는 상상하지도 못할 것이다.

4. 장기적인 혼란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이나 그 후계자의 약한 리더십 때문에 북한에서 서로 경쟁하는 정치 종파가 등장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북한은 1920년대 중국과 비슷한 군벌(軍閥)이 탄생할 수 있다. 지금도 북한 지도부 안에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체제붕괴에 대한 공포 때문에 김정일에게 감히 도전하지 못한다. 그러나 ‘김정일’이라는 체제의 상징인물이 없어지면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힘으로 보호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은 자연스럽다.

물론 땅이 넓은 중국과 달리 북한 땅은 좁다. 북한 땅에서 서로 다투는 군벌 몇 개가 생기면 이들은 무장으로만 진압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남한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해 보면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북한 땅의 안정을 위해 위험한 전장으로 보낼 의지가 없어 보인다. 특히 북한의 군벌들이 핵탄두 몇 개씩 보유하고 있으면 군인들의 생명을 별로 아끼지 않는 중국까지도 대북 파병을 모험으로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 지역의 ‘안정된 불안정’의 상태를 할 수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군벌들은 한반도 북방 지역에서 각자의 영향권을 나누고 남한, 중국, 미국, 일본 등을 대량살상무기로 협박해서 얻는 경제지원으로 장기 생존할 수 있다. 물론 이런 혼란은 무기한 지속되진 못하고, 결국 친중정권 수립 또는 흡수통일로 끝날 것이다.

위의 4가지 시나리오 중 ‘장기 혼란’이 가장 위험한 것이다. 이러한 혼란으로 말미암아 북한 서민들의 삶은 ‘고난의 행군’보다 더 어렵고 더 위험해질 것이다. 또 군벌끼리의 경쟁은 한반도에 상상하기 어려운 재난을 야기할 수 있다. 군벌이 서로 싸우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힘든 피난 길로 나가야 한다. 또 그들의 경쟁은 불가피하게 주변 강대국의 개입을 불러와 한반도를 둘러싼 불안정과 대립이 더 첨예화될 것이다. 핵전쟁의 가능성도 그리 높진 않지만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북한 변화, 냉정하게 분석해야

이상으로 북한의 미래와 관련하여 4가지 시나리오를 제기할 수 있다. 물론 미래를 아는 방법이 없으니 역사의 강이 완전히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또, 몇 개 시나리오를 합한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개혁개방의 시도가 혼란으로 이어지다가 이 혼란이 친중국 정권 수립이나 흡수통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현 단계에서 남한은 북한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하지만 한국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된다. 북한에 남한의 좋은 이미지를 형성시키고, 북한과 관계를 맺고, 북한에 대해 많이 배우면서 불가피한 변화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는 북한 변화의 경향성을 냉정하게 분석할 중요한 의무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시기에 남한 정치 엘리트도, 일반 국민도 희망적 기대와 감상적인 환상에 빠져서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냉정하게 분석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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