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동화 ‘황금덩이와 강낭떡’이 주는 교훈

‘적기가’, ‘한 자루의 권총사상’, ‘이민위천’에 대한 신념화된 믿음을 안고, ‘북한은 모두 애국, 남한은 다 반역’ 국회를 ‘혁명투쟁의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는 종북주의자 이석기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또한 이들의 내란음모 혐의를 ‘농담’이라고 변호한 통진당 대표 이정희의 ‘민낯’도 벗겨졌다. 이번 사건으로 일부 국회의원들의 성향, 진보단체들의 색깔도 더 선명해지는 듯하다.


‘남북 경제규모 격차 39배(실제는 이보다 훨씬 클 것), 무역규모 차이 212배, 체제경쟁은 이미 끝났다, 북한은 더 이상 위협 대상이 아니다’는 안일함 속에 남한 제2야당 당원들과 헌정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유사시(전쟁)에 북한을 돕고, 남한체제를 전복하려는 모의를 공공연히 벌인 셈이다. 또한 이를 변호하는 세력들의 공권력 무력화시도, 도전행위들도 태연한 웃음과 당당한 모습으로 횡행하고 있다. 황금덩이에 묻혀 사는 남한, 강낭떡(옥수수떡)도 없어 굶주리는 북한! 과연 남북의 경쟁은 이미 끝난 것 인가? 그리고 남한은 안전하며, 북한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doomed)일까?


북한에는 ‘천 하루 밤 이야기’, ‘해리 포터’보다 더 유명한 작품이 있다.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시절 어린이들에게 들려주었다는 동화 ‘황금덩이와 강낭떡’이다. 동화의 주제는 간단하다. 어느 날 홍수가 마을을 덮쳐 물에 잠기고, 지주와 머슴은 같이 나무로 피하는데 지주는 황금덩이를, 머슴은 강낭떡을 가지고 오른다. 금세 그칠 줄 알았던 비는 며칠째 계속되고, 결국 배고픈 지주는 머슴에게 처음에는 금 한 덩이와 강낭떡 한 개를, 나중에는 금덩이 전체와 강낭떡 한 개와 바꾸자고 한다. 머슴은 단호히 거절하며, 지주는 견디지 못해 결국 물에 빠져 죽는다. 동화는 세상이 황금덩이로 대표되는 부와 돈이 전부가 아니며, 보잘것없는 강낭떡을 가진 머슴이 더 현명하고 이길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북한의 사회주의와 남한의 자본주의, 남북관계의 해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여기서 머슴과 강낭떡은 긍정, 지주와 황금덩이는 악이다. 이를 남북관계에 대비하면 북한은 강낭떡, 남한은 황금덩이란 얘기다. 북한이 걸어온 행적도 이에 딱 들어맞는다. 남한이 부유와 번영의 길을 질주했다면, 북한은 황금덩이를 거부한 가난과 체제생존의 강낭떡을 선택하였다.


사회주의를 건설한 김일성은 경제위에 핵, 미사일 개발을 얹어놓았다. 김정일은 공산권 붕괴와 개혁개방의 홍수를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는 노작과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마라’로 맞섰다. 그리고 핵,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였다. 3대째 왕조의 바통을 이어 받은 김정은은 경제와 핵 무력건설 병진노선으로 이를 더 극대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북한이 황금덩이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른 방법으로 손에 넣으려 하였고 또 쟁취하였다. 김일성은 6·25전쟁으로 남한을 침략했으며, 적화통일의 꿈을 접은 적이 없다. 김정일은 핵, 미사일을 흔들어 황금덩이를 많이도 갈취하였다. 그 황금덩이로 부족한 강낭떡도 보충하였고 이도 더 튼튼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현재 김정은의 북한은 어떠한가? 여러모로 더 불안해졌다. 지난 5년간 갈취가 더는 통하지 않았고, 제재도 촘촘해 졌으며, 지금 중국도 등을 돌리고 있으니 체제존속까지도 위험해진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김정은은 아버지의 유산인 개성공단을 승부수로 던졌다. 이를 미끼로 금강산관광, 남북경협 전면재개, 5·24조치 해제의 황금덩이를 노리고 있다. 마치도 강낭떡 한 개를 흔들어 황금덩이 몇 개를 얻듯이.


북한이 이번에 개성공단에 목을 맨 데는 이유가 있다. 개성공단이 닫히면 앞으로 5년간 남북관계 전체가 완전히 중단될 위기에 처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강낭떡 고갈로 체제생존도 위험해진다.


강낭떡도 지키고 황금덩이도 차지하겠다는 김정은의 생존전략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과거에 비해 지금은 우리의 손에 많이 달려있다. 북한의 변수를 극복할 수 있는 남한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진 셈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힘을 결집해 세기의 숙원을 풀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남한내부의 정치지형을 돌이켜보면 자신감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은 왜 일까.


이석기와 통진당 사태는 남한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놀라움을 넘어 경악 그 자체이다. 또한 놀라운 것은 대한민국과 국민을 대표하는 헌정기관에 이들을 동조하거나 북한 편에 선 의원들이 31명(국회체포동의안 반대 14표, 기권 11표, 무효 6표)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석기 변호에 이정희 통진당 대표 등 20여 명이 힘을 합쳤다고도 한다.
 
진보단체를 대표하는 ‘참여연대’도 이석기에 대한 비판은 단 한마디 없다. 쇠고기파동, 촛불선동으로 시민들을 청와대로 유인했고, 천안함 사태 때 유엔안보리에 한국정부의 조사에 의혹이 많다는 서한을 보냈으며, 한미FTA를 ‘제2의 한일합방’이라고 반대했던 참여연대는 이번에도 역시나다. 이들이 이달 창립 19주년 초청행사 때 독려하는 10만~100만 원에 이르는 행사후원금도 앞으로 국가안보를 해치고 종북, 친북세력을 기르는 토양을 마련하는 데 쓰이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북한동화 ‘황금덩이와 강낭떡’이 한반도에서 재연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이번 기회에 북한도 북한이지만 우리 자신부터 심각히 돌이켜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털고 갈 것은 깨끗이 털고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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