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도로는 무법천지, 각종 인명 사고 늘어

▲ 화물차를 기다리는 주민들 <사진:고려그룹>

요즘 북한에 원유가격이 오르면서 자동차 운행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북한산 자동차들은 목탄난로를 올려놓고 다니지만, 수입 자동차들은 목탄난로를 올려놓을 수 없으니, 군부대에서 빼돌리는 연유를 ‘기름장사꾼’들에게 비싼 돈으로 사서 운행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휘발유 가격은 1kg당(북한은 kg으로 매매, 휘발유 1kg은 약 1.5리터) 1,500원 전후로 알려지고 있다.

일반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화물차

가뜩이나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기름값까지 올라 장사하는 주민들에게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북한은 택시도 없고, 버스도 없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여행해야만 하는데, 기차를 타자고 해도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로 기차표 값이 뭉텅 뛰어올라 일반 주민들은 통행증을 발급받고도 기차를 타기 어렵다. 무산-평양행의 경우 무산에서 평양까지 북한 돈으로 15,000원까지 한다. 일반 노동자들의 월 임금이 2,500~3,500 수준이니, 엄청난 금액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할 수 없이 화물차를 이용해 식량을 구하러 가거나 장사하러 다닌다. 자동차를 한 번 타는데 홀몸인 경우 회령에서 청진까지 300~500원, 그러나 짐을 가지고 탈 경우 한 개당 300원씩 증가된다. 결국 짐 한 개를 사람 하나로 본다.

화물차만 보면 노상강도로 돌변하는 인민군

화물차 운행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군인들이다. 식량난이 심각해지자, 굶주린 군인들이 강제로 차를 세워 물건들을 강탈하는 사건들이 빈번해졌다. 일반 주민들 중에 군인으로 가장하고 강도짓에 나서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군대로 가장해 수십 명씩 떼를 지어 고개를 지키거나, 달리는 차를 가로막아 물건들을 강탈하는 것이었다.

98년 식량난이 심각했던 시기에는 하루아침에도 ‘어제 안주에서 털렸다’, ‘오늘은 순천에서 털렸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자 김정일은 98년 3월, “도로에서 차를 가로막는 자들은 깔아뭉개도 무방하다”는 지시를 내렸다. 김정일의 지시가 내려지자 운전자들과 간부들은 마음 놓고 차를 몰아댔다.

그 통에 화물차를 세우려다 치어 죽는 사람들이 생겼다. 죽은 사람들 중에는 군인들이나 군인을 가장한 강도들뿐만 아니라, 화물차를 얻어 타려고 달려들던 일반 주민들도 있었다. 김정일의 말 한마디에 ‘화물차와 군인들 간에 쫒고 쫒기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달리는 차를 가로막는 데는 군인들 중에는 검열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외출한 군인들이나 탈영한 군인들이다. 군인들이 차를 합법적으로 세우는 데 좋은 방법은 ‘기통수’(군 우편물 나루는 군인)나 헌병들이 휴대하고 있는 ‘완장’이다.

탈영군인들은 헌병 완장이나 기통수 완장을 두르고 고갯마루 같은 곳에 지키고 있다가, 자동차가 속도를 늦추고 올라올 때 차를 세운다. 차를 세우면 마치 자신들이 주인인 것처럼 “장군님의 군대가 타겠다는데 무슨 말이 많은가” 하고 위세를 부린다. 그런데 차를 세우고 타는 데까지는 괜찮은데, 자기가 가고 싶은 곳까지 차를 끌고 가서 짐까지 빼앗는다. 심지어 탑승자들에게 강제로 일까지 시키는 경우도 있다. 물론, 운전수나 탑승자들이 반항하면 뭇매를 안긴다.

장군님의 교시 덕(?)에 인명사고 급증

1999년 3월 어느 날, 나는 평양으로 들어가기 위해 개천- 평양 간 도로에 나섰다. 마침 도로 옆에 군인 세 명이 ‘기통수’ 완장을 두르고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뒤에는 주민들 셋이 군대들이 차를 세우면 덩달아 얻어 타려고 그들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중국산 7톤급 트럭 동풍(東風)호가 기세 좋게 달려오고 있었다.

군인들이 앞을 가로막자 차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서 다가왔다. 차가 다가오자, 군인 한 명이 운전사가 있는 쪽으로 붙으려 하고, 다른 군인들과 주민들은 차가 멈추려니 생각하고 매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르릉~’ 하며 차가 속도를 내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때 운전사 쪽에 다가가던 군인이 날쌔게 운전석 쪽의 손잡이를 잡았다. 만약 군인이 문을 여는 날이면 운전수는 몰매를 맞게 되는 상황이었다.

다급해진 운전수는 달리는 상황에서 차문을 확 열어젖혔다. 순간 매달렸던 군인이 ‘악!’ 소리를 지르면서 손잡이를 놓치며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이 일을 어찌하랴! 그의 두 다리가 뒷바퀴에 깔리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차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차 안에는 운전사 외에 두 명이 더 있었는데, 아마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은 차림새를 봐서 간부인 것 같았다. 옆 좌석에 앉은 간부는 멀어져 가는 차 안에서도 힐끔 돌아보면서 운전수에게 속도를 내라고 재촉하는 것이었다.

차에 치인 군인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지만 ‘동풍’호는 기세 좋게 저 멀리 사라졌다. 만약 그 군인이 운전수에게 주먹질을 가해 차를 세웠어도, 운전수는 ‘장군님 방침대로 했다’라고 큰소리를 쳤을 것이다. 차에 깔린 군인은 다른 군인들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겠지만, 당시 북한의 의료시설 수준에서 그의 다리를 원상회복시킬 수 있었을지 알 길이 없다.

최근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의 교통사정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교통사정이 어려워질수록 북한의 도로는 무법천지가 되고 있다. 여기에 위대한 장군님의 황당한 교시까지 더해져, 크고 작은 인명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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