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다큐 3부작’ 대니얼 고든 감독

평양으로 직접 들어가 ‘천리마 축구단'(2002년), ‘어떤 나라'(2004년), ‘푸른 눈의 평양 시민'(2006년) 등 북한에 관한 다큐멘터리 세 편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세계적으로 주목 받은 영국인 감독 대니얼 고든. 그가 세 번째 작품의 23일 한국 개봉을 앞두고 서울을 방문했다.

고든 감독은 12일 오후 서울 장충동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국가가 얽힌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서는 중립적인 시각이 필요했다”며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라고 말했다.

한국(Korea) 방문이 몇 번째인지 묻자 그는 곧바로 “북(North)? 남(South)?”이라고 되물을 만큼 북한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처음엔 평양 거리에서 체제를 선전하는 간판들이 눈에 띄었지만 어느새 그것들은 평양 사람들과 만나는 배경으로만 보이게 됐다”며 그의 영화가 ‘평양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임을 강조했다.

다음은 고든 감독과의 일문일답.

–한국에 온 것이 몇 번째인가.

▲북한? 남한? 북한은 20번 가량 방문했고 남한은 이번이 3번째다.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왔고 2005년 ‘어떤 나라’를 남한에서 개봉할 때도 방문했다.

–북한에 관한 첫 다큐멘터리 ‘천리마 축구단’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과 이탈리아 간 축구경기에 대한 어렸을 적 관심에서 시작됐다고 들었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는 뭔가.

▲그 경기 이후 이탈리아 대표선수들이 고국에서 큰 수모를 겪었다는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북한 선수들이 그 경기 이후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영국에서 스포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차기작으로 이 이야기를 30~40분 정도의 영상물로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80여 분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가 될 줄은 예상 못했다. 사실 ‘천리마 축구단’을 완성하고 바로 매스 게임에 관한 ‘어떤 나라’를 만들게 될 줄도 예상 못했다.

–평양에서 외국인의 영화 촬영은 ‘천리마 축구단’이 처음이다. 처음 북한 정부에 촬영을 요청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

▲성사되기까지 4년이 걸렸지만 단호하게 부정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북한 정부는 내가 정치적인 영화를 찍기 위해 접근하는 것인지, 순수하게 축구 영화를 찍으려는 것인지 경계하는 듯했다.

–월북한 미군의 이야기는 이전 작품들보다 민감한 이슈다. 기획부터 촬영이 성사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평양에서 ‘천리마 축구단’을 완성할 때 북한에 망명한 미국인 4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단한 휴먼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첫 영화를 찍을 때 어려움이 있었던 만큼 힘들게 얻은 가능성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다음 영화를 찍었다. ‘어떤 나라’를 2003년 2월부터 찍었는데 그해 9월까지 찍게 될 줄 몰랐는데, 그러면서 ‘푸른 눈의 평양시민’을 준비했다. 그 때문에 결혼식도 3번이나 연기했다.

–‘푸른 눈의 평양시민’은 정치색을 배제할 수 없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도 감독은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정치적 이슈에 관한 이야기지만 정치적 요소가 꼭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원래부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북한과 남한, 미국, 일본 등 각 관계 당국에서 원하는 시각이 있었다. 감독으로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정할 수밖에 없다. 또 그것이 원래 내가 영화를 찍는 스타일이다.

–세 편 모두 주인공들이 평범한 평양 사람은 아니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을 다루려고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배경이 평양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주인공들이 그렇게 특권층이었던 것도 아니다. ‘천리마 축구단’은 자신의 힘으로 업적을 낸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그나마 1명을 제외하고는 자가용도 없다. 또 ‘푸른 눈의 평양시민’의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은 외국인인데 다섯 식구가 이 방(인터뷰룸)의 3배 가량 넓이의 집에서 살고 있다. 그런 걸 특권층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평양의 대로변과 광장 정도밖에 볼 기회가 없다. 평양의 ‘뒷골목’의 모습은 어땠나.

▲대로변보다 관리가 좀 덜 됐을 뿐 아프리카의 슬럼가 같은 느낌은 절대로 아니다. 처음에는 거리에 체제 선전을 위한 간판들을 볼 때마다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으나 점점 그것들은 평양 사람들을 만나는 배경으로밖에 느껴지지 않게 됐다.

–영화를 찍는 도중 찰스 젱킨스가 일본으로 건너가 미군에 자수했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영화가) 완전히 바뀌었다. 북한에 망명한 4명 가운데 생존해 있는 2명 드레스녹과 젱킨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것인데 중간에 젱킨스가 일본으로 가버렸다. 젱킨스가 이후 서구 언론과 단독 인터뷰하면서 드레스녹을 비난한 것과 미군으로부터 30일의 형량을 선고받은 데 매우 놀랐다. 그래서 북한으로 다시 건너가 드레스녹에게 인터뷰 내용을 보여줬고 드레스녹과 다시 인터뷰를 했다. 그 인터뷰는 젱킨스의 행동에 대한 드레스녹의 즉각적인 반응이라 영화에서는 다소 거친 모습으로 담겼다.

–드레스녹과 젱킨스의 대립 구도는 의도적인 편집으로 보인다.

▲의도적인 것이 맞다.

–두 명이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판단은 배제했다. 개인적으로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나.

▲개인적으로는 그것은 관객이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영화들에서 북한인들에 대한 존중에서 인위적으로 편집한 부분은 없나.

▲북한 정부에 내 해설을 보내면서 정말 크게 자존심을 상하게(offend) 할 부분이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무시했다. 영화를 완성하고 북한에서 한국전쟁을 ‘미 제국주의에 대한 침략’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또 영국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서는 ‘북침’이라고 했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 완성한 뒤였다. 영화에서 나는 ‘내전(Civil War)’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나로서는 한국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보다 한국전쟁이 주인공들에게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더 중요한 문제였다.

–북한에서도 ‘푸른 눈의 평양시민’을 상영하나.

▲2년마다 9월에 열리는 평양영화축전에는 시기가 맞지 않아 출품하지 못했다. 내년에 상영되고 TV에도 방영됐으면 한다.

–한국에서는 이달 말에 남북 정상회담이 큰 이슈다.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일단 정상회담이 처음이 아니지 않나. 더 많은 접촉이 있을수록 긍정적인 결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북한에 관한 영화를 그만 찍을 계획이라고 알려졌는데.

▲평양을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지 북한에 대한 영화를 안 찍겠다는 것은 아니다. 차기작으로는 영국에서 도그 레이싱에 대한 영화를 거의 완성했고 우간다에서도 1970년대의 육상 선수에 관한 영화를 찍고 있는 중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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