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91년 12월 함경북도 최북단과 중국·러시아의 접경지역인 나진·선봉을 나선시로 통합해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지정했다. 이 지역을 동북아의 국제적인 화물 중계지와 수출가공·관광·금융 기지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1993년 ‘나선경제무역지대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불합리한 투자조건으로 외국자본 유치가 지지부진하면서 개방특구의 기능을 하지 못한 채 방치되다시피 했다. 전체적으로 47억 달러의 외자 유치 계획을 세웠지만, 실제 투자가 성사된 것은 6천만 달러에 불과했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와 화폐개혁 후폭풍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자 나선특구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해 연말 나선 지역을 시찰한 뒤 “대외활동을 진공적으로 벌여 대외시장을 끊임없이 넓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부터 나선시가 특별시로 승격됐다. 중국에 의한 나진항 개발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마치 나선특구를 거점으로 경제개방을 염두에 둔 듯한 움직임이다.
이에 맞추어 파격적인 투자유치 조건이 담긴 나선경제법이 나올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북한의 나선경제무역지대 개정법을 보게 되면 정말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경제특구정책이 시장경제를 지향해야 하는데, 북한주민들에게 미칠 자본주의 황색바람을 차단하기 위한 통제수단을 더 강화했다. 나선지대의 외국인에게 북한법이 적용돼 방문객의 신분 보장을 장담할 수 없다.
외국인을 근로자로 채용하려 할 경우 종전에는 관계 기관과 협의하면 되던 것을 승인사항으로 바꿨다. 기업경영의 핵심 요소인 인사 자율권 확보는 더욱 후퇴한 것이다. 출입통행 마저 더 까다로워졌다. 조건 없는 무비자 방문 규정을 수정해 북한의 다른 지역을 거쳐 들어오는 경우 비자를 받아야 한다.
물론 기업승인 절차 완화와 과학기술 투자 장려, 그리고 남쪽기업에 문호를 개방한 것은 그나마 눈에 띄지만, 해외 투자를 유인하는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장경제는 막고 돈만 받겠다는 모기장식 개방으로는 투자유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계획경제 지향의 국가통제체제를 강화해 놓고,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려는 북한 당국이 답답할 노릇이다. 외자유치 성공으로 경제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대내외 정책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대외관계에서 평화적 외교정책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핵화에 대한 진정한 태도 변화로 국가신뢰도를 높여 나가야 것이 급선무다.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조치 강화로 북한과 잘못 거래 했다가는 기업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실제 투자가 성사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사회주의 경제운용 틀을 던져 버리고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으로 나서야만 한다. 북한이 올해 ‘세계를 향하여’를 주창했듯이, 단순히 구호로만 끝내지 말고 실제 국제사회로 편입해 나간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통하는 선진 경제제도와 사상을 받아 들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셋째, 나선특구 개발에 대한 해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인프라가 확충돼야 한다. 현재 나선특구는 전력, 항만, 도로 등이 열악하여 투자한 것보다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임금이 싸도 수지가 맞지 않는 구조다.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한으로서는 인센티브 제공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주변국들의 지원뿐만 아니라 국제금융자본의 투자도 이끌어 내야 한다. 경제의 투명도와 자유도를 높여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진출 기업의 경쟁력을 제공할 수 있는 투자제도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투자 기업들에게 자율적인 경영권과 자유로운 출입을 보장해야 한다. 투자의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기업들의 수익 창출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다섯째, 경제성이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남쪽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 나가야 한다. 남쪽기업이 진출하게 되면 외국기업들을 유인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중국에 과도하게 기대는 것은 경제특구 개발전략이 아니다. 북한은 남북경협에 대해 억지 부렸던 ‘갑’의 자세를 버리고 투자유치 국가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견지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