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미묘한 `면담 외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비슷한 시기에 방북한 러시아와 중국의 고위 인사들을 만나는데 `미묘한 차별’을 둬 눈길을 끌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주요 언론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금주 들어 북한을 찾은 러시아 연방의회의 세르게이 미로노프 상원의장(방북기간 24∼25일)을 만나지 않고 보낸 반면 중국의 량광례(梁光烈) 국방부장(22∼26일)과는 면담을 가졌다.


특히 량광례 국방부장과의 면담 자리에는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외에 북한의 대미 핵협상을 총괄해 온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도 배석시켜 주목받았다.


내달 8일 예정된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을 목전에 둔 시점에 향후 북미 대화 기조와 6자회담 대응 등에 관해 깊숙한 얘기가 오갔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이같은 `면담 차별’은 미로노프, 량광례 두 사람의 지위를 비교해 봐도 상당한 `파격’으로 비쳐진다.


아무리 러시아와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해도 북한의 양대 우방국이라는 점은 불변이라고 볼 때 러시아 상원의장과 우리의 국방장관 격인 중국 국방부장과는 수평 비교가 어렵다.


미로노프 의장은 2004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예방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김 위원장은 보지 못한 채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대신 만나 김 위원장에게 주는 선물만 전달했다.


북한 언론은 미로노프 의장의 이번 방북이 “최고인민회의 초청”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작년 11월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의 러시아 방문에 대한 답방 성격인 셈이다.


미로노프 의장은 또 북한 언론의 보도가 없는 점으로 미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친서는 갖고 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5년 전과는 방문의 성격과 격이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이 5년만에 찾아온 러시아 연방의회 상원의장을 얼굴도 보지 않고 돌려 보낸 것은 뭔가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물론 김 위원장이 2006년 4월 방북한 차오강촨(曺剛川) 중국 국방부장을 만나지 않았을 때의 상황도 지금과는 판이하다. 현재는 북중 양국이 과거 어느 때보다 밀착하는 분위기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껄끄러웠다.


그 이유는 2005년 말 북한의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에 대해 미국이 금융제재를 가할 때 중국이 사실상 묵인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북미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일로로 치닫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1차 핵실험으로 이어졌다.


올해에도 북한은 4월 장거리 로켓 발사와 5월 2차 핵실험으로 미국의 강한 반발과 함께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받았다. 하지만 대중국 관계만은 3년 전과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러시아의 상대적 부진으로 북한과 두 나라를 둘러싼 경제.군사.외교적 지형이 많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이런 큰 흐름 안에서 국제적 고립이 심화된 북한이 세계적 경제강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을 든든한 `기댈 언덕’으로 보는 듯한 징후는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금주에 벌어진 김 위원장의 중러 간 `면담 차별’도 그런 상황 변화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한 대북 전문가는 “러시아와의 관계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겠지만 현재 북한에게는 중국이 더 큰 존재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앞으로 6자회담이 재개되고 북미 대화가 다시 열리면 중국쪽에 많이 기울어져 있는 북한의 스탠스가 어떤 형태로든 변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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