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극빈층에 식량지원 先(선)제안 필요하다

I.
데일리NK에서 연재한 북한의 식량상태에 대한 세 차례의 기획물은 북한사회의 변화에 대해 한국의 섬세한 고찰과 대책을 요구하게 만들고 있다. 장마당에서 쌀값 등 식량값은 하향 안정화 되어 있지만 북한인구의 5% 극빈층은 임금도, 배급도 없어 다시 생존의 위기에 몰려있다는 것이다.


최태복 등 북한 당국자들은 4월, 5월이 위기라면서 영국, 이탈리아 등 전 세계에 식량원조를 애걸하고 있고, 세계식량기구 WFP는 북한에 다시 기아 발생의 위기가 있다고 진단하면서 약 43만톤의 식량이 급히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북한의 2010년 식량생산이 전년에 비해 줄어들지 않았다는 판단 하에, 그리고 북한당국이 외국에 오로지 쌀만을 원조식량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혹시 2012년 ‘강성대국의 문패를 거는 해’의 잔치상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있다.


다른 한편 군인들의 경우 하루 한 끼를 외부에서 해결한다거나 이들을 식량구하기 휴가를 보내는 한편, 일제 말처럼 민간인들로부터 군량미 공출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 군인은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군병원에서 대책 없이 드러누워 있다가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시장에 쌀 공급은 계속 되고 있고, 2010년 식량생산 및 식량수입의 총량을 보면 결코 대량 아사가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임금도 배급도 구매력도 없는 극빈층과 함께, 북한 당국의 배급에 의존하는 계층에서 부분적으로 식량난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2012년 강성대국 잔치상 준비를 위한 쌀비축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정권과 극빈층이 동시에 식량압박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시장에 의존하고 사는 사람들은 과거보다는 어려워졌더라도 아사의 위기에 몰리지는 않고 있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II.
북한 식량문제 전문가 정광민 박사에 의하면 현재 북한의 부분적 식량난의 배경에는 2009년 말에 단행된 화폐개혁실패가 자리 잡고 있다. 한 마디로 북한 인민들의 경제활동자금을 빼앗아 북한의 장마당 경제 전체가 위축되어, 구매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장 밖으로 몰린 계층이 극빈화하면서 과거에는 100가구에 1, 2가구에 불과했던 극빈층이 지금은 4, 5가구로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인민의 돈을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화폐개혁의 후유증은 극빈층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농장에서 생산된 식량의 양을 농민들은 화폐개혁 당시 강도나 다름없는 북한당국에 정확히 보고하는 대신에 축소 보고하여 빼돌리고 있고, 여기에는 농민들뿐만 아니라 북한관료들이 수송과정 등에서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장마당경제에서 떨어지는 뇌물에 익숙했던 북한의 관료체계가 과거보다 모자라는 수입을 공적식량의 중간착복으로 보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짐작된다.


“결과적으로 북한 당국의 창고로 들어가야 할 식량들이 곳곳에서 조직적으로 빠져나가면서 실제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것”이라는 데일리NK의 분석은 북한 사회가 북한 당국과 유리되어 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점으로부터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화폐개혁실패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총살된 박남기가 대책 없는 개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고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몰라도, 김정일 부자를 비롯하여 북한정권의 엘리트들이, ‘수령체제를 위해 시장경제를 억누른다’는 정치우선주의를 감안하더라도, 거시 경제적으로 극히 무식하다는 것이다.


결국 김정일 부자의 바람과는 달리 북한인민들이 정권에 ‘비조직적이고 비의도적으로’ 저항하는 결과를 낳았다. 북한에서는 쌀이 전략물자임을 감안하면 지금 민간인을 대상으로 군량미 공출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가 분명해진다. 전략물자를 놓고 북한인민들과 북한 당국이, 시장경제와 수령체제가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둘째, 현재 생존위기에 몰린 북한사회의 극빈층은 바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김정일 정권의 희생자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버려졌고, 화폐개혁의 실패로 활동이 약화된 장마당경제에도 참여할 수 없어 식량을 구입하지 못한다.


III.
현재 북한당국이 세계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식량원조를 구하는 이유가 자신들로부터 버려진 북한의 극빈층을 위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북한 사회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하여 왔던 극빈층을 구하기 위하여 김정일 정권이 나선 적은 없다. 북한정권은 이 극빈층의 생존위기를 이용하여 체제유지에 필요한 계층의 배급상황을 개선하거나 전략물자 비축을 노리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첫째, 북한의 극빈층을 생존위기에서 구하는 것은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북한당국의 사과문제’와는 분리해야 한다. 그 이유는 서로 무관하기 때문이다.


둘째, 북한정권이 한계상황에 도달하여 남한에 천안함, 연평도 사건의 사과 문제를 해결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그렇게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김정일 정권은 사과 보다는 북한인민을 더 쥐어 짤 것이다. 차라리 김정일 정권의 권위를 지속적으로 약화시켜서 북한인민이 정권의 창고로 향하는 식량을 지속적으로 나누어 갖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수령체제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첩경이 장마당 경제의 활성화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셋째, 북한정권이 다시 도발할 경우 한국 내의 여론이 나빠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미 한국의 좌파 일각에서는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 한국이 북한에 쌀을 주지 않아서 일어난 사건이니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비판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북한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도발을 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이 북한에 대량으로 식량과 비료, 현금을 주고나면 꼭 도발을 하거나 한국정부를 무시해 왔다. 그 이유는 김정일이 식량원조를 받더라도 을(乙)이 아니라 갑(甲)의 위치에서 받겠다는 심보 때문이다. 한 마디로 김정일 정권은 잘 해주어도 도발하고 그렇지 않아도 도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도발에 불안해하는 국민들 일부는 북한의 도발책임을 한국정부에 전가할 것임이 분명하다.


물론 북한의 극빈층에 식량을 공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분배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제안들이 있다. WFP와 공동으로 한국의 민간단체들이 식량배급을 하는 것도 방법 중의 하나이다.


중요한 점은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극빈층의 먹고 사는 문제와 의료문제를 한국이 해결하겠다는 제안을 공식적으로 하는 것이다. 물론 김정일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도 이런 제안이 중요한 이유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비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북한의 장마당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화폐개혁 이후 북한의 시장경기가 나빠진 것은 북한인민의 구매력이 저하되었기 때문이고, 이를 위해서는 화폐 공급량을 늘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은 한 심포지움에서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의 대북송금 루트를 이용하여 북한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방안을 제안한바 있다. 중간에서 브로커와 북한의 보위부들에 의해 상당한 액수가 사라진다 하여도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은 현실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적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북한정권이 시장경제로 전환을 시작할 경우 북한인민의 생활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면, 북한인민의 자생적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을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결국 한국이 북한을 돕는다는 것은 북한정권이 아니라 북한인민의 생활조건 개선에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 수령체제가 핵을 스스로 포기할 가능성은 영(零)에 수렴한다. 그렇다면 북한에 시장경제를 키우는 것이 핵을 간접적으로 포기하도록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수령체제와 시장경제는 장기적으로 같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장마당 경제가 강해질 수록 수령체제의 피로도가 증가하고, 수령체제가 약화될수록 핵보유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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