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 당국이 평안북도 신의주와 함경북도 회령 등 북중 국경지역 소재 기업소들을 대상으로 ‘조(북)중관계의 파국을 준비하라’는 내용의 군중 강연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사회의 초강경 대북제재 속에서 북한에게 중국이 유일한 창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북한이 먼저 반중(反中) 정서를 조장하고 나선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평안북도 소식통은 21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이달 초 신의주시 인민위원회 산하 기업소에서 열린 군중강연에서 중국과의 사이가 이전보다 더 좋아지진 않을 테니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언급이 있었다”면서 “이 강연에선 조중관계가 최악이니 파국을 준비하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소개했다.
소식통은 이어 “앞으로 중국을 전혀 바라볼(기대할) 수 없고 믿어서도 안 된다는 내용이 여러 번 강조됐다”면서 “우리의 자강력으로 강성대국을 이루자는 게 강연의 결론이었다”고 덧붙였다.
소식통에 따르면, 해당 강연은 인원이 적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300명가량 되는 기업소 여럿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각 사업소에 소속돼 강연을 들은 노동자들을 합하면 1000명은 족히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신의주에서 건설 자재 마련과 유통 등을 도맡아 온 것으로 전해진다.
통상 북한 강연제강은 당 선전부에서 하달하는 만큼,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강연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함경북도 회령시 유선노동자구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강연이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회령 지역에서 진행된 강연에선 중국에 대한 기대를 하지 말고 우리 힘으로 난관을 뚫고 나가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유선노동자구엔 공장기업소와 광산기업소 등이 집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북중 국경지역 노동자들은 이 같은 반중 정서를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군중 강연에 다소 당황한 눈치라고 한다. 이제까지 ‘북중 교역만큼은 계속될 것’이란 생각에 국제사회 제재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기 때문.
그러던 중 갑자기 ‘중국도 믿지 말라’는 내용의 강연이 열리자 주민들 사이에서도 적잖은 동요가 감지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소식통은 “최근 강연에서 자강력을 강조한 적은 많았지만 이번처럼 대놓고 중국을 비판한 건 처음”면서 “국경지역 노동자들은 공식 무역이든 밀무역이든 중국과의 교역만 계속되면 제재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이번 강연에 다소 당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반중 논조의 강연에도 불구, 북한 당국이 중국에게서 등을 돌리려는 속내라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로선 중국이 그나마 북한에게 유일한 대북제재 탈출구이기 때문. 실제 국제사회가 북한의 외화벌이 숨통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면서 북한의 대중 의존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때문에 이번 강연은 주민들이 중국에 대해 지나치게 경도될 것을 우려해 북한 당국이 일종의 ‘주의’를 준 정도라는 해석이 많다. 배급을 멈춘 당(黨) 대신 밀무역 상대인 중국에 호감을 갖는 주민들이 많아지자, 이 같은 기류가 체제 결속에 방해가 될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소식통은 “국경지역에선 대다수가 중국과의 교역 없인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력자강’을 내세우려는 당국으로선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진 않을 것”이라면서 “이번 강연도 중국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게 아니라, 기존보다 강도 높게 자강력 선전에 나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도 “강연은 그저 말뿐이다. 당국이 정말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면 외화벌이 기업소들을 그렇게 닦달할 리가 없지 않나”라면서 “당국은 우리가 중국 없인 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동시에 중국도 우릴 버리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말로나마 배짱 좋게 중국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런 모습을 두고 내부에선 ‘장군님(김정은)은 천출명장’이란 말도 나온다”면서 “하지만 그 말의 뜻은 결국 당국의 이중적인 모습을 비꼬는 것이다. 중국 때문에 먹고 사는데, 이제 와서 파국이니 자강력이니 하는 게 우스울 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