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광저우AG에 태권도 선수단 파견 왜 안했나

2010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역대 최대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한 북한이 태권도 선수단을 일체 파견하지 않아 주목된다.


태권도는 한국과 북한의 전통무도이다. 한국이 태권도 종목에서 종주국으로서 유리한 입장을 선점하고 있는 만큼 북한도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대회의 태권도 종목에서 금메달을 노려볼만 하다. 하지만 북한은 태권도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 Federation:WTF)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 열리는 태권도 경기는 WTF 주도하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WTF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1973년 설립된 단체로서 1980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승인을 받은 국제연맹이다.


따라서 모든 국제대회에서의 태권도 경기는 WTF의 기준에 따른다. 태권도 관련 기관들 중 가장 권위 있고 공신력 있는 단체인 셈이다.


하지만 북한의 태권도를 주관하는 국제연맹은 WTF가 아닌 국제태권도연맹(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ITF)이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린 것처럼 태권도도 남북으로 갈라져있는 셈이다.


ITF의 시초는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태권도를 국제적으로 먼저 알린 것은 ITF이다.


1966년, ITF는 ‘당수도’ ‘공수도’ ‘권법’ 등 다양하게 불리던 태권도 체계를 확립했다고 알려지고 있는 최홍희 ITF 초대 총재에 의해 서울에서 출범했다. 당시 ITF는 서울 구 조선호텔에서 9개국의 참가로 창립됐다.


ITF는 ‘동베를린 사건'(1967년 윤이상, 이응로 등 예술인과 대학교수 등 195명이 옛 동독의 베를린인 동백림을 거점으로 대남적화 공작을 벌였다며 처벌당한 사건)에 최 전 총재가 연루되면서 1972년 캐나다로 기구 전체가 이전하게 된다.


그가 ITF와 함께 캐나다로 망명하자 박 전 대통령이 WTF 신설을 명한 것이다.


이후 WTF와 ITF는 각각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에서 태권도를 보급하면서 대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WTF가 IOC의 공식승인을 받은 국제연맹으로 자리매김하고 WTF 주도하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자 ITF는 국제적으로 설자리를 점점 잃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최 전 ITF 총재는 2002년 평양에서 숨을 거뒀고 ITF는 세 계열로 쪼개졌다.


장웅 IOC위원이 총재로 있는 ‘북한 ITF’ 계열, 최홍희 전 총재의 아들인 최중화씨가 이끄는 ‘최중화 ITF’ 계열, 마지막으로 한국인을 배제한 ITF 계열이 있다.


‘최중화 ITF’는 한국의 WTF와 통합을 추진 중이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중화 ITF 총재는 지난 7월 방한 당시 국내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태권도 발전을 위해 어쩔 수없이 북한을 선택한 것이다. ITF는 국제연맹이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총회를 통해 총재를 선출해야 하지만 북한의 농구선수 출신의 태권도도 모르는 장웅이 총재가 된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 ITF의 정통성은 자신에게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이처럼 ITF가 WTF에 비해 국제적 인지도가 낮은 점, 국제 태권도 경기에서 WTF의 규정을 따라야하는 점 등이 고려돼 결국 2010광저우 아시안게임에 파견된 북한 선수단에 태권도 선수들이 빠진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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