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 : 북한에서 겨울 방학을 맞아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교육의 평등을 지향하는 북한에서 모순되는 현상이 지속 발생하고 있는 건데요.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봐야 할지 설송아 기자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설 기자, 관련 소식 전해주시죠.
기자: 한국에서는 이런 과외가 합법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북한에서는 사교육이 비법(불법)입니다. 그럼에도 북한에서는 비법적인 사교육이 열풍입니다. 예전에는 외국어를 비롯한 단순 기술에 집중됐었지만, 이제는 사교육이 수재(영재)교육으로까지 범위가 넓어지면서 사교육비 또한 상승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공교육 발전을 위해 겨울 방학기간 사교육을 통제하고 있지만요. 오히려 사교육은 당국에 역행하며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공교육의 서열화로 북한 사교육이 시작된 배경과 구조적 실태를 짚어 보겠습니다.
진행 : 네, 그렇다면 먼저 북한에서 수재를 양성하는 특수 교육이 언제 시작됐고, 어떻게 발전했는지 설명해 주시죠.
기자 : 북한에서의 수재교육은 1960년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는 예술, 체육 분야가 있었고 이과분야도 비공식으로 존재했습니다. 다만 사회주의 평등교육과 상반되는 정책이기도 했거든요. 그러다가 북한은 김정일의 주도하에 1980년대 초, 공식 도입했습니다.
그러니까 1984년 평양1중학교가 개교하였고요, 1985년에는 각 도에 제1중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1994년까지 전국적으로 1중학교가 10개 정도였는데요. 김정일이 수재학교를 증설하라는 지시를 하면서 1995년 모란봉제1중학교가 평양시 단위의 수재학교가 되었고요. 평안남도 순천제1중학교를 비롯한 평안북도 압록강제1중학교 등이 개설되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전국의 시, 군, 구역 단위까지 200여 개의 제1중학교가 나왔거든요. 갑자기 평양시·도·시·군·구역 순위별 수재학교가 서열화된 것입니다. 돈 있고 권력배경이 든든할수록 평양1중학교나 도 1중학교에 갔다는 말이죠.
진행 : 1990년대 중반부터 수재를 양성하는 학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하셨는데요. 그런데 그때는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할 때 아닌가요? 어떻게 이런 정책이 나왔는지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기자 : 대량아사시기 일반 학교에는 교과서도 제대로 공급되지 못했습니다. 교사들도 미 공급으로 굶어 죽던 시기였죠. 교육 예산이 부족해지자 북한 당국이 선택적으로 투자한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자구책으로 수재교육기관을 확충한 것인데요.
반면 일반 학교에는 대학 폰트가 없거나 한두 명 정도였습니다. 교육의 불평등이 본격 시작된 겁니다. 당시 주민들의 불만이 터졌던 기억이 납니다. 수재학교학생들만 대학공부하고 간부로 양성된다면, 일반 학교 학생은 노동자로 성분을 눌러 놓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몇년 후 다시 일반 학교도 대학 폰트가 배정되기 시작했고, 12년제 의무교육 개편(2013년) 이후 중앙대학에도 갈 수 있지만요, 이미 사교육의 필요성이 주민들에게 각인되었습니다. 당국만 믿으면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른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는 겁니다.
진행 : 북한의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는 데는 북한 당국의 잘못된 정책이 주요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기자 : 물론 사교육을 다른 각도로 볼 수 있습니다. 2000년대부터는 ‘기술이 돈이다’는 인식이 팽배하지 않았나요. 부모들은 자녀들이 한 가지 기술을 배우도록 개인교사나 기술자에게 돈을 지불했거든요. 미래에 대비한 투자죠. 이런 현상이 1980년대 당시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민들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사교육에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중 교역 활성화에, ‘중국어’ 과외의 인기가 덩달아 올라가는 현상도 하나의 예입니다.
이는 공교육의 서열화와 시장이 맞물리면서 주민들이 자기 돈으로 교육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나마도 가난한 집 학생들은 사교육의 기회도 가질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평안남도 소식통은 최근 “겨울방학 기간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도 집이 가난해서 자기 키보다 더 큰 숯 마대를 지고 하루 종일 ‘숯 사라요’ 외치며 동네를 돌고 있다”면서 “이런 현상을 학교 교원(교사)들은 물론, 간부들조차 (마치)영화 보듯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교육자가 학생들에게 아무런 도움의 손길도 내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진행 : 공부는 잘하는데 돈이 없다는 이유로 겨울방학기간 돈벌이에 내몰리는 게 마음 아픕니다. 돈이 있어야 사교육도 받을 수 있겠네요.
기자 : 사교육은 물론 의무교육도 돈 없으면 어렵습니다. 학교 세부담이 만만치 않거든요. 아예 학교를 포기하고 컴퓨터, TV 수리 기술을 배우는 학생도 있다고 하는데요. 반면 중산층 자녀들은 기술을 넘어서 종합적인 수재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교육비는 도시지역일수록 비싸게 책정됩니다. “최소 시간당 20달러”라고 하는데요. 이처럼 “가격이 비싼 만큼 개인 교원들은 사교육 교재를 직접 만드는 데 열과 정성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소식통의 설명입니다.
이어 그는 “개인교사들이 만드는 2600문제 수학 풀이집이나 과학기술과목은 수재학교 교재 수준이다”며 “어떤 부모들은 개인교사에게 돈을 더 주고 일대 일 교육으로 학년을 앞당겨 달라는 요구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진행 : 방금 수재학교 교재 수준이라고 하셨는데, 일반학교 교재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기자 : 평양 교육도서출판사가 2013년 출판한 『정보기술』 이라는 과목으로 설명하면요. 일반 고급중학교 교재에는 “정보는 어떤 목적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자료를 분석, 가공, 처리한 결과이다.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가치가 낮아진다”고 일반 설명을 했다면요.
제1중학교 교재에는 “정보의 특징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쓸모가 없어지는 시기성과, 사람들에 따라 정보로 될 수도 있고 자료로도 될 수 있는 상대성, 여러 개의 정보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얻어내는 생산성, 중요성에 따라 일정한 가치를 가지는 가치성, 특정한 사람들만 알아야 하는 비밀성 등의 특징을 가진다”는 식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행 : 이렇게 수준 차이가 확연히 드러날 정도인줄은 몰랐네요. 그렇다면 교재를 만드는 개인 교사들도 지금 한창 바쁠 것 같은데요?
기자 : 방학기간 학교 교사들은 도, 시 교육부에서 진행하는 방식상학에 참가해야 하고 강습 등 학기 때보다 더 바쁩니다. 또한 새학기 교재준비도 해야 되고 교원급수 시험도 봐야 합니다. 그 와중에 사교육을 하려면 의지가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하는데요.
함경남도에서 10년 간 교사로 일하다 2015년 탈북한 박옥(가명) 씨는 “방학기간 사교육 하지 말라 미리 통보해도 돈을 벌어야 개강준비를 할 수 있어 일부러 수강생을 찾고 있다”며 “학생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교원들은 자택을 학원처럼 꾸미기도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사교육 목적이 돈벌이가 분명하지만 가르친 학생이 평양 김책공업대학에 입학했을 때 날아갈 듯 기뻤다”고 소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