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결혼식만큼 빈부격차 나는 것 없다

▲북한의 최근 결혼식 모습.

11월은 북한에서도 ‘결혼 시즌’이다.

북한에서 결혼식은 대체로 3월과 11월에 많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겨울(12월∼2월)은 너무 춥고 여름엔 음식물이 쉽게 변질된다. 4월부터 10월까지는 수시로 농촌동원이 있을 정도로 농사일에 바쁘다.

북한 주민들에게 그나마 여유가 있는 달이 3월과 11월인 셈이다. 같은 달에 열리는 결혼식이라고 다 똑 같은 모습이 아니다. 이곳에서도 호텔 결혼식이 있고, 일반 예식장 결혼식이 있듯이 북한 결혼식도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북한에서 소위 평민들의 결혼식은 먹고 살기도 어려운 삶의 고단함이, 권력자들의 결혼식은 호화스럽고 부패한 냄새가 잔뜩 묻어난다.

식량난 때는 결혼식을 아예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요즘에도 결혼하려면 몇 십 만원씩 들다 보니 식을 거르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장사로 생계가 조금 나아진 사람들은 잔칫상도 차리는 상황이 됐다고 한다.

북한에서 결혼식은 남자의 집과 여자의 집에서 각각 두 번 치른다. 신랑, 신부 집에서 하루 차이로 따로 진행한다. 그러나 요새는 돈을 아끼기 위해 시댁과 처가가 서로 합상(한 집에서 결혼식을 차리는 것)을 한다고 한다.

생계가 어려운 북한 노동자나 농민들의 결혼식은 말할 수 없이 초라하다. 이들은 음식을 넉넉하게 차리기 어렵기 때문에 최소한의 먹을 것만 구입하고 나머지는 장마당에서 돈을 조금 주고 빌려다가 상을 차려 사진을 찍은 뒤 돌려주는 것이 대다수라고 한다.

집에서 결혼식을 치를 때 보통 뒤에 병풍을 두르고, 그 앞에 상을 놓고 음식을 차린다. 음식을 빌리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발생한다. 보통 결혼식 상에 닭을 올리는데 돈이 없다 보니 닭에게 술을 먹여 상 위에 올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닭이 결혼식 중간에 깨어나 식장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난 2006년 함경남도 금야군에서 탈북한 김영미(가명•24세) 씨는 “대학생활을 하는 오빠가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생략했다. 양 집안에서 내놓은 돈으로 새 언니가 오빠의 대학 주변에 자그마한 방을 얻어 장사를 해서 오빠의 뒷바라지를 했다”고 말했다.

북한 당 기관 간부들의 결혼식은 규모도 크고 잔치도 며칠을 지속한다. 오죽하면 북한 간부들 속에서 “결혼식도 하나의 장사”라는 말이 돌 정도다. 간부들 속에서 결혼식 규모는 그 사람의 위신과 실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큰 간부들이 한 번씩 대사(결혼, 환갑 등)를 치루는 날이면 밑에서 충성해야 하는 간부들은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야 한다.

상을 차리는 작업부터 결혼식 부조금 액수까지 조직하고 관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군당 책임비서라면 지역에서 당 비서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들은 돈을 들고 잔칫집을 찾아야 한다. 북한의 간부들은 대부분 달러를 선호한다. 장사꾼들은 중국과 거래가 용이한 중국 인민폐를 좋아한다.

북한 간부층의 이러한 결혼식 행태가 권력 투쟁으로 비화된 경우도 있다. 2004년 3월 북한 노동당 중앙위 선전선동부 부부장 최춘황의 딸과 조선체육지도위원회 모 간부의 아들간의 결혼식 때문에 수 십 명의 간부가 숙청되기도 했다.

당시 선전선동부는 김정일의 신임을 배경으로 중앙당 조직지도부의 위세에 도전할 때였다. 출세를 위해 중앙당에 줄서기를 하려던 간부들이 이 결혼식에 대거 몰려들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간부들은 대략 미화 1000(약 95만원 수준)달러씩을 축의금으로 냈다고 한다.

조직부는 선전부를 견제하기 위해 이 결혼식을 ‘종파 사건’으로 비화시켰고, 김정일은 조직부에 손을 들어줘 결혼식에 참여했던 간부 30여명을 해임 철직시켰다.

최근에는 간부들의 결혼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겉으로는 간소하게 해서 윗 사람들이나 좀 대접하고 아랫사람들은 전혀 청하지도 않고 부조만 왕창 받아 챙겨 그야 말로 일거양득이라는 말도 나온다.

북한 결혼식은 험난한 경제난을 겪는 민초들과 이들을 짓밟고 기생하는 권력층의 부정부패가 반영된 북한 빈부격차의 축소판이라고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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