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일 자정 9·9절(정권수립일) 73주년 기념 열병식을 진행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공화국 창건 73돌 경축 민간 및 안전 무력 열병식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성대히 거행됐다”며 “9월 9일 0시 환영곡이 울리는 가운데 김정은 동지께서 열병광장 주석단에 나오셨다”고 보도했다.
이날 열병식에는 북한 17~60세 남성과 미혼여성 중 현역군에 속하지 않은 이들로 편성된 예비 군사조직인 노농적위군과 우리의 경찰조직과 유사한 사회안전군이 참여했다. 이 때문인지 북한은 이번 열병식 이름을 ‘민간 및 안전무력열병식’이라고 명명했다.
비정규군이 중심인 만큼 포 등 일부 재래식 무기와 소방차 등이 열병식에 등장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열병식 주석단에 등장했지만, 연설은 하지 않았다.
대신 리일환 당 비서가 연설자로 나서 “오늘의 장엄한 열병식은 온갖 도전과 난관을 용감히 이겨내고 자기 힘으로 위대한 조국의 력사를 창조한 승리자들의 대행진”이라며 “우리 당과 국가는 전대미문의 시련과 난관 속에서도 자립, 자위의 기둥을 더 억척같이 박으며 주체의 길, 사회주의의 길에서 단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힘든 시기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강성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점을 강조해 체제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날 김 위원장을 비롯한 주요 간부 그리고 수많은 참석자는 모두 마스크를 벗은 상태였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는 북한이 또 한 번의 ‘노 마스크’ 행사로 방역 성과를 과시한 것이다.
앞서 올해 초 진행된 8차 당대회도 노 마스크 상태에서 진행됐다. 당시 소식통은 당의 최대 정치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은 국가적 위상을 손상하고, 인민들에게 전염병에 대한 불안함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당국의 판단이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북한은 김 위원장이 참여하는 행사에 마스크를 쓰는 것은 그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일로 여긴다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이번 열병식에 군중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한편 이번 열병식은 이틀 만에 급하게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인지 열병식의 규모는 이전에 비해 전반적으로 작았다. 특히 재래식 포를 제외하고는 행사 대부분이 분열(分列)로 이뤄졌다.
열병식 선두에는 지난해 수해 피해복구에 앞장섰던 평양시당원사단종대가 섰다. 이어 평양시노농적위군종대, 평안북도·평안남도 노농적위군종대 등 도(道) 노농적위대가 도당 책임비서들과 함께 뒤를 이었다.
김책제철연합기업소, 희천련하기계공장, 락원기계종합기업소 등 북한 굴지의 대형 연합기업소종대도 열병식에 참여했다.
아울러 북한 과학기술 연구의 핵심 기관인 국가과학원과 코로나19 방역을 맡은 비상방역종대와 보건성종대도 열병식에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또 김일성종합대학종대, 김책공업종합대학종대, 붉은청년근위대 등 청년·학생 조직도 행진했다.
이중 붉은청년근위대는 1970년 김일성의 지시로 창설된 학생군사조직으로, 당시 만 14~16세의 남녀 학생들로 구성돼 있다. 다만 14~16세 중학생들을 군사훈련에 동원하는 것은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이하 아동권협약)’ 6조 생명권과 29조 교육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이날 열병식에는 사회안전성 소속 사회안전군과 사회안전군 특별기동대(기병대), 군견수색종대도 참가했다. 이어 노농적위군 기계화종대가 오토바이와 122㎜ 다연장 로켓 등 재래식 무기를 타고 등장했다.
다연장 로켓을 트랙터가 끌고 가는 이색적인 장면도 나왔다.
통신은 “사회주의협동벌을 힘차게 누벼가던 농촌기계화초병들이 유사시 침략자와 그 졸개들의 머리우(위)에 섬멸의 불벼락을 들씌울 멸적의 포무기들을 실은 뜨락또르(트랙터)들을 몰고 기세드높이 나아갔다”고 말했다.
농촌의 작은 군사조직도 기계화, 무장화돼 있다는 점을 내세우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열병식의 후미에는 소방을 담당하는 사회안전군 소방대종대가 섰다. 특히 고층 건물에서 발생하는 화재를 진압할 수 있도록 고층용 소방호스를 갖춘 소방차도 함께 등장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번 열병식에서는 김 위원장 집권 10년 차와 관련한 언급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자연재해에 따른 삼중고 속에서 혼란해진 민심을 다독이고 내부 결속을 도모하는 데 의미를 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군인 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속해 있는 비정규군도 열병식에 참여시켜 내부결속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