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판 산업스파이 ‘문익점 사업’ 있다”

▲『평양 변주곡』저자 이상옥씨

호주교포 이상옥씨(65세)는 특이한 경력을 지녔다. 그는 이산가족이다. 1990년, 그는 42년만에 아버지를 북한에서 만났다. 아버지를 만난 이후 북한이라는 나라에 매력을 느껴 대북사업을 시작한다.

그는 1992년부터 호주지역 이산가족 상봉사업을 책임져 오다가 1996년 재(在)오스트레일리아 동포전국연합회 건립, 회장직을 맡아 왔다. 북한 당국은 ‘호주에 대표부가 없다’며 그에게 ‘명예 호주(濠洲) 영사부장’을 맡게 한다.

그러나 이상옥씨는 북한과의 교류사업을 하면서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동포들의 순수한 마음을 악용해 그 위에 기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이후 ‘명예 호주 영사부장’을 그만뒀다.

그가 꼼꼼히 적어둔 대화록과 북한 여행기를 바탕으로 저술한 『평양 변주곡』(관동출판사, 2005년 발행)은 ‘평양의 생리’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은 널리 알려져 있진 않지만 북한의 허위와 진실을 정확히 알려준다. 북한문제 ‘선수’들뿐 아니라 일반독자에게도 흥미만점이다.

이 책에서 그는 외화벌이 사업, 해외동포 장악사업, ‘문익점 사업’, 남북 체육공동행사 등은 겉으로는 교류와 협력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체제 유지와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에 일조하는 사업들에 지나지 않는다 것을 자세히 고발한다. ‘문익점 사업’은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 선생처럼, 해외동포들이 외국의 기술을 몰래 북한으로 들여오는 ‘산업 스파이’ 행위를 말한다. 북한당국은 해외교포에게 이를 강요했다. 이씨 역시 ‘문익점 사업’을 강요받았다.

그는 참여정부의 남북경협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남북경협은 북한의 변화를 이끌 수 없다”고 단언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결론이다. 많은 투자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북한의 체제변화를 유도할 수 없으며 북한주민들에게 혜택이 전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2003년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명예 호주 영사부장’을 지낸 대북사업가 이상옥씨를 만났다.

-북한의 ‘명예 호주 영사부장’은 어떤 일을 하나?

영사부장의 역할은 북한 당국을 대변하고 북한의 지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재호주 부녀회, 청년회, 여성회를 포섭하는 것이다. 또한 각계각층의 지도급 인사를 만나 북한이 ‘우수한 국가’임을 선전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역할에 거부감을 느껴서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과 거래를 하면서 북한체제의 문제를 비판했다. 이 때문에 영사부장을 하기 싫으면 조용히 물러가라는 북한측의 말을 듣기도 했다.

-영사부장을 맡게 된 계기는?

지금도 평양에서 수시로 연락이 온다. 북측에서는 ‘옛 영사부장을 저버리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유화적인 태도로 계속해서 포섭하려는 의도이다.

90년대 초반 호주에는 북한 대표부가 없었다. 호주지역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주도적으로 하면서 북한과 접촉을 많이 했다. 북측에서 보면 내가 포섭대상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측은 명예 영사부장직을 제안했고 당시 이산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승낙했다.

“문익점 사업은 북한 과학기술의 한계를 자백한 것이다”

-『평양 변주곡』을 보면 북한은 해외 동포들과 남한 대북 사업가들을 볼모로 경제적 이익을 편취한다고 하는데 내용이 무엇인가?

아직도 북한이 외국으로부터의 지원을 편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업가들은 야심차게 대북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사업을 전개하기도 전에 벽에 부딪친다. 일선에 있는 북측의 실무자들이 뇌물을 요구한다. 이렇게 되면 사업자금이 더욱 많이 들어가게 된다. 사업가들은 목표를 위해 하는 데까지 추진하지만 결국 사업의 결실을 보기도 전에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사업가들은 “뭐 하고 싶어도 우리가 요구하는 상품이 나올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지금은 북한에 대해 많이 알려졌고 일부 동포들도 북에 대한 환상이 깨져 북한의 편취는 줄어들었다. 북한의 해외사업 형태가 많이 변했다. 예를 들어 백남식 사진작가는 북한과 협의를 해 북한의 명산을 찍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백 작가가 북한에 가서 사진을 찍을라치면 북측에서 이것저것 요구한다. 지프차, 디지털 카메라, 4000불 가량의 독일제 카메라 등등.

또 북한에는 궁중다과가 없다. 호주의 한 사업가가 궁중다과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중국에 주문해서 북한에 보냈다. 북한은 이 재료로 궁중다과를 만들어 이윤을 남긴다. 그런데 여기서 얻은 이윤으로 재료를 사서 다시 만들어야 하는데, 이익이 북한 당국에 들어가게 된다. 소위 ‘국고환수’라는 명분으로 편취되는 것이다.

이외 해외 동포들이 북한을 방문하게 되면 접대를 하고 접대비를 비싸게 받는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이렇게 해서 버는 달러도 만만치 않다.

-‘평양변주곡’ 내용 중에 ‘문익점 사업’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게 도대체 무엇인가?

북한의 과학기술이 낙후되어 있다 보니까 신기술의 노하우를 해외 동포들로 하여금 조국에 바치도록 강요한다. 문익점이 중국에서 목화씨를 붓통에 넣어 몰래 들여온 것처럼 해외의 동포들이 신기술을 몰래 북한에 들여오도록 요구한다. 이른바 산업 스파이를 하라는 것이다.

-‘문익점 사업’으로 어떤 게 있나?

당 간부들이 직접 나서는 경우도 있다.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당시 당 고위급 간부들이 올림픽 스타디움 구석 구석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보면서 사진을 찍고 심지어 수영장의 내부 밑까지 사진을 찍었다.

또한 북한의 고위급 간부들은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수영장, 스타디움 도면을 요청해 가져갔다. 북한은 5.1경기장을 자랑한다. 5.1 경기장은 콘크리트로 만들었다. 그런데 시드니 올림픽 스타디움은 수명이 긴 철근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당 간부들이 도면을 가져 간 것이다.

이외 양털깎기 기계 10대를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문익점 사업’ 정신을 계승하여 조국에 헌납하라는 경우도 있었다.

문익점 사업을 통해 북한은 과학적 지식과 고도기술 육성의 한계를 고백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낙후된 기술 산업을 높이기 위한 ‘자력갱생’의 한계도 알 수 있다.

-‘문익점 사업’으로 본 ‘평양의 생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익점 사업’을 도입함으로써 해외동포도 이른바 ‘조국 발전’의 일정부분을 책임지게 한다는 것이다. 조국을 위한다는 명분 하에 근사하게 접근한다. ‘문익점 사업’ 정신은 투자 없이 실익을 챙기겠다는 보물섬 탈취 전략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아니다. 즉 한국 내외의 대북 투자가들은 ‘문익점 정책’에 의해 보물섬의 ‘노다지’가 되는 셈이다.

-남북경협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개성공단을 어떻게 평가하나?

개성공단에 투자되는 돈이 북한 인민들에게 공정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인건비라는 명목으로 지불되는 돈도 모두 북한권력층에 들어간다. 즉 개성공단에서 창출된 이익은 북한 권력층의 주머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하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개성공단 같은 사업에서 얻은 자본이 핵개발에 이용된다고 볼 수 있다. 우려스럽다.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을 외면한 대북사업은 의미가 없다”

-북한과 사업을 계속 해오셨는데, 대북사업에서 원칙이 있다면?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말이 과연 통일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가 의구심을 가져야 한다. 통일도 질(質)이 문제다. 민주주의 통일이냐, 사회주의 통일이냐.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이 무조건 정당화 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주의 통일이 아닌 민주주의 사회가 담보된 통일이어야 한다.

통일이라는 것에 현혹되어 대북사업의 원칙이 세워지지 않고 있다. 대북사업을 할 때 우리나라의 정통성이 인정된 남과 북의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북한의 민주화를 전제로 한 대북사업이 필요하다.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을 외면한 대북사업은 의미가 없다. 북한의 민주화가 되어야 굶주림이 해결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다고 하는데?

부정적으로 본다. 2000년 당시 들은 바에 의하면 김대중이 김정일을 먼저 초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정일이 안 간다고 했다. 김정일은 “남한의 분위기가 조성되면 내려 간다”는 말을 했었고 한국의 헌법 3조와 국가보안법 제7조(고무찬양 조항)가 없어지기 전에는 내려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헌법과 국가보안법이 폐지돼야만 김 위원장이 방한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헌법 3조와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존재하는 가운데 김대중이 다시 가면 뭐하겠나? 국민들만 혼란스럽고 피곤하게 만들 것이다. 일부 좌파들에게 도움이 될지언정 아무런 가치 없다.

한편으로는 다음 정권 창출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지금 이 정부가 지지했던 햇볕정책이 옳았다는 것을 여론에 환기시키려는 의도이다.

“북한을 가만 놓아두면 북한인권문제가 해결된다”

-북한을 여러 번 방문했는데 북한 주민들의 생활은 어떠했나?

평양 주민만 상대했기 때문에 북한의 실질적인 빈곤상태를 경험할 수 없었다. 다만 눈치껏 볼 수 있었다. 서해갑문을 방문했을 때 어민들의 모습과 신덕샘물 동네에서 주민들을 얼핏 보았는데 빈곤에 찌들어 보였다. 가을철에는 곡식이 떨어져 이삭줍기, 낱알줍기를 ‘전투적’으로 하는 모습도 봤다. 실제로 판자집 가족들의 힘든 생활을 찍은 영상도 갖고 있다.

-북한 인권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는데, 북한인권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나?

인권문제를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북한주민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이 주체사상 때문에 자유롭게 생각하고 사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북한은 사상의 자유가 없을 뿐 아니라 주체사상으로 주민들을 통제하고 있다. 이는 정신적, 도덕적인 인권의 말살이라고 볼 수 있다.

이산가족 상봉사업에 있어서 사전교육을 시킨다. ‘위대하신 장군님’의 은혜로 상봉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과 같다. 가족을 만나는 것은 당연할진대, 수령의 은덕에 만난다니 어이가 없다. 이 또한 인권유린이다.

-인권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 방법은?

북한을 가만히 놓아두면 된다. 그러면 붕괴한다. 사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붕괴를 막고 있다. 북한이라는 체제는 제3국의 도움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 나라들의 도움이 북한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북한 독재정권 유지에 쓰일 뿐이다. 다시 말해 한국정부가 북한독재정권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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