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축구단, ‘귀국후’가 궁금하다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전 © 연합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북한과 일본간의 월드컵 축구예선경기는 북한의 2대1 패배로 아쉽게 막을 내렸다. 시청자들은 오랜만에 국제무대에 진출한 북한에 많은 기대를 걸고 경기를 지켜보았다.

이번 경기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누구를 응원할 것인가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같은 민족인 북한을 응원하는 것이 관례상 옳긴 하지만, 북한이 승리하면 그 공이 김정일에게 돌아가 김정일의 몸값만 올리는 역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일본을 응원한다는 조사결과도 있었다.

북한은 이번 일본과의 경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분명하다. 북한은 예전부터 체육경기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는 대상국 제1부류로 미국이나 일본, 남한을 꼽아왔다. 제2부류는 6.25 전쟁 시기 유엔군에 가담했던 나라들과의 경기다.

감독은 선수들에게 미리 “포성없는 전쟁으로 생각하고 적개심을 품고, 이를 악물고 이겨 주체조선의 영예를 떨쳐야 한다”는 사상을 주입시킨다. 북한은 경기에서 승리하면 대대적인 재방송을 물론이고 성대한 환영식을 열어준다. 우승한 선수들에게는 푸짐한 선물도 안겨준다.

“체육경기도 정치투쟁이다”

그러나 경기에서 패하면 출전했던 선수들은 강제노동이나 해체의 쓰라린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이번 경기 역시 일본과의 경기에서 패배한 북한선수들에게 동정을 보내야 할 형편이 되었다. 그 이유는 북한과 일본간의 갈등 때문이다. 현재 북한과 일본은 가짜 유골문제로 하여 극도로 첨예화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체육경기라도 국제무대에서 일본을 ‘KO시키자’ 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번 경기에서 패했기 때문에 선수들이 상당한 부담감을 가진다. 차라리 이런 때는 일본과 이기든, 지든 마주서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심리이다. 열에 하나 이기면 영광이요, 지면 강제노동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북한체육은 순수한 스포츠 목적 외에 정치문제까지 영향 받는다.

1966년 북한의 월드컵 8강 진출은 세계적인 이슈였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8강까지 오른 것은 당시 체육계에서 북한축구의 잠재성과 발전성에 대한 말없는 증명으로 됐었다.

그러나 내가 북한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대표단이 도착하자 북한당국은 “축구감독 휘하 3명만 제외한 전원이 여색작전에 녹아 다음날 경기에서 패전했다”는 보고를 듣게 됐다. 그러자 북한당국은 축구단 전원이 부르주아 여색작전에 물든 반동으로 매도해 해산시키고 선수들을 지방의 탄광이나 광산으로 ‘혁명화’ 보냈다.

그때부터 북한축구는 완전히 명맥이 끊겼고 국제무대에서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았다. 북한의 많은 축구애호가들에게는 북한이 60년대 경험을 잘 살렸으면 지금 축구강국이 됐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북한체육은 지난 십여 년간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과 폐쇄정책으로 인해 국제적인 무관심 속에 있었다. 체육단에 대한 국가 투자도 점점 적어져 선수단 자체의 재정과 수입으로 운영해야 하는 상황까지 놓였다. 북한 체육은 김정일이 별로 취미를 느끼지 못하는 분야여서 사회적으로 도외시되는 편이다. 김정일은 체육보다 예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투자부분에서 많은 부분 소외된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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