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에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일종의 신드롬이 일고 있다. 이 대자보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나는 안녕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일부에서는 ‘안녕하지 못합니다’는 답변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개인의 의견을 우회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최근 정황을 보면 이 일상의 물음은 단순히 사람들의 ‘안녕’을 물으려는 의도는 아닌 것 같다. 이들은 대자보를 통해 철도노동자 파업에 따른 직위해제를 정부에 저항하면 불법으로 낙인찍는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고, 이런 사회가 과연 정의로운 사회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선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는 거의 없었다. 또한 정보가 있다 하더라도 사실관계가 불분명하기도 했으며 사회에 대한 푸념으로 가득차 보이기도 했다.
이래서 불만, 저래서 불만, 이것도 저것도 다 불만이라는 것만 담긴 대자보에 왜 이렇게 빨리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우리 삶이 그리 안녕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불만은 있지만 대안은 불명확해 보이고, 주장은 많지만 잘 받아주지 않는 인정이 메마른 사회라는 것이다.
필자가 대자보에서 특별히 주목하고 싶었던 문구가 있다.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여쭙고 싶다’는 부분이다. 또한 정치와 경제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는 데 종용받지도 않았다고 이 대자보는 말한다. 필자는 대자보를 쓴 이와 이에 공감을 표하는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우리 사회가 정말 무관심과 침묵을 강요받았는지 말이다. 또한 그런 강요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곳은 이곳이 아닌 북쪽에 있는 억압된 주민들이 아닐까는 질문도 함께 말이다.
지난 12일 북한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후견인으로 인식돼 왔던 장성택이 체포된 지 사흘 만에 처형당했다. 당과 국가의 최고 권력을 획득할 목적으로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는 이유였다. 장성택은 특별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자마자 즉결 처형을 당했다. 인간은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북한에서는 먼 이야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사건이었다.
법보다 독재자의 말이 우선이고,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친인척도 단번에 처형할 수 있는 반인륜적 사회, 주민들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고, 표현의 자유도 없어 불평불만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받는 사회, 그곳이 바로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북한의 현재 모습이라는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재차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런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세력들은 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종용하고,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
필자는 이런 한국 사회의 모습에서 몹시 안녕하지 못하다. 우리는 언제 북한 주민들에게 마음 편히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물을 수 있을까? 안부조차 묻기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언제까지 외면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진정한 안녕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북한은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고, 정치범들을 즉각 석방해야 한다. 둘째, 정부와 국회는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셋째, 한국 사회는 북한 주민들을 김정은 독재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동포들인 북한 주민들의 인권개선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북한을 이대로 두고 대한민국이 안녕하겠습니까’라고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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