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김정은, 문재인, 바이든의 시간표(time table)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

미국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존 햄리 소장은 지난달 22일 최종현학술원과 CSIS가 공동으로 개최한 ‘바이든 시대와 한반도’ 웨비나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여건상 북한 이슈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세계 11대 경제대국인 한국이 가장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할 그런 긴급한 문제인가”라고 되물으며 “한국이 눈앞의 북한이 아니라, 한미동맹의 향후 30년을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과 미중패권경쟁으로 인해 세계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세기적 대전환속에서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해야 하는 대한민국은 정부 당국자는 물론이고 국민들도 햄리 소장의 이 같은 ‘거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조언’을 한 번쯤은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상징하는 문구이다. 어느덧 고유명사화된 듯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념과 진영을 불문하고 자유롭고 풍요로운 국가 건설, 평화와 통일을 염원할 것이다. 문제는 비전(vision) 자체가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와 입체적인 전략전술이 부재(不在)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햄리 소장을 비롯한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이 현 정부 대북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상당수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울분까지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비핵화 협상기간 중에도 핵-미사일 능력을 질과 양적으로 늘리며 문재인 정부를 무시·공갈·협박해 오고 있는데, 정부는 기상천외하게도 “우주의 기운” 운운하며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 재개만을 신줏단지처럼 모시고 있으니 말이다.

“ ‘토르라는 영화를 보면 9개의 세계가 일렬로 정렬할 때 우주의 기운이 강력하게, 또 강대하게 집중되는데, 이것을 컨버전스(Convergence)라고 합니다. 비유하자면, 이와 같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집중된 대전환의 시간이 우리 앞에 열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평화의 봄을 불러올 수 있는 가능성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202114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 신년사).

즉 ▲정부는 북핵 위협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이상과 소망을 담은 레토릭(rhetoric:수사어)만 쏟아내고 있다. 우리가 선의를 보이거나 상대의 억지요구를 들어주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행동한다. 비굴하기까지 하다. 마치 딴 나라에 살다가 얼마 전에 돌아온 사람, 대책 없는 몽상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인질로 잡힌 피해자가 인질범을 사랑하는 이른바 ‘스톡홀름 증후군’ 현상까지 애기되고 있다.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비전과 목표를 현실세계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역할 구분(carrot&stick/good cop&bad cop)까지 서슴지 말아야 하는데, 착한 아이처럼만 행동하려 한다. ▲국가안보와 국익을 생각하며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Devil’s advocate)을 정부 정책을 뒷다리잡는 사람, 분단주의자로 매도한다.

이처럼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 합리적인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외눈박이 정책’일 뿐이며 ‘외날개로 나는 새’와 같다. 당연히 목표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비전은 한바탕 꿈으로 끝날 것이다.

지난 1월 김정은은 8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와 열병식을 통해 북한이 “세계적인 핵강국, 군사강국”임을 강조하면서 핵무기 소형화와 전술핵무기·핵잠수함·정찰위성 등 첨단전략무기 개발 강화를 공개적으로 지시하였다. 이로써 한반도에서 핵우산이 철폐되고 주한미군이 철수되지 않는 한 북한이 핵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더욱 자명해졌다. 정부도 이젠 미몽에서 깨어나, 발을 땅에 딛고 행동해야 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14일 제8차 당 대회 기념 열병식에 참석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5일 전했다.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드는 김 총비서 옆엔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박정천 총참모장이 경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레토릭과 당위성을 넘어야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필자가 대북정책 기획과 시행의 모토로 생각하는 12글자이다. 우리가 염원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당위적이고 소망이 담긴 비전과 목표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비핵화’, ‘한반도 평화’, ‘교류협력 활성화’라는 레토릭을 넘어 그것이 이루어질수 있도록 하는 실제적인 환경 조성, 즉 다양한 전략전술적 압박과 대화를 통해 한반도에 짙게 드리워진 핵그림자를 하나하나 걷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핵동결이라도 확실히 조치해야 하는데, 현실은 어떤가? 단 1cm도 진척되지 못했다. 오히려 1km는 후퇴했다고 말할 수 있다.

북한이 핵을 먼저 포기해야 대북제재를 해제하고 교류협력을 할 수 있다는 이른바 ‘비핵화 입구론’도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데 있어 모순이 많지만, ‘선(先) 남북교류협력론’은 더 큰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상대에게 핵무기 고도화와 경제난 탈피의 기회를 주는 순진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이 지난 2018년 ‘한반도의 봄’ 기간과 그 이후에도 꾸준히 핵능력을 증강시켜 온 게 얼마 전 개최되었던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의 입과 열병식을 통해 직접 확인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보여준 그리고 계속 집착하고 있는 일방적인 선의는 국제정치의 규범을 어기고 있는 북한에게 벌이 아닌 상을 주는 꼴이다. 과연 이렇게 해서 김정은을 제대로 관리, 상대할 수 있을까?

햄리 소장이 말한 것처럼, 북한을 잘 상대하기 위해서는 “조급해서는 안 되고, 김정은에게 애걸복걸해서는 더욱 안 된다”.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북한을 넘어 세계를 리드하는 국가가 되고, 지구촌 각국과 함께 북한을 관리,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빠른 직선길도 좋지만, 때로는 돌아서 천천히 가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안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

북한과 미국은 장기전 체제, 그런데 우리는?

그럼 지금부터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핵심 이해당사국인 남북한과 미국이 최근 들어 천명한 입장부터 살펴보자.

김정은은 새해벽두부터 지난 5년간 정책노선을 총화하고 향후 5년간의 사업방향을 결정하는 노동당 8차 당대회(1.5~12)를 개최하였다. 핵과 자력갱생을 기초로한 지구전(持久戰) 체제 정비를 마쳤다. 역주행을 선택한 것이다. 특히 사업총화 보고를 통해 핵을 무려 36번이나 언급하면서 한국과 미국에 대해 백기를 들고 투항할 것을 옥죄였다.

북남관계 회복, 활성화 여부는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에 달렸음. 첨단 군사장비 반입과 한미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함. 남측이 제기하는 방역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관광은 비본질적인 문제임” “새로운 조미(북한)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북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음.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임”(20211월 김정은의 8차당대회 사업총화보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 등을 통해 증강된 북한핵위협에 대한 우려나 경고를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남북교류협력 재개를 오매불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발 더 나아가, 한미합동군사훈련마저도 북측과 협의할 수 있다는 안보주권 포기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어떤 평화에 대한 의지, 대화에 대한 의지, 그리고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언제 어디서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해서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서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20211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

이에 대해 미국은 블링컨 국무장관을 비롯한 안보라인들을 발빠르게 임명하면서, 트럼프의 탑다운(top-down) 방식과 미국 우선주의(America-first)의 전면적 재검토를 통한 새로운 대북정책 로드맵 수립에 주력하고 있다.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22일 언론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관점은 의심의 여지없이 북한의 핵탄두 미사일과 다른 확산 관련 활동이 세계의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미국민과 우리의 동맹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채택하겠음”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는 지난 19일 상원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북한 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하려는 첫 번째 일 중 하나는 전반적 접근법을 재검토하는 것이라고 말했음“(2021125일 연합뉴스)

이처럼 김정은은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연초부터 8차 당대회를 소집하여 최소 5년 동안의 대계(大計) 수립을 마쳤다. 미국도 대북정책을 재검토(review)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문재인 정부만 기존정책의 계승, 남북 교류·협력의 조속한 복원 필요성만을 주구장창 강조하고 있다. 조급한 기운도 역력하다.

이러면 안 된다. 긴 호흡을 가지고 차분히 대응해야 한다. 우리도 최소 5년의 계획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임기가 15개월 정도 남은 정부라서 5년이 힘들다면, 1년 계획이라도 가지고 북한과 상대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차기 정부에 배턴(baton)을 넘겨주어야 한다.

과연 우리 정부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3월 한미합동군사훈련만 잘 넘어가면,.. 7월 도쿄하계올림픽 기회를 잘 활용하면… 김정은이 서울답방을 하면… 등등의 이벤트식 단기목표와 가시적 성과에만 집착하고 있지는 않을까?

훈련중인 북한 해군.
훈련 중인 북한 해군. /사진=조선의오늘 핀터레스트

한반도 주요 정치외교 캘린더

향후 1년여의 한반도 정세 흐름을 한번 짚어 보자.

먼저 북한의 입장에서 중요한 모멘텀을 보면, 대내적으로는 백두혈통 우상화 기념일, 정부-당-군 창건일, 김정은 권력장악 기념일 등이 주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대남-대외적으로는 한미합동군사훈련, 도쿄하계올림픽 등 국제행사, 한국의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이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시나리오로는 핵-미사일 시험, 휴전선-NLL인근에서의 무력도발, 대남우회침투, 온-오프라인 테러, 남북-미북-미중 간 다양한 수준의 대화와 교류협력 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즉 북한은 주요 계기에 상황을 주도 또는 반전시키기 위해 벼랑끝 전술, 물밑대화 등 다양한 수단을 배합하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일단, 3월로 예정된 한미합동군사훈련(과거명칭: ‘키 리졸브’)이 남북미 사이에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훈련 재개 여부, 재개시 훈련 규모에 따라 북한은 핵-미사일 전략 도발 또는 온-오프라인 국지도발, 무시 등을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합동훈련은 ▲주권국 및 동맹의 고유권한인데다 ▲한-미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와 연관되어 있고 ▲트럼프와의 차별화(동맹 강화)를 내건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 등을 고려해 볼 때 규모에 다소 차이가 있을지언정 훈련 재개가 예상된다. 따라서 북한의 전략전술적 선택이 주목된다.

김정은으로서는 바이든 정부와의 첫 정책적 대면이고, 8차 당대회에서 훈련 중지를 촉구한 사안이므로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강경한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등 고강도 도발로 미국을 직접 자극할 경우, 자칫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SLBM을 장착한 잠수함 진수식을 거행하거나 고각발사 미사일 시험을 하는 정도로 수위를 조절할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미국과 북한 사이에 교착국면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 기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쯤이면 미국의 한반도 담당 라인업(line-up) 구성과 정책 구상이 어느 정도 완료될 것이고, 도쿄 하계올림픽도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 변화에서 올해 7월로 예정된 도쿄 하계올림픽과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먼저 도쿄하계올림픽은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스가 총리가 취임 이후 북한과의 전면적 대화를 강조하고 있는 데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의 ‘한반도의 봄’ 추억이 있어 상당히 호감이 가는 계기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개최 여부가 불투명한데다가 ▲3월 한미합동군사훈련 변수 및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 시간 ▲그리고 북한의 입장 정리에도 시간이 다소 필요하기 때문에 결정적 계기가 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전망된다.

그러나, 내년도 2월에 개최될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매우 결정적인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대략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의 자력갱생에 기초한 신경제발전5개년계획 수행이 1년 정도 경과한 시점이므로 지속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점, 둘째 바이든 정부도 집권 2년차를 맞아 국내혼란상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북한문제에 진력할 수 있는 시기라는 점, 셋째 한국에서도 3월 초에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점, 넷째 최대 우방국인 중국이 평화올림픽을 통해 패권국의 위상을 과시하려 할 것이라는 점, 다섯째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미사일 전력 증강이 상당히 이루어진 시점이라는 점 등이 북한의 공세적인 행동을 어떤 식으로든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시기적으로 2022년은 북한 정치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년도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김일성 110회 생일, 김정일 80회 생일, 김정은 공식집권(2012.4) 10년차를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2022년을 김정은 체제의 승리를 부각하는 중요한 정치외교적 계기로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어

결론적으로 북한은 당분간 핵-미사일 고도화와 자력갱생을 기조로 한 정면돌파전에 주력하면서 한미당국의 대처 동향을 지켜볼 것(wait&see)으로 예상된다. 물론 핵-미사일 전력 고도화(완성/실전배치)와 향후 진행될 군축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기싸움과 전략전술적 도발을 병행해 나갈 것이다.

그런 연후에 7월 도쿄하계올림픽을 즈음, 다양한 수준의 남북미 접촉을 타진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북한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시기는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 시기라고 판단된다. 좀 더 멀리는 9차 당대회가 열리고 미국의 포스트(post)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는 2025년까지를 고려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20일 백두산 정상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우리의 대응 방향

그럼 지금 우리 정부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협력 재개일까, 아니면 미국과의 조율이 먼저일까? 당연히 우리를 무시하고 위협하는 상대(실제로는 적)인 김정은과의 대화나 이벤트가 먼저여서는 안 된다. 친구(혈맹/가치동맹)인 바이든과의 허심탄회한 논의가 우선이어야 한다.

김정은은 강화된 핵-미사일 전력을 과시하며, 문재인 정부에게 “백기를 들고 항복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아예 개정된 당규약에는 ‘핵무력에 기초한 무력적화통일 노선’까지 명문화하였다.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업 부분에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는 데 대하여 명백히 밝히였다. 이것은 강위력한 국방력에 의거하여 조선반도의 영원한 평화적 안정을 보장하고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앞당기려는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립장의 반영으로 된다”(개정 당규약/2021110일 조선중앙통신).

반면에 바이든은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s back)”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대한민국을 포함한 동맹들에게 “함께 가자”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중패권경쟁, 동맹의 재건, 대선기간 중 두 갈래로 갈라진 민심 수습, 트럼프 지우기(ABT:Anything But Trump) 등의 험난한 노정과 마주 서 있다. “사방이 적”이라는 표현이 과언이 아니다.

미국 속담에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우리가 바이든과 공감대(rapport)를 형성하는 데 주력해야 할 때이다.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문 대통령의 마음이 바쁜 건 안다. 그러나 지금은 바이든이 힘들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큰판’을 새로 짜고 있다. 우리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북한문제에 우선순위를 두라”, “트럼프의 싱가폴 합의를 계승하여 미북 간 대화에 빨리 나오라”고 압박해서는 안 된다. 차분하게 합리적인 방안을 조율해 나가야 한다. 큰집에 불이 났으면 양동이를 들고 가 꺼주는 게 먼저이다. 더구나 방위비 분담금 협상, 경제협력 확대, 가치동맹 강화 등 우리 앞에 놓인 일(길)도 구만리 같다. 북한 너머(beyond North Korea)를 봐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집중해야 할 것은 교류협력 재개와 같은 눈에 보이는 단기성과가 아니다. 북한의 핵위협에 근본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안보태세 강화, 그리고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탄탄한 설계도(‘포괄적 북핵해법 로드맵’)를 도출해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튼튼한 한미공조하에 동상이몽(同床異夢)의 <비핵화 개념>부터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남북 간 교류협력 재개, 당연히 필요하다. 빠를수록 좋다. 그렇지만 가장 원초적인 비핵화의 개념마저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 상황부터 정리해야 한다. 남북미가 이야기하는 비핵화가 ‘북한 비핵화’를 의미하느냐?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중지되고 주한미군이 철수된 상황을 가정하는 ‘한반도 비핵화’냐?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같은 차이이기 때문이다. 교류협력 재개와 ‘핵동결-신고-검증-폐기 ↔ 제재해제, 관계개선’ 등의 상응조치는 그다음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첫째 혈맹이자 가치동맹인 미국과의 조율이 먼저라는 사실이다. 둘째 차기 정부에 길을 열어준다는 긴 호흡으로 북한을 상대해 나가야 한다. 셋째 이벤트식 만남이나 선(先) 남북교류협력 기조를 지양해야 한다. 넷째 당연히 패스트트랙(fast track: 신속처리 안건)과 스냅백(snap back: 위반시 제재 강화) 원칙이 포함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북핵 해법은 감성이 아닌 이성, 김정은의 시계가 아닌 바이든의 타임 테이블(time table)에 맞춰 도출해야 한다. 기회의 창은 북한이 아니라, 글로벌 질서 재편을 선도하는 미국에 있다. 자충수를 경계해야 한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그래야만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 대한민국의 안전과 번영, 한반도 영구평화의 길이 열린다.

안보는 현실이다. 이상과 소망이 아니라 고차원의 전략전술이 필요한 게임이다. 현 정부는 강변할지도 모른다, 아니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는 장기 비전, 확고한 목표, 그리고 전략전술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는 결코(Never) 아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지난 9년여 동안 핵-미사일 개발에 올인(all-in)했다. 비핵화 협상도 핵을 완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했다. 이제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위해 1년, 5년, 아니 백년대계를 생각하며 다양한 강온전술을 배합하고 있다. 때로는 악마가 되는 것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문재인 정부는 그럴듯한 비전과 목표밖에 없다. 세부 전략전술이 안 보인다. 그저 순한 양처럼 행동한다. “늑대가 오고 있다”고 외쳐도 마이동풍이다, 김정은의 선의를 기다리며 한치 앞의 장미빛 이벤트에만 매달리다 언 4년의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다. 자칫 잘못하다간 북한의 핵인질이 되어 김정은에게 우리의 곳간을 내어 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상상하고 싶지 않다.

며칠 전 한승주 전 외무부장관의 현정부 안보정책에 대한 진단, “대북관계에 너무 묶여 있다. 전략적 사고가 부족하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다시금 귀에 맴돈다. 한반도는 물론 세계가 요동치고 있는 대전환기적 국면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금과옥조(金科玉條) 같은 혜안이다.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