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북한경제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신년사를 대체한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 결정을 보아도 그렇다. 난관을 각오하며 정면돌파를 내세웠다. 뭔가 비장하지만 발전을 위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기존의 방식이나 틀을 벗어나면 ‘체제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구태의연한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찌 올해 뿐이겠는가. 항상 그래왔다. 북한이 해마다 제시한 목표는 요란한 수식어를 달고 있지만 주민들 배고픔 해결은 요원하다.
올해 북한경제의 현황은 노동당 전원회의 보도문에 나오는 “전대미문의 혹독한 도전과 난관”이라는 표현 그대로다. 가장 큰 이유는 대북 제재 장기화이다. 이 문제에 대해 나름 진지한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노동당의 과제이다. 노동당은 대범하게 이 난관을 자령갱생으로 정면돌파하겠다고 선언했다.
안타깝지만 정면돌파를 하든 돌아가든 지금까지의 방식(자력갱생, 간고분투)으로는 어떤 해결책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이것은 노동당과 내각이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두 가지 목표인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년)과 ‘인민생활 향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데서 잘 알 수 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년)은 노동당이 36년 만에 개최한 7차 당 대회에서 정상적인 사회주의 국가 경제 운영을 위해 내세웠던 과제이다. 초기 몇 년은 모든 방침과 지시문, 최고지도자의 현지지도 등 공식석상과 매체들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었다. 하지만 2019년 초부터 북한 공식매체들에서 이 전략의 진행상황과 성과에 대해 언급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번 전원회의에는 이 전략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올해가 ‘5개년 전략’의 마지막 해라는 점을 고려하면 목표 달성 자체는 이미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인민생활 향상’ 목표이다. 북한이 정권 수립 당시부터 애민(愛民)적 이미지를 시종일관(始終一貫) 강조해왔다. 김일성은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이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준다고 했고, 김정일은 강성대국을 만들겠다고 했으며, 김정은은 집권 이후 ‘인민생활 향상’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그는 집권 초기 공개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하겠다”고 다짐했다. 모두 공수표였다.
지난 연말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는‘인민생활 향상’이라는 표현 자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슬그머니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말했다. 김정은은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 부강, 자력 번영하겠다”고 했다. 허리띠 졸라매지 않게 만들겠다던 약속을 또 미국을 핑계로 뒤집어 버린 것이다.
북한이 이런 목표들을 접으면서까지 추구하는 것은 정권 생존이지 인민의 생존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분야 정책이 ‘자력갱생, 간고분투’이다. 이러한 행태는 김씨 일가가 보여온 상투적 위기 모면 수법이다. 위기가 오면 이루지도 못할 요란한 목표를 내걸었다가 슬그머니 침묵하다가 또 새로운 목표를 내거는 것이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제시한 경제 분야의 ‘10대 전망목표’가 바로 그것이다. 전원회의에서는 “나라의 경제를 안정적, 전망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10대 전망 목표의 지표별 계획들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타산하여 세우고”라고 말하며 “전망목표가 확정되면 국가적으로. 반드시 점령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목표는 좋다. 문제는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점령할 것인가이다.
계획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타산하는 것은 책상 위에서 하는 작업이다. 노동당 전원회의는 내각과 경제실무진에게 국가경제 운영의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전원회의가 경제 일꾼들에 대해 ‘타성, 폐단’ 등의 어휘를 사용하며 강하게 질타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전원회의는 “자력갱생, 자급자족을 위해 지난날의 타성에서 탈피”, “국가관리 사업과 경제 자립, 자강의 거창한 위업을 견인하고 추동하기에는 불충분하며 대담하게 혁신하지 못하고 침체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현재 나라의 경제 상태가 좋지 않으며, 특히 “중요한 경제 과업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의 집행력, 통제력이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제사령부로서의 내각이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심각한 현 실태”를 지적하며 엄중히 질책했다.
이처럼 북한이 겪고 있는 난관의 모든 책임을 내각과 경제일꾼들에게 돌려버렸다. 지난날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바로 김정은 자신이다. 자립 자강은 북한이 정권창출 후 70년 이상 우려먹어 이제는 뼈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대책과 방향 또한 구태의연하다. 경제 부문에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서 “경제사업 체계와 질서를 합리적으로 정돈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지난 시기의 과도적이며 임시적인 사업방식을 계속 답습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기 까지는 들을만 했다. 하지만 “나라의 경제를 재정비하자면 결정적으로 경제 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전략적 관리를 실현하기 위한 강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현재 시장을 통한 경제활력에 성공하려면 상대적 자율성에서 대담하게 벗어나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하고 경제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북한경제는 ‘인민사랑’, ‘정의’ 등으로 채색된 노동당의 무지와 열정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려왔다.
전원회의에서 눈에 띄는 표현은 ‘현실’과 ‘계획’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계획적으로 경제를 관리하자고 하면서도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의 현실성 있는 실시 등을 주문했다.
사실상 경제개혁 조치인 ‘사회주의 경제관리 방법’의 주된 특징은 시장을 계획의 체계 내로 편입시키는 것이며, 내용적으로는 시장적·경제적 요소를 더 많이 수용하면서 외관상으로는 국가경제를 강화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다.
자력갱생도 그 본질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 단위의 자력갱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 및 기관·기업소, 심지어 개인 단위의 자력갱생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사실상의 각자 생존이다. 여기서 각자 생존을 위하여서는 시장에서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자생하는길은 전원회의가 강조한 ‘국가의 경제조직자적 역할 강화’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한 ‘내각책임제, 내각중심’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군사력 강화와 ‘혁명의 참모부인 당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 또한 모순이다.
아무리 정치·경제·사회 문화 전반의 정책을 총괄하는 당 전원회의 결정이라고 하지만 방향성과 조건들이 서로 충돌하는 속에서 성과를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도만 바꾼다고 해서 성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시장의 자율성 보장과 국내외 환경이 따라주어야 한다. 과거처럼 국가의 개입이 커지면 주민경제는 분명히 위축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주민들이 소비를 줄이고 있어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징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번 당 중앙위 전원회의 결과문에 입각해 경제무제의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퇴보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올해 경제부문에서 조그마한 성과라도 기대한다면 전면적인 쇄신과 변화가 있어야 한다. 경제주체의 완전한 자유 보장, 개혁개방을 통한 국제자본과 기술 유입, 그리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제 더는 구태의연한 자력갱생과 간고분투에서 벗어나는 길이 진정으로 인민을 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