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읽기] 박봉주 내각에 대한 소고(小考)

김정은 최선희 박봉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12일 새로 선거된 당 및 국가지도기관 성원들을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이달 11일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박봉주 내각을 종료하고 김재룡 총리 체제의 새로운 내각을 출범시켰다. 박봉주는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을 유지하며 노동당 부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80이 넘은 고령이고 경제 부분의 실질적 권한을 가진 내각에서 퇴진했기 때문에 앞으로 고문 수준의 역할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파란만장한 박봉주 내각의 경제 운용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그의 개혁 노선을 현장에서 집행해본 경험 때문인지 그가 총리에서 물러난 발표를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새로운 내각이 북한경제성장을 위해 보다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기를 기대하며 박봉주 전 총리의 행보를 돌아보았다.

박봉주 내각에 대해서는 북한 입장에서 공식적으로 시장을 인정하고, 시장 요소를 도입해 경제개혁을 추진하도록 이끌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봉주는 평안북도 덕천 공대를 졸업하고 룡천식료공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공장 지배인과 1993년 당 경공업 부부장을 거쳐 1998년 내각 화학공업상(장관급)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평양의 권력 엘리트와 다른 길을 걸어온 박봉주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경제 분야에서 그의 실력만큼은 다들 인정했다.

1990년대 계획경제의 실패가 쓰나미로 북한을 쓸고 간 이후 거의 폐허가 된 북한 경제 상황에서 박봉주가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박봉주는 2002년 7.1 개선정책을 입안하는 데 참여하고 이듬해 내각 총리에 취임해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최고지도자인 김정일이 상당한 힘을 부여했지만 경제상황이 너무도 엄혹해 내각의 허약한 어깨로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인민 경제는 시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지만 국가경제는 여전히 계획경제의 기본 틀을 유지하고 있었다.

박봉주는 장기간 그 필요성을 인정해왔던 기업의 독립채산제와 경영활동의 상대적 자율성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도록 했다. 정부의 계획으로 운영되던 국영 대형업체들의 경영방식을 개혁하여 자립기반을 키워나가게 만들었다.

박봉주 내각의 경제개혁은 유일적 체제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기에만 바쁜 보수적인 김정일맨들의 견제와 비난에 시달렸다. 그들은 시장이 확산돼 자본주의 황색바람이 곳곳에 침투한다며 박봉주를 공격했다.

박봉주 실각 이후 북한은 인민경제계획법 제정 등을 통해 계획경제를 복구하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다시 돌아갈 다리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정부의 정책과 경제현실이 전혀 부합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북한경제는 다시 퇴보해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직면했다.

이를 해결하고 국가중심의 경제 운용을 회복하기 위해 2009년 화폐개혁이 시도됐다. 처절한 실패와 후과로 이어졌고, 후계 작업을 하던 김정은에게도 큰 악재로 작용했다.

2012년 출범한 김정은 지도부는 성난 주민 여론과 중국 등 국제사회의 개혁 요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정은도 스스로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시장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장을 수용하는 개혁을 추진하다 쫒겨난 박봉주를 다시 불러들였고, 경제 관련 법과 규범도 손대 시장 지향적으로 변화를 주었다. 이것이 바로 6.28 방침 등으로 알려진 김정은식 경제개혁이다.

박봉주가 다시 내각을 책임지면서 때마침 북한경제는 위기로부터 벗어나 2016년까지 상당한 기대를 걸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박봉주는 강한 카리스마를 소유한 사람은 아니지만 시장의 원리와 절차를 일관되게 중시한 인물이다. 그는 공장과 상점의 현실을 둘러보고 직시하는 편이다. 그리고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본인에게 부과된 경제적 책임의 성격을 깊이 생각하는 북한에서 찾아보기 힘든 관리이다.

박봉주는 지방 공대 출신의 흙수저이고 정치적 영향력이나 대담성은 없다. 대신 근면 성실하고 문제를 파악해 해결할 때는 실리적이고 지성적이었다. 노동당의 정책이 여전히 폐쇄적이고 그로 인해 부담으로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북한이 그나마 지금 상태로 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한 데 기여한 관료로 평가한다.

그의 재임시절 시장을 활용할 계획과 개혁이 부분적이나마 꾸준히 추진되었으며, 각 부문별 행정 관료들의 개인적 횡령도 비교적 적었다. 경제자체를 확실하게 시장과 결부시키는 합리성도 있었다.

박봉주
박봉주 북한 내각총리가 평안북도 낙원기계연합기업소를 방문해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있다(지난해 8월). /사진=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갈 길이 멀고 할 일은 많은데 환경은 열악했다. 무엇보다 자체 개혁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고, 북한 행정 관료들의 몸에 배인 타성도 극복하기 어려웠다. 김정은의 후광이 작용하지만 알게 모르게 그를 시기하는 세력의 견제도 계속됐을 것이다. 북한 경제가 여전히 어려운 점을 그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어렵지만, 중국과의 교역을 바탕으로 북한 산업을 더욱 활성화 시키지 못한 책임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열심히 경제 현장을 다녔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다. 결국 김정은이 경제현장을 다니며 간부들을 호되게 질책해야 분위기가 바뀌는 상황이었다.

박봉주 내각은 경제난 와중에 국가 경제의 기본 정책에 변화를 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김정일 시절에는 지도자가 정책에 대해 오락가락하면서 박봉주 내각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했고, 김정은 시절에는 시장은 중시하지만 핵개발에 폭주하면서 대북제재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17년간(6년 공백) 박봉주 내각은 북한의 경제 재건 노력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후임 김재룡 총리는 박봉주 내각의 노력을 존중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지난해 북한이 보여준 평화, 번영 메시지와 각종 대외 제스처는 북한의 어려운 경제여건과 혼란스러운 정세를 다소 완화하는 진정제가 되었다. 하지만 북한 지도부는 핵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경제개혁의 의지만 높이 세우고 있다. 북한의 지금 모습은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정상국가로 나서는 데 브레이크 역할을 하고 있다.

박봉주 이후 내각이 자력갱생, 간고분투 방식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어렵더라도 시장 활성화와 생산 증진을 위한 과감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북한 경제주체들이 자력갱생 구호로 더 이상 움직이지도 않는다. 지도부의 결단, 내각의 치밀한 개혁이 맞물려야 북한 경제가 회복할 수 있다.

김정은 2기 지도부가 출범하면서 김정은 집무실에서 찍은 단체 사진에 우리 나이로 여든이 넘은 박봉주가 잔뜩 군기든 자세로 앉아있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남는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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