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자격론’의 자격을 묻는다

어느 탈북자의 이야기다. 그는 지금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재학 중이다. 북한인권의 참상을 직접 체험한 그는 북한인권 개선 활동에 열심이다. 어느 날, 대학의 교수는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남한에서 북한인권을 거론하는 사람들은 그럴 자격이 없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아무 말도 못하던 사람들이 북한인권을 들고 나온다. 불순한 사람들이다. 당신도 그들의 말에 동조하면 수구꼴통이 된다.”

대학생 탈북자는 의문이 들었다.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교수는 왜 남한 사람들의 ‘불순한 생각’과 ‘자격론’을 들고 나올까? 북한인권을 말하면 왜 ‘수구꼴통’이 될까? 인권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사람들이 원조 수구꼴통이 아닌가?

탈북자들은 북한의 인권문제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사안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몸으로 겪어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한에 오면 교수가 말한 것처럼 북한인권문제를 둘러싼 ‘괴이한’ 현상에 접하게 된다.

그렇다면 대학생 탈북자의 생각이 잘못인가, 교수가 잘못 짚은 것인가?

남한 내 파당적 이해관계가 원인

탈북 대학생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온당하다. 북한의 인권실상을 자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아는 사람도 분노를 느끼는데, 직접 체험한 당사자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면 교수의 생각은 어떤가? 그는 북한인권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지 않는다. 다만 ‘자격론’을 언급한다.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북한인권을 거론하면 그런 식으로 대응한다. 물론 교수의 ‘자격론’에 대해 심정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인권문제에 관심도 없던 사람이 어느날 느닷없이 북한인권을 들고 나오면 수상스럽게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인식의 순서는 그게 아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먼저 달부터 봐야 순서다. 그러고 나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때가 묻었는지, 자격이 있는지를 살필 일이다. 북한인권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으면서 누구의 손가락에 때가 묻었는지부터 따지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는 올바른 순서가 아닌 것이다.

문제는 북한인권문제를 둘러싼 ‘자격론’이 오로지 이성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 정서적 반응이라는 사실이다. ‘지가 뭔데…’라는 감정이 저변에 깔려 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북한인권의 실상 그 자체가 아니라, 남한 내부의 파당적 이해관계다. 이 때문에 탈북 대학생과 교수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탈북 대학생의 시선은 북한의 인권현실에 가 있는데, 교수의 눈길은 남한 내부의 정치적 파당관계를 겨냥하고 있다. 서로 말이 통할 리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따져볼 일이다. 북한의 인권문제가 남한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는가, 김정일 수령독재체제에서 비롯되었는가? 무엇이 원인이며, 무엇이 결과인가? 그 누구도 북한의 인권문제가 남한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됐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원인이 김정일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 명백하다면, 원인부터 규명해보는 것이 순서다. ‘자격론’은 그 다음에 따져도 늦지 않다.

그런데 왜 원인규명에는 게으르면서 다른 사람 비난부터 먼저 하는가? ‘자격론’을 따지려면 자신의 자격부터 먼저 따져봐야 올바른 순서 아닌가. ‘자격론’을 따지는 사람들이 과연 북한의 ‘유일사상체계확립 10대 원칙’이라도 제대로 읽어보았는지, 숱한 탈북자 증언과 자료들을 한번이라도 검토해보았는지 솔직히 의심스러운 것이다.

북한인민들의 ‘역(逆)자격론’ 나올 것

물론 북한의 인권문제는 어느날 단번에 해결되기 어렵다. 현 김정일 수령독재 체제가 전환된 이후에도 북한의 인권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적으로 개선되어 갈 것이다. 어느 나라든 인권문제가 한방에 해결된 경우는 없다. 그러나 김정일 1인 전체주의 체제와 북한인민의 인권은 원천적으로 양립이 불가능하다. 개혁개방이든, 인권실현이든 김정일 체제의 전환문제와 맞물려 있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도 김정일 수령독재체제는 그 속성상 전환될 수밖에 없다. 모든 독재의 종말 사례를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북한인권문제를 둘러싼 ‘자격론’은 도리어 북한인민들에 의해 ‘역(逆)자격론’ 시비에 걸려들 것이 명백하다.

김정일 체제가 전환된 후 그동안 북한인권문제에 침묵하면서 ‘자격론’이나 따진 사람들에게 북한인민들은 무슨 말을 할까. 그들이 과연 남한 내부의 정치적 파당관계까지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오히려 김정일 파쇼정권에 부역한 사람들로 확실히 낙인찍을 것이다. 아울러 그 다음부터 이들은 ‘인권’이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역자격론’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될 것이다. 결국 지금의 ‘자격론’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물안 개구리의 관점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자격론’으로 핵심 비켜갈 수 없어

EU가 유엔총회에 상정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되자 일각에서 또 ‘자격론’이 나온다. 프랑스, 영국 등 세계인권의 원조격인 EU가 주도한 북한인권결의안을 제국주의의 ‘악어의 눈물’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악어의 눈물’은 지금 전 북한주민들을 인질로 삼아 1인 전체주의 독재로 포식하면서

‘한없이 자애로우신 장군님’으로 포장하는 김정일이 흘리는 눈물이 아닌가.

북한인권문제는 북한인권의 실상부터 따질 일이지, ‘자격론’으로 핵심을 비켜갈 사안이 아니다. 그것은 정직하지 못한 논쟁 방식이다. 자격론의 얼굴을 한 또 다른 ‘야만’이다.

손광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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